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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528쪽 | 544g | 130*188*25mm
ISBN13 9791161110745
ISBN10 11611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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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는 이때 왠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일부가 자기 몸을 희생하여 다리가 됨으로써 동료를 건너게 하는 개미를 떠올렸다. 일본인은 그런 지혜를 가진 검은 개미떼다.
--- p.36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하나 상정하며 나는 마치 시험을 앞둔 신학생처럼 그 답을 입 밖에 내보았다. 하지만 그 답을 말해보는 중에 갑자기 분노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같은 그리스도교 성직자인 그들은 왜 일본을 주님의 나라로 바꾸려는 내 의지를 좌절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왜 방해하려고 하는 것일까.
--- p.260

“일본인에게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넘어선 절대적인 것, 자연을 초월한 존재, 우리가 초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30년의 포교 생활에서… 저는 가까스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의 덧없음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건 쉬웠습니다. 원래 그들에게는 그런 감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인들은 이 세상의 덧없음을 즐기고 누릴 능력도 아울러 갖고 있습니다.”
--- p.308

“예전에 지도를 볼 때마다 일본은 때로” 하고 발렌테 신부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그 모양이 저에게는 도마뱀 한 마리를 연상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모양만이 아니라… 일본인의 본질도 그랬구나 하고 나중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도마뱀 꼬리를 자르고 기뻐하는 아이 같은 존재였습니다. 도마뱀은 꼬리를 잃어도 계속 살고, 잘린 부분은 곧 다시 원래대로 회복됩니다. 60년에 걸친 우리 회의 선교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겁니다. 원래대로 돌아간 거지요.”
--- p.310

양초의 불꽃이 흔들리고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사무라이는 눈을 감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종자들에게 다시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지를 생각했다. 요조는 차치하고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얼굴을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그리운 골짜기의 풍경, 이로리의 냄새,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 그것들이 썰물처럼 멀어져 간다.
--- p.351

벨라스코는 뭔가에 강력하고 단단히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마 위의 뚱뚱하고 온화한 교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하얀 교황복을 걸치고 보석 반지를 낀 손가락을 살짝 들고 있는 노인. 벨라스코의 마음에 하나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당신들은 이 일본인들의 슬픔을 모른다. 당신들에게는 일본에서 싸운 나의 슬픔을 모른다.) 복수와도 비슷한 감정이 그의 입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 p.380

지금의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바라셨는지 알 수가 없다. 오랫동안 내게는 하느님이 일본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를 바라셨고, 그런 이유로 내게 인생을 주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어떤 괴로움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신이 없을 뿐 아니라 끔찍한 일이지만 하느님에게 농락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 p.394

이번 여행은 모두 일본을 주님의 나라로 만들자는 일념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형편에 맞는 자기변호가 있었고 이기적인 정복욕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조만간 일본의 주교가 되어 일본의 교회를 이 손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주님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벌을 내리신 게 아닐까.
--- p.409

사무라이는 무릎이 떨리는 것을 감췄다. 분노의 목소리와 신음이 목구멍으로 나오는 것을 억눌렀다. 분함과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손을 꽉 쥐고 참았다. 자신들의 그 여행이 아무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고 쓰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자신들은 멕시코의 한없는 황야를 가로지르고 스페인을 돌아다니고 로마에까지 갔던 것일까. 베라크루스의 숲속에서 쓸쓸하게 묻힌 다나카 다로자에몬. 다나카의 죽음. 그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 p.442

그렇다. 이것이 일본이었다. 총구멍처럼 작은 창밖에 없는 벽. 창은 오는 자를 감시하기 위해 있는 것일 뿐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 p.446

손궤 바닥에서 작고 닳은 종이 꾸러미가 나왔다. 멕시코 테칼리의 늪 옆에서 그 일본인이 헤어질 때 슬쩍 준 것이다. 머리를 변발로 한 그 사내는 인디오들과 이미 그 늪을 떠나 어딘가로 떠났을까. 아니면 숨 막힐 듯 더운 그 늪 부근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세계는 넓었지만, 결국 그 넓은 세계에서도 사람은 이곳 골짜기와 마찬가지로 슬픔에 짓눌려 있었다.
---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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