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박사의 공적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박사의 공적을 생각하면서 마리 퀴리(M. Gurie: 1903년 노벨물리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부인을 연상했습니다. 젊은 시절 폴란드라는 다른 나라에게 외침만 늘 당하며, 가난하고 불행한 국민들의 비애를 몸소 체험하면서 소녀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서는 과학자가 되어 과학 선진국이 되는 길뿐이라고 결심하고, 여학교를 나온 후, 학비를 조달하려 가정교사, 음식점 종업원 등까지 하여 5년 간 모든 돈으로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유학,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물리와 수학 학사를 취득한 것이 29살 때였죠. 피에르(Pierre: 1903년 노벨상 수상)와 결혼 후 원자물리학을 개척하고 남편이 죽은 후(1906년), 계속 연구하여 라듐을 발견하여 노벨화학상까지 받았으며(1911년), 세계 1차 대전 때는 전장을 쏘다니며 라듐 요법으로 부상병 치료에 종사한 분이죠. 아인슈타인에게 베르린대학 교수 생활을 하게 하신 것도 퀴리 부인이었죠. 제가 이 박사의 능력에 경탄하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 곳인가? 한국은 어떤 국가인가? 관심을 가졌고, 동양사를 보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극동의 대룍에서 콩알만하게 떨어져 나온 나라더군요. 그리고 한반도 외침을 해본 적이 없고, 일본, 중국, 소련, 미국, 프랑스 등에게 외침을 당한 것이 무려 900여 차례나 되는 나라였습니다.
---pp.161~162
「먼저 이 박사의 공적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박사의 공적을 생각하면서 마리 퀴리(M. Gurie: 1903년 노벨물리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부인을 연상했습니다. 젊은 시절 폴란드라는 다른 나라에게 외침만 늘 당하며, 가난하고 불행한 국민들의 비애를 몸소 체험하면서 소녀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서는 과학자가 되어 과학 선진국이 되는 길뿐이라고 결심하고, 여학교를 나온 후, 학비를 조달하려 가정교사, 음식점 종업원 등까지 하여 5년 간 모든 돈으로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유학,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물리와 수학 학사를 취득한 것이 29살 때였죠. 피에르(Pierre: 1903년 노벨상 수상)와 결혼 후 원자물리학을 개척하고 남편이 죽은 후(1906년), 계속 연구하여 라듐을 발견하여 노벨화학상까지 받았으며(1911년), 세계 1차 대전 때는 전장을 쏘다니며 라듐 요법으로 부상병 치료에 종사한 분이죠. 아인슈타인에게 베르린대학 교수 생활을 하게 하신 것도 퀴리 부인이었죠. 제가 이 박사의 능력에 경탄하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 곳인가? 한국은 어떤 국가인가? 관심을 가졌고, 동양사를 보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극동의 대룍에서 콩알만하게 떨어져 나온 나라더군요. 그리고 한반도 외침을 해본 적이 없고, 일본, 중국, 소련, 미국, 프랑스 등에게 외침을 당한 것이 무려 900여 차례나 되는 나라였습니다.
---pp.161~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