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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그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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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그림 선생

이성현 | 들녘 | 2023년 05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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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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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758g | 163*225*20mm
ISBN13 9791159257612
ISBN10 115925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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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1부 금강산 만이천봉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지만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내금강총도內金剛總圖〉
〈만이천금강저萬二千金剛杵〉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의 금강산 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의 금강산 시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금강산 시
비로봉에 오르는 대가

2부 〈금강전도〉

〈금강전도金剛全圖〉에 태극太極이
제화시題畵詩로 그린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갑인동제甲寅冬題

3부 시인의 눈 화가의 손

만폭동萬瀑洞
명경대明鏡臺
불정대佛頂臺
백천교百川橋

겸재 정선의 그림 선생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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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 화가의 손… 그리고 겸재의 그림 선생

겸재를 삼연의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도록 천거해준 사람은 사천 이병연(1671-1751)이었다. 그와 겸재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시와 그림을 바꿔보며 교유함’ 관계로 불린다. 그러나 ‘볼 간看’은 ‘시간을 두고 변화를 살핌’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자로, ‘시화환상간’은 ‘두 사람이 시와 그림을 교환하며 서로의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봄’이란 뜻에 가깝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교유하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될까? 두 사람은 왜 서로의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을까? 두 사람이 하나의 주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며 한목소리를 내는, 이른바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효과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앞서 ‘금강산 만이처봉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는 삼연 김창흡의 생각을 사천 이병연은 겸재의 《신묘년풍악도첩》 속 〈단발령망금강산〉을 통해 바꾸게 하였다. 즉, 삼연이 당시 파악하고 있던 금강산 불교계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사천이 비유하였고, 이를 삼연이 받아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쌍방의 정치적 생각과 행위를 겸재의 그림을 통해 주고받았던 셈이다.

사천은 제시題詩 「관정원백무중화비로봉 觀鄭元伯無中畵毗盧峯」이란 시에서, 겸재의 호방한 성격과 천재성을 아끼는 마음을 보이는 한편, 그를 ‘낭중무화필囊中無?筆’이라 하였다. ‘낭중무화필’이란 ‘주머니 속에 그림 그리는 붓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그림을 담아낼 화의?意가 없다’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사천은 금강산이 아무리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절경이라 해도 감흥에 취해 풍경을 옮기는 것은 선비의 그림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겸재가 이를 무시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절경을 옮기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사천은 선비의 그림을 보고자 겸재를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케 했던 것인데, 겸재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쟁이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방자하다는 말까지 한다.

사천의 이 제시題詩에서는 겸재가 그린 금강산 그림을 선비의 그림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어떻게 수정하도록 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주고 있다. 교만하게 누워 움직이려 하지 않는 그림 비로봉의 모습은 허락할 수 없으니, 당당한 비로봉의 위용을 떨어뜨려(낮춰) 다시 그리라고 했다는 부분이다((367쪽 그림 참조).

미술사가들은 겸재와 사천이 ‘시화환상간’을 하며 서로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는 두 사람이 노년에 접어들 무렵의 일이었고, 무엇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겸재가 선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사천이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비의 그림에는 선비 그림만의 어법이 있으니, 겸재가 사천의 지도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우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겸재가 함부로 붓을 놀린다며 ‘방자하다’ 하고, 자신에게 선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도 편달을 부탁하더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자신이 겸재를 선비화가로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린 격이니, 이를 우정이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사제師弟 간의 언사에 가깝지 않을까?

사천이 겸재에게 선비의 그림을 가르친 주된 이유는 노론의 정치적 메시지를 은밀히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자 했기 때문이었고, 겸재 또한 이를 알면서 사천의 지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거의 대부분 사천 이병연의 제화시와 함께하고 있다. 누구보다 겸재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함께했던 당대 최고의 시인이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대하여 언급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인 만큼, 겸재의 산수화를 보기 위해서는 사천의 제화시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겸재의 진경산수화와 함께하는 사천의 제화시를 해석한 기존의 해석들은 하나같이 풍경 묘사 일색이다. 이런 까닭에 겸재의 진경산수화 또한 실경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 작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비유는 일반적인 말과 글을 초월적 언어로 바꿔주는 힘이 있으며, 이는 예부터 문예작품이 비유와 함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겸재의 금강산 그림들을 어떤 각도에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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