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물 학대에 대한 모든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그 심각성에 준하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판결은 ‘동물권 감수성이 뛰어난’ 일부 재판부에 의해서만 내려지고 있을 뿐이다. (…) 양형 기준을 확립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법에 따라 합리적인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은(현재의 법정형을 고려하여) 범죄 억제 효과를 일으킬 만큼 강력해야 하며, 피해 동물의 수, 동물이 입은 고통 등 피해의 정도, 범행의 수법과 동기, 주도성·잔인성·반복성·보복성·계획성 여부, 동종 범죄 전력 유무,
피해 회복 여부 등도 선고에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벌, 제대로 받고 있습니까?」중에서
문제는 재판부의 태도였다. 재판 당일 나와 함께 원고석에 앉은 보호자는 재판장에게 모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대뜸 “개가 죽었을 때는 폐사했다고 하지 사망했다고 하지 않는다”며 보호자가 사용한 단어의 적절성을 지적했다. 이미 다수의 판결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사망이라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재판장은 ‘고작’ 동물에게 ‘무려’ 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탐탁지 않은 듯했다. 동물에게 쓰이는 단어와 인간에게 쓰이는 단어를 구분 짓는 그의 말에서 동물을 낮잡는 위계적 태도가 엿보였다.
---「동물 의료 소송을 대하는 가벼운 자세」중에서
우리는 식용 목적 여부를 따지는 일을 떠나,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식용 파충류·양서류·어류는 어떤 방법으로 고통을 받든, 언제, 어떻게 죽임을 당하든 상관없는가?’ 현재 법의 답변은 이렇다. 어차피 먹힐 동물이라면 어떻게 쓰이든, 어떠한 고통을 받든 ‘문제없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어류를 먹는 식습관이 이러한 결론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식용’ 동물은 고통 속에서 죽어도 괜찮다?」중에서
동물에게 법적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글쎄”에 머물러 있다(산양 소송 사건을 떠올려보자). 아직 동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나라는 없지만, 대신 동물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3년 5월 인도는 돌고래의 지능적, 감각적 능력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s’로서 돌고래의 지위와 생명권, 자유로울 권리를 법제화했다. 스위스 바젤에서는─끝내 달성되지는 못했지만─영장류에게 “생명과 육체적, 정신적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주 헌법에 담자는 국민 제안이 이루어진 바 있다.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중에서
싱어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닌 모든 인간이 행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확장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비인간 존재의 고통에 무관심하며 그 고통을 당연시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 역시 쉽게 묻히고 지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 애써야 한다.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중에서
하지만 어린 시절 느낀 이러한 흥분을 걷어내고 본 동물원은 본디 냉혹한 장소였다. 본래 살아가던 환경과 습성이 서로 다른 동물들을 인간의 관람을 위해 인위적으로 한데 모아놓은, 그 속의 무기력한 동물들로부터 안쓰러움보다는 귀여움과 신기함을 느끼도록 설계된……. 이역만리에서 한국으로 옮겨진 동물들은 사바나와 닮도록 기획된 자연에 갇혀 지내다, 인간의 실수를 틈타 탈출이라도 하게 되면 인간의 안전을 위해 사살된다. 퓨마 뽀롱이의 일화는 동물원의 이러한 인간 중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와 동물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중에서
그러던 나는 포인핸드 앱에 다시금 접속하게 됐다. (…) 입양 기준은 딱 하나였다. ‘금방 입양될 것 같지 않은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래미였다. 하얀 털에 군데군데 검댕이 묻은, 한눈에 봐도 꼬질꼬질했던 어린 래미는 왼쪽 눈이 손상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입양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유기견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있다면 입양은 더 요원해진다. 고미를 데려온 뒤 병원을 오가며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고미는 결국 건강해졌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래미에게도 같은 희망을 품어보기로 했다. 래미의 눈, 그리고 우려스러운 건강 상태로 다시금 병원에 오가게 될지라도 조만간 안락사될 것이 불 보듯 훤한 래미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 사랑, 철부지 둘째 래미」중에서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동물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변호사는 없다. (…) 현재 국내 대다수의 동물권 변호사가 프로보노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권 전업 변호사가 없는 현실은 업계 내부의 인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때 “저는 M&A 쪽을 합니다”라고 답하는 것과 “저는 동물권을 합니다”라고 답하는 것에 대한 상대의 반응 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동물권 활동을 하는 걸 처음 알게 된 동료 변호사들도 예상했던 반응을 보였다.
“……왜?”
이런 반응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마이너한 분야라서, 혹은 돈이 되지 않는 분야라서.
---「종일 동물권만 볼 순 없어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