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복어처럼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어류가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한번 살펴보자. 우선은 그 맛이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소동파(蘇東坡, 1037~1101년)는 “정말로 죽음과 바꿀 만한 맛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소동파는 바다에 사는 복어가 아니라 양쯔[揚子]강에 산란하려고 거슬러 올라오는 복어, 곧 황복일 가능성이 큰데 이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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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바다에서 살다가 강(河)으로 산란하러 올라오는 복어에 돼지(豚)라는 이름을 붙여 강돼지(河豚)라 부르는 것은, 복어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할 것이다. 굳이 돼지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강돼지(河豚)가 아니라 바다돼지(海豚)가 그나마 맞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바다돼지(海豚)라는 이름은 돌고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으니, 아쉽지만 복어가 참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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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를 가리키는 한자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는 하돈이라고 썼을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은 복 또는 복어, 복지리, 복쟁이 등으로 불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글로는 하돈(河豚)으로 썼지만, 부를 때는 ‘후구’나 ‘후쿠’ 외에도 ‘후쿠헤’, ‘후구토’, ‘뎃포’, ‘뎃치리’, ‘뎃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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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당이나 초밥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식사와 더불어 술도 주문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히레자케(hirezake)’를 주문한다. ‘히레자케’란 말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뜻하는 ‘히레[?, hire]’와 술을 뜻하는 ‘사케[酒, sak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히레자케에 쓰이는 지느러미는 날것이 아니라 불에 약간 태워서 향미가 나도록 만들어 두었다가, 주문을 받으면 뜨겁게 데운 청주(淸酒)에 담아서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약간 탄 듯한 향미 때문에 구수한 맛도 있지만 오래 마시거나 많이 마시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히레자케’에 사용되는 지느러미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복어의 것만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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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독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 주성분인데, 이것은 뱀독이나 벌독 등과 달리 분자량이 작기 때문에 항혈청, 곧 해독제를 만들 수가 없다. 따라서 복어중독에는 다른 독과 마찬가지로 해독제가 있다거나 해독제를 맞으면 낫는다는 세속의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서 절대로 믿어선 안 되고, 중독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치사량을 넘어섰을 경우라면 대부분 8~10시간 이내에 죽는다. 그러니 만약 이 시간대를 넘었다고 한다면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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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는 봄철이 되면 황복이 많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 맛이 유별나 마포까지 올라오던 황복을 먹고 탈이 나서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는 백성들에게 함부로 황복을 먹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하돈탄(河豚歎)」이라는 시를 썼다. “하돈에 미혹된 자들은/ 맛이 유별나다고 자랑한다/ 생선 비린내가 솥에 가득하여/ 후춧가루 타고 또 기름을 치네/ 고기로는 쇠고기도 저리 가라 하고/ 생선으로는 방어도 비할 데 없다네/ 남들은 보기만 하면 좋아하나/ 나만은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서네/ 아! 세상 사람들아/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마라/ 으스스 소름 끼치니 이보다 큰 화가 없고/ 벌벌 떨려 해 끼칠까 걱정되네”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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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근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복어는 아무래도 밀복류에 속하는 복어들이다. 밀복은 대개 따스한 물에서 살기 때문에 제주도 남쪽의 동중국해를 포함한 해역에서 많이 어획되어 시중의 복어집에서 가장 많이 취급하는 종이다. 물론 복어류 중에서 식용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밀복 외에도 황복, 자주복, 검자주복, 까치복 등도 있으나, 이들은 값이 비싼 편이라서 일반인들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복어로는 밀복류가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p.74
마쓰무라 겐도[松村健道]는 성숙한 복섬 수컷이 매우 낮은 농도의 TTX에 유인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수정을 위해 암컷이 배란한 알에 들어 있는 TTX에 수컷이 유인되기 때문이며, 이런 의미에서 TTX는 페로몬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TTX가 도롱뇽 유생에서는 서로 간에 공식(共食)을 막기 위한 경고페로몬으로서도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복어에 기생하는 요각류(copepoda)는 자기의 숙주가 될 복어를 선택할 때에도 TTX를 이용한다고 하며 유인물질로서도 기능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처럼 TTX를 보유하지 않은 동물에게 TTX는 생명을 위협하는 독에 지나지 않지만, TTX를 보유하는 동물에게는 자기가 속해 있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성분으로 기능하고 있다.
--- p.155~156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참복과의 참복속과 밀복속에 속하는 복어의 TTX 저항성은 일반 어류보다 수백 배 강하다는 것이며, 이런 사실은 유독 복어일수록 TTX에 대한 저항성이 매우 크고 독의 축적 능력도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무독의 양식 자주복도 TTX 저항성은 자연산 유독 복어류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이 결과는 치사량 이상의 독을 인위적으로 받아들인다면(물론 자연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리 복어류가 TTX에 대한 저항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사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p.170~171
복어는 TTX를 어떻게 체내에 축적할 수 있을까? 복어는 주로 먹이사슬에 의해 독화한다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는데, 먹이와 함께 먹은 TTX가 어떻게 간장에 축적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도쿄해양대학의 나가시마 유지[長島裕二] 교수 등은 TTX의 축적 과정을 소화관에서의 흡수, 혈액에 의한 운반, 간장으로의 흡수와 같이 3과정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TTX를 갖는 복어들은 TTX를 갖지 않는 일반 어류들에 비해 간장에서의 흡수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며, 복어는 TTX를 적극 받아들이는 데 비해 일반 어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는 복어의 간장이 독화의 열쇠라는 것을 보여준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