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책상 위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바로 질서다. 그의 방식에 맞춘 대로 물건이 놓여 있으면 복잡한 생각도 사라지고, 일에 몰입도 잘 된다.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문구류와 취향에 맞는 디자인 소품들을 질서정연하게 놓는 것. 영감과 집중력을 얻는 그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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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만들고 레시피를 연구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제 책상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요. 베이킹을 할 때는 작업대가 책상이 되고, 요리 레시피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집 모양의구조물 밑에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책상이 되죠. 또, 어떤 날은 단상의 소반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요리에 영감을 받기도 하는데, 그 모든 공간이 다 제 책상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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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상은 해외 촬영지에서 편집 작업대로 활용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마음이 흔들릴 때,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할 때 등 주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할 때 사용한다.
“이 책상에서는 책을 읽거나 노트에 펜으로 일기를 써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죠. 생각이 필요할 때나 고민이 있을 때 컴퓨터보다는 노트에 글로 정리하면 금세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고, 치유가 되죠.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주변에 있다 보니 좀 더 안정되는 거 같아요.”
그의 책상과 그 주변의 물건들은 그만의 취향을 보여주는 컬렉션과도 같다. 아날로그 빈티지 폴라로이드 카메라, 코카콜라가 새겨진 정감 있는 스탠드, 유니크한 해골 모양 향초와 힘차게 달리는 말 오브제, 표지부터 시선을 끄는 다양한 주제의 외국 서적들과 사진집, 그리고 각종 CD 역시 제각각 존재감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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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상은 온전히 그만의 공간이다. 그가 지내온 추억, 그가 현재 집중하는 작업, 그리고 꿈꾸는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어떤 스타일로 규정지을 수도 없다. 그저 그의 책상은 양태인 자신이다.
“가끔 직원들이 제 책상 위에 놓인 컵을 치워 줄 때가 있어요. 그 마음은 고마운데 사양했어요. 제 책상은 제가 스스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책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어도 그 안에는 저만이 기억할 수 있는 순서가 있거든요. 일하면서 손이 자연스럽게 가도록 모든 물건이 저에 맞게 배치돼 있는데, 그게 틀어지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고, 일이 불편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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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사무 공간은 한눈에 모두 담길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하지만, 그곳의 이야기는 하룻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길고 다양하다. 그저 일하는 책상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통해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누리는 행복은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공간이기에 이야기를 가득 담아내기 더 좋았다. 책상 주변 모든 물건은 제각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그만의 취향과 이야기가 녹아 있기에 조화롭다. 이렇게 누군가의 책상이 탐구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책상을 통해 본 이혜진은 일상의 소소한 가치를 소중히 하는, 추억이 깃든 물건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아는 행복한 스토리텔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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