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치는 계략을 꾸몄다면, 제우스는 남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훔친 불과도 같은 여성을 창조해 응수했다. 실제로 여성이자 아내는 남편을 허구한 날 불살라 말라 비틀어지게 하고 실제 나이보다 늙게 만드는 불이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들의 집에 들여보내 굳이 불꽃을 피우지 않고도 인간들을 불사르는 불이다. 훔친 불과 쌍을 이루는 훔치는 불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정말로 여성이 음탕한 정신에 불과하다면, 남성들은 ‘치장된 엉덩이’를 갖고 곳간이나 노리고 남편들을 늙고 쇠진하게 만드는 그 거짓말쟁이 아내 없이 지내려고 애썼을 것이다. 식욕과 성욕에서 동물적인 탐욕을 지닌 여성은 일종의 위장(胃腸), 즉 배이다. 여성은 인간의 동물성을 표현한다. 남편의 온갖 부유함을 집어삼키는 위장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소 위장으로 감싼 고기 덩어리를 주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 꾀에 넘어간 것이다.
--- p.111-112
고향 테베로의 디오니소스의 귀환은 이해력의 결핍에 부딪혀 결국 비극을 초래했다. 그만큼 그 도시 국가는 오랫동안 자국민들과 이방인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그 갈등은 달리 보면 언제나 그대로 자기 자신인 채 남아 변화를 거부하려는 의지와 전혀 다른 낯선 이방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 이 둘 사이의 갈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모순들을 바로잡지 못해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확고부동한 것에 무조건 집착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맞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가치들을 문제 삼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다른 시선을 강요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서로 동일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신하던 그리스 시민들은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배척과 공포심 속에서 스스로 균형을 잃었다.
테베의 여성들은 나무랄 데 없는 태도를 지녔고 가정 생활에서도 절제와 겸손의 귀감이었지만, 광란의 선두에 선 왕의 어머니 아가베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 사지를 갈기갈기 찢은 뒤 마치 트로피라도 되는 양 그 머리를 의기양양하게 흔들었다. 그 여인들에게서는 메두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들의 두 눈 속에 죽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펜테우스는 무시무시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자기 자신의 주인인 문명화된 그리스인이었으며 낯선 것은 단죄했던 그는 들짐승처럼 산 채로 갈기갈기 찢겼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할 줄 몰랐던 자의 끔찍한 최후였다.
--- p.254-255
오이디푸스의 위상은 전적으로 절름발이이다. 죽음에 내맡겨졌던 그는 기적적으로 죽음을 벗어났다. 테베에서 태어나 자신의 뿌리인 곳에서 멀어졌으며,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는 균형을 잃은 위상을 갖는다. 또한 그가 태어난 궁전으로 그를 이끈 그 여정을 마치면서 오이디푸스는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단계를 뒤섞었다. 그는 어린 나이인 봄과 성인인 여름과 노인인 겨울을 혼동함으로써 계절의 규칙적인 운행을 전복했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왕좌를 차지하고 어머니의 침대에 누움으로써 아버지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자식들을 낳고, 그리스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 자신으로 하여금 빛을 보게 한 밭에 씨를 뿌림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이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낳은 아이들과 같은 자식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들은 동시에 그의 형제들이고, 그의 딸들은 동시에 그의 누이들이다. 그러니까 스핑크스가 말했던 그 괴물, 동시에 두 발과 세 발 그리고 네 발을 갖는 괴물은 바로 오이디푸스인 것이다.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