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방향은 옳게 잡았다. 그러나 높이, 즉 난이도는 생각하지 못했다. 산을 올라가는데 캐리어는 자꾸 내려가려고 했다. 산등성이를 내려갈 때는 캐리어가 방향을 잃고 제멋대로 가려고 했다. 천신만고 끝에 교육원에 도착하니 캐리어 앞바퀴는 완전히 닳아 있었다. 문득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소요 시간을 미리 가늠하더라도, 직접 와닿는 난이도는 실제로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해외봉사활동 또한 쉽지는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 p.10 「국내교육」 중에서
숙소를 나와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가 정말 한 나라의 수도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내가 처음 받은 라오스의 인상은 하얀색과 아이보리색으로 기억된다.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덩달아 신이 난 개들이 여기에 추가된다. 어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고, 빨래며 음식조리며 생활의 많은 부분이 야외에서 진행된다.
--- p.47 「국외교육」 중에서
라오스 사람들은 ‘뻐뺏냥’, 즉 ‘괜찮다’라는 말을 빈번하게 쓴다고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사고가 나도, 심지어 자기가 사고를 내놓고도 이 괜찮다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남을 용서하고 자기의 잘못까지 용서해 버리는 ‘습관’을 연습해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52 「국외교육」 중에서
해외봉사를 마음먹고 국내교육과 현지적응교육을 받는 동안에는 동료 단원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통에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다. 하지만 임지에 파견을 오고 나면 오롯이 혼자 생활해야 한다. 혼자 집을 찾고, 혼자 밥을 챙겨 먹고, 혼자서 파견된 기관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나마 유지하던 최소한의 인간관계마저 단절이 됐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일이 없으니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만큼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 p.143 「봉사일기」 중에서
이렇듯 라오스에서도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현지에 머물고 있는 봉사단원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다. 비엔티안에 거주하는 단원은 전원 재택근무, 확진자 동선에 포함된 루앙프라방 단원도 전원 재택근무가 결정됐다. 귀국을 하지 않고 머물렀으면 나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우리는 사무소가 정확히 사태를 분석하고 적시에 귀국을 결정한 덕에 위험을 피했다. 라오스 현지의 사정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만 피해왔다’는 죄책감과 ‘그래도 잘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하루다.
--- p.236 「일시귀국 후」 중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6개월 사는 동안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 욕심 부리고 여유 없고 나 자신밖에 모르며 경쟁에 허덕이던 내 모습이 사라졌다. 욕심과 이기심, 경쟁과 서두름이 없어진 자리에 배려와 이타심, 남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남보다 천천히 갈 수 있는 여유가 자리 잡았다.
--- p.278 「일시귀국 후」 중에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양재교육원에 가서 수업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E-volunteering도 라오스 현지 코디네이터가 관리한다. 코디네이터에게 물었더니 미리 출장계획서를 올려야 한다고 해서 출장계획서를 작성했다. 출장계획서는 출장의 일정과 목적을 작성하게 돼 있었다. 나의 경우는 영상 촬영장비가 갖춰진 코이카 양재교육원 강의실 사용이 목적이었고, 일정은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있어서 1박 2일로 잡았다.
--- p.283 「E-volunteering」 중에서
드디어 코이카 귀국단원 감사패가 도착했다. 3월에 귀국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늦게 도착했는데, 앞에서 짧게 얘기했듯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원래는 산발적으로 귀국하던 코이카 봉사단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한꺼번에 귀국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감사패 제작?배송을 담당하는 업체 담당자로부터 이메일로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배송 관련 문의를 할 수 있는 연락처와 담당자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나는 감사패 배송 지연 미안해할 일이 전혀 아니고, 사실 감사패를 받기도 좀 민망한 기분이다.
--- p.310 「E-volunteering」 중에서
아직도 오후만 되면 라오스의 하늘을 물들이던 노을이 떠오른다. 밤에는 라오스의 밤하늘을 수놓던 수많은 별들이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 p.315 「봉사활동 수기를 마무리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