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하다 눈에 띄는 대형서점에 들어가 보면 일본인의 기원, 일본 역사와 일본 문화의 특징, 일본의 독특성 등을 다룬 책들이 몇 칸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광경을 쉬이 볼 수 있다. 그런 코너에는 통상 ‘일본인론’ 또는 ‘일본문화론’이라는 분류표가 붙어 있곤 한다. 물론 일본인론을 다룬 책 중에는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것도 적지 않다. 가령 잘 알려진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또는 도이 다케오(土居健郞)의 『아마에(甘え)의 구조』 등은 지금까지도 고전적인 일본 입문서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대다수의 일본인론은 일본의 독특성과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논조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이런 류의 책들이 일본만큼 많이 출판되고 또 많이 읽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참으로 일본에 특이한 사회문화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규슈 다카치호 : 일본신화의 무대」중에서
고타니 산시 또한 현실사회의 모순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음양의 가치를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한편으로 부모를 ‘모부’로 천지를 ‘지천’으로 불러 음양을 반대로 바꾸어 칭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타니 산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까지 비하되어 왔던 음을 양보다 존중해야만 좋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음양의 조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그와 같은 남녀관계의 개혁이 미륵 세상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타니 산시는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사회 및 가정에 있어 남녀 역할 분담의 개혁을 요구하기도 했다. 예컨대 부부의 성생활에서 남자(火)가 여자(水) 위에 있으면 조화가 깨지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 위에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음양 화합이 가능하며 좋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지산 :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 신화」중에서
2016년 5월 26일부터 이틀 간 이세에서 G7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때 일본 정부는 각국 정상들의 이세신궁 참배를 첫날 첫 번째 행사 일정에 넣었다. 거기에 참석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세신궁이 과거 태평양전쟁 때 쇼와 천황이 전승을 기원하고 전리품을 바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현대 일본에서는 새해 때마다 수상 등 정치인들의 이세신궁 참배가 하나의 관례로서 정착되어 있다.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는 극히 일부 학자들에게 한정되어 있다. 근대 일본에서 이세신궁은 야스쿠니(靖?)신사와 더불어 국가신도의 기축으로 기능했는데, 그 국가신도적 일본의 식민주의와 전쟁 책임에 대한 교통정리가 아직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건대, 천황과 정치인들의 이세신궁 참배 관례는 결코 ‘전통’에 대한 존숭만으로 다 수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니, 고유한 ‘전통’으로서의 이세신궁이라 해도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일 뿐이다.
---「이세신궁 : 일본 신도와 신사의 메카」중에서
733년에 완성된 『이즈모국 풍토기』(出雲國風土記)에는 신이 어망줄로 신라의 땅을 끌어당겨 이즈모국을 완성시켰다는 신화가 적혀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땅을 끌어 당겨온다는 발상은 일본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대 한반도와 이즈모의 밀접한 교류관계를 염두에 두건대,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쩌면 신라의 문화적 빛을 받아들여 자기성숙을 이루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즈모 지역이야말로 오늘날 독도 문제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우리는 문득 스사노오의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야에가키신사의 신화적 로망을 껴안아 온 물의 도시 마쓰에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선전해 온 시마네현 현청 소재지로서의 마쓰에는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희망은 지워지지 않는 어떤 것이리라. 로망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일 테니까.
---「이즈모대사 : 일본 신들의 고향」중에서
교토의 후지산이라고도 하는 히에이산(比叡山, 히에이잔)은 시가현(滋賀?) 오쓰시(大津市) 서부와 교토시 좌경구(左京區)의 경계에 있는 오히에이(大比叡, 848.3m)와 교토시 좌경구에 있는 시메이가타케(四明岳, 838m)의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북에 걸친 봉우리들을 총칭하는 말로, 본서의 6장에서 다루는 고야산(高野山)과 함께 예로부터 일본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꼽혀 온 곳이다. (중략) 동쪽 산정에는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인 연력사(延曆寺, 엔랴쿠지)가 있으며, 그 아래 기슭에는 역사적·종교적으로 연력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히요시대사(日吉大社)가 위치하고 있다. (중략) 역대로 연력사는 불교 종파에 관계없이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했으며, 이로써 히에이산은 일본 불교의 어머니산(母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히에이산 : 일본 불교의 어머니산」중에서
종래 고야산을 비롯한 일본의 영산들은 대부분 수험도(修驗道, 수험도)의 영향 하에 있었는데, 수험도의 성산은 대부분 불교의 및 신도의 게가레 관념에 입각하여 여인의 입산을 금지했다. 특히 고야산은 개창자인 구카이가 모친의 입산을 금지한 이래 1872년 여인금제 철폐령인 태정관포고가 발포되기까지 약 천년 동안 철저하게 여인금제를 지켜 왔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결계 외측의 봉우리마다 이어진 이른바 여인도(女人道, 뇨닌미치)를 따라 순례했으며,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여인당(女人堂)에서만 고야산을 참배할 수 있었다. (중략) 고야산의 여인금제는 심지어 천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엄격했던 모양이다. 가령 1088년 시라카와(白河) 상황이 고야산을 참배했을 때, 어영당 안에는 상황과 극히 가까운 남자들만이 입당을 허락받았고, 동행한 상황의 여동생인 하치조인미야(八條院宮) 내친왕은 상징적으로 좌석만 마련되었고 정식으로는 입산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야산 : 현세의 정토이자 일본 제일의 명당」중에서
오늘날 한국은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기독교 신자와 교회가 많지만, 실은 기독교가 가장 늦게 전래된 나라이다.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톨릭)가 전해진 것은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이 중국 연경에서 포르투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784년 기독교 서적을 가지고 들어온 뒤 자생적인 신자집단이 형성되어, 다음 해 한양에 최초의 조선교회가 성립된 1785년으로 잡을 수 있다. (중략) 일본에의 기독교 전래는 중국의 이 시기보다 약간 앞선 1549년에 이루어졌다. 그 무대가 바로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鹿?島)이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기도 했던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 때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가고시마 시내에는 ‘젊은 사쓰마의 군상’(若き薩摩の群像)이나 ‘유신 고향의 길’과 ‘유신 고향관’을 비롯하여, 야마구치현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木?孝允, 1833-1877)와 함께 ‘유신삼걸’로 불리는 가고시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 및 사이고 다카모리(西?隆盛, 1828-1877)의 동상과 생가 등 메이지유신 관련 명소가 매우 많다.
---「가고시마 : 하비에르가 상륙한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중에서
차, 빵, 담배, 맥주, 고구마 등이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진 히라도는 오늘날 일본 ‘최초’로 제주 올레가 수출된 규슈올레 트래킹 코스의 하나이기도 하다. 규슈올레는 ‘일본 규슈 관광추진기구’가 2011년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제휴 협약을 체결하여 매년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2012년 2월 제1호 다케오(武雄)코스가 개장된 이래 2019년 현재 21개 코스가 오픈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제주 조랑말을 상징하는 ‘간세’ 표지판과 청색 및 적색 리본이 이방인의 여정을 안내해 주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아내와 함께 제주 올레는 거의 다 걸었고, 규슈올레는 4, 5년 전부터 틈틈이 걷고 있다. 한 코스당 보통 4, 5시간 소요되지만, 내 경우는 주변의 신사와 사찰 및 유적지 등을 꼼꼼히 돌아보기 때문에 7, 8시간 정도 걸린다. 히라도항 교류 광장에서 시작해서 12개 거점으로 이루어진 히라도 올레 코스의 핵심은 역시 네덜란드 상관터와 기독교 관련 유적에 있다.
---「히라도와 야마구치 : 하비에르의 일본 선교는 실패인가?」중에서
일본에는 어딜 가나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어떤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이런 식의 문학적 혹은 종교적 상상력이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바로 ‘일본인론’이라는 매우 독특한 일본적인 담론 장르이다. 어쨌든 ‘일본의 혼령’으로 불리는 또 다른 등장인물인 한 노인은 오르간티노 신부가 말하는 ‘이상한 힘’을 ‘변조하는 힘’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인은 한자를 비롯하여 유교와 불교 등 바다 건너 일본으로 들어온 모든 외래 사상을 다 일본식으로 변조시켰으며, 기독교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가 『침묵』에서 로돌리코 신부를 취조하는 최고 심문관 이노우에의 입을 빌려 “기독교라는 나무는 다른 나라에서는 잎도 무성하고 꽃도 피울지 모르지만, 우리 일본에서는 잎이 시들고 꽃봉오리 하나 열리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변조하는 힘’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오이타 : 하비에르의 마지막 일본 선교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