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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야 할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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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야 할 역사전쟁

: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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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76g | 153*225*22mm
ISBN13 9788980389452
ISBN10 898038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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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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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1948년을 건국시점으로 기산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만 유독 1919년 임정 수립을 건국 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2018년‘3·1절 기념사’에서도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면서 ‘3·1운동으로 인한 임정 수립 100년’이 곧 ‘대한민국 건국 100년’임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문재인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도보다리 대화’에서 김정은에게 2019년에 3·1운동100주년기념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갖자고 제안해서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100주년기념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하며, 이를 위한 실무적인 방안을 협의하기로 문서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점으로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공식 석상에서‘건국’이라는 용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한 내용은 알 수가 없지만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 문재인과 청와대의 참모들이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남북의 역사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건국 100주년을 언급했다가 북한 측의 거부감을 인지하면서 건국이라는 용어 사용을 기피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1948년 9월 9일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창건일로 지키는 북한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기 때문에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도 생략하고, 3·1운동100주년 남북공동사업만 거론되었을 가능성이다.
---「문재인의 남북공동 ‘건국 백년’ 선언은 왜 못했나?」중에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문재인의 ‘건국 100년’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에는 건국논쟁을 일단락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1949년 8월 15일에 제1주년 독립기념일(이후 광복절로 개칭)을 지킨 후 역대 대통령이 하나같이 1948년을 기준으로 건국의 역사를 계산하던 관행을 깨뜨리고, 1919년 건국설을 확정하려 다가 실패한 ‘역사 쿠데타’였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의‘건국 100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인 2017년에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 교체를 주장하였다.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가 『노론의 나라』라는 역사책을 썼지요. 조선시대 때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제 때 친일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들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양의 귀족들은 전쟁에 먼저 출정해 희생을 치렀는데, 우리는 오히려 특권층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병역도 피하고, 국가에 대한 기본 의무조차 다하지 않고 특권만 누리는 반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검색해도 이덕일이 쓴 『노론의 나라』라는 책 자체가 없다. 계속하여 검색하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이 등장한다. 아마도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1607-1689)을 다룬 이 책의 이름을 잘못 기억한 듯하다. 문제는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란 부제를 달고 “조선이 배출한 최고의 성인인가? 시대를 망친 편협한 정치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아무리 살펴봐도, 조선시대 정치 이야기만 등장할 뿐 ‘친일’이나 ‘반공’이란 말은 토씨 하나 언급되지 않는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가 유명한 출판사를 통해서 펴낸 책의 내용이 완전히 역사를 날조한 허무맹랑한 얘기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정치인 문재인이 주장하는 ‘정치의 주류세력 교체’와 『송시열의 나라』의 연관성을 찾아보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역사적인 교훈은 극단적인 이념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민생과 국민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한 문재인은 책의 내용을 작위적으로 해석하여 노론과 친일·반공·보수세력을 동일시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pro- paganda)이다.

이 같은 문재인의 ‘주류 세력 교체’ 주장을 구체적으로 시도하려던 것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사업’이다. 한완상 공동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단 고착과 남북 갈등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아왔던 대한민국 주류세력의 구조를 3·1운동 정신으로 바꾸는 역할을 감당하겠다. 단순히 100주년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본적 정체성을 확립 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건국 100년’은 단순한 국가 기념행사가 아니라, 역사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보수세력이 분단 고착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았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운동권의 좌파 이론이다. 문재인이 의도한 최종 목표 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질서인 ‘신한반도 체제’를 구축하여 돌이킬 수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전쟁은 ‘건국 100주년 사업’에 국한되지 않았다. 2018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생활 속의 적폐청산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민국 주류 교체 노렸던 문재인 정부의 엉터리 ‘역사공정’」중에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1948년 건국설’은 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었다. 1998년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대한민국 건국사』 에서 처음으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했던 그는‘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거대한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2016년 “건국일이 없는 대한민국은 생일도 없는 국가”라고 비판하면서 ‘건국 논쟁’을 재점화시켰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어간다. 건국의 역사가 70년이 되 는 국가에서 조국의 건국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건국 후 67년이 넘도록 건국일이 언제인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이다.”(중략) ‘1948년 건국설’의 또 다른 주창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영훈 교수이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동아일보』에 실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통해서“그해(2008년)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건국60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계에서는 이영훈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건국절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결국 광복회가 중심이 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 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소하는 사태로 발전하였다. 이로 인해 ‘건국절 제정’ 시도는 사회적인 혼란만 야기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1948년 건국설과 ‘건국절 제정’ 논란」중에서

양동안이 ‘1948년 건국설’의 선봉장이라면, 한시준은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독립기념관 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지낸 역사학자인 그는 ‘1948년 건국설’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역사 농단’으로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국정 농단이란 권리를 독점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말한다.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의) 농단은 국정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역사도 농단했다. 역사 농단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1948년 건국론’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왜, 한시준은 ‘1948년 건국설’을 국정 농단에 빗대어 역사 농단으로 비판했을까? 그는 “1948년 건국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 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 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상이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책의 내용을 유추해보면 이승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시준의 ‘1919년 건국설’은 국가론에 근거한 양동안과 달리 ‘1948년 건국설’ 비판에서부터 시작된다.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재건하자는 이승만의 제안으로 제헌헌법 전문에 이런 내용을 천명하였고, 임시정부와 동일한 연호를 사용 하였으니, 사실상 1919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을 1948년에 재건하였다는 주장이었다.

‘1948년 건국설’을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 교수의 분단사관이다. 그는 1975년 5월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제1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분단시대 국사학은 궁극적으로 통일운동의 일환이어야 한다면서, 민족통일을 역사적 과제로 하는 민족주의사학을 주창했다. 그의 대표작인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운동사의 주류가 좌·우익 통일전선운동이었고, 이것이 해방공간에서는 ‘통일민족국가건설운동’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민족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한 사건이었다. 그는 이런 시각에서 1948년 건국설과 건국절 제정 움직임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945년 8월 15일이 없었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가능했겠는가. 민족이 해방되지 않았으면 건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48년 8월 15일은 1945년 8월 15일의 부속물이다. 만약 그 사실을 부정하면 해방을 가져온 우리 독립운동 세력의 희생과 노력을 무시하고, 독립운동을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밝힌 헌법도 부정한다는 이야기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패전한 일본이 물러간 뒤에 정부를 세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려운 일이었겠나. 정말 그렇게까지 역사를 뒤집을 생각을 한다는 건가.” 이 같은 강만길의 역사 인식에 기초하여 분단사관이 등장하였다. 『미군 점령 4년사』의 저자인 송광성은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분단의 날’인 동시에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날이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분단사관을 주장하는 역사가들은 ‘1948년 건국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이승만 정부를 분단을 고착화시킨 반 민족세력으로 매도하였다. 한반도에는 남과 북에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선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라면 2022년의 윤석열 정부는 아직 건국이 되지 않은 채 ‘분단 77년’을 맞는 임시정부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1991년 9월 18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각기 별개 의석을 가진 회원국으로 유엔에 동시 가입 했다. 2022년 4월 현재 대한민국은 191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 다수의 국제기구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밖에도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선진국가로 인정하는데, 분단사관에 얽매여 아직도 대한민국이 국가가 아니라 정부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다.
---「1919년 건국설과 분단사관」중에서

이렇게 1945년 8월 15일은 ‘해방기념일’이었고, 1948년 8월 15일은 독립·광복·건국기념일로 인식되는 가운데, 1949년 6월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이때 초안은 3·1절, 헌법공포기념일, 독립기념일, 개천절이 4대 국경일이었는데, 9월 21일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헌법공포기념일은 제헌절로, 독립기념일은 광복절로 바뀌었다. 이 법안의 제안자인 법제사법위원장 백관수 의원이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동시에 1945년 8월 15일 해방도 경축하는 취지에서 광복절로 변경할 것을 발의하여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이 때문에 1949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식’(정부 수립 1주년)을 치른 후, 1950년 8월 15일은 6·25전쟁 중에 ‘민국독립 제2회 기념일’로 경축했다. 1951년 8월 15일은 ‘제3회 광복절’(제6주년 광복절)로 불렀다가, 다시 1952년에는‘8·15 해방독립기념일’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 날은 제2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일이기도 해서 ‘대통령 취임식 및 제7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으며, 「대통령 취임사」와 「8·15기념사」의 각기 발표되었다.

“지금부터 4년 전인 1948년 8월 15일에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은 우리 한국 민족은 물론 세계 모든 민주국가들의 다같이 기뻐하며 가장 가치 있고 중대한 성사로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독립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은 국제연합이 제일 먼저 실질적으로 성취한 업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탄생된 것은 우리 전 민족 인구의 삼분지 이에서 우리의 고유한 국권을 회복시킨 것이며, 우리의 장구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민중에게 공화적 자결주의를 회복한 것이오, 또한 우리 전 민족이 자유와 민주정체로 장차 전국 통일을 실현한 굳건한 토대를 세운 것입니다.”(이승만 대통령, 「8·15해방독립기념일 기념사」 (1952년 8월 15일) 중에서)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대한민국 건설)을 강조하면서 독립과 정부 수립을 언급했다. 이런 점에서 건국과 독립과 정부 수립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맞이한 8·15경축식은 ‘독립절’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러던 것이 1954년의 ‘제9주년 광복절’ 이후로는 광복절로 고정되었다. 문제는 1951년까지는 제3회 광복절이라고 연설문에 기록된 것을 1953년 공보처에서 「담화집」을 출판할 때 제6주년 광복절로 수정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4년부터는 9주년으로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 1953년까지는 독립기념일(1948년 8월 15일)을 주로 기념하고, 해방기념일(1945년 8월 15일)을 함께 지키던 역사적 의미를 잊어버리고 단순한 해방기념일로 축소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부 수립 초기에는 1945년의 해방보다 1948년의 독립이 중요시되었고, 광복절의 연혁 또한 독립기념일인 1948년 8월 15일이 기준이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끝나고 1954년 광복절부터 해방기념일인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잘못 계산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잘못 계산된 광복절 역사」중에서

그러면 김구는 국부가 될 수 없는가? 손세일은 『월간조선』에 「이승만과 김구」를 14년에 걸쳐 장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저자의 말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의 두 국부”라고 기술했다. “이승만과 김구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창건한 정치지도자이다. 김구는 ‘국부는 이승만 박사 한 사람뿐’이라고 겸 의 말을 했지만,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을 만든 국부라고 할 수 있다. 김구가 없었더라도 건국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시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백범이 있었기에 임시정부가 유지됐다. 임시정부 덕분에 대한민국에 적법성이 있는 것이다.”

손세일의 시사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부가 꼭 한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건국과 임시정부와의 관련성이다. 다른 ‘1919년 건국론자’들이 임정 중심의 건국론을 펼치던 것과 달리 ‘1948년 건국설’을 인정하면서도 임정으로부터 계승되는 헌법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를 대립 관계로 보던 기존의 국부론과 다르게, 이승만과 김구 두 사람을 모두 국부로 주장하는 손세일의 논리는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경우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대륙 총사령관으로서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토를 지키고 민주헌법으로 미합중국을 세웠다. 모든 것이 국부의 조건에 부합된다. 그러나 미국은 국부라는 말 대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이라고 부른다. 어느 특정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에 기여한 사람들로 건국 초기 대통령 5명을 포함하고, 대륙회의 연합 규약, 독립선언서, 연합 규약, 미국 헌법에 참여, 서명한 13개 주의 대표 정치인과 관련된 남성들을 일컫는다. 서명자 56명 전원이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상자는 147명이며, 이밖에도 1765년 버지니아 식민지회의 의원이 되어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명언을 남긴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을 사는 정치인들과 똑같이 오류를 가진 인간이다. 이 때문에 이것은 동양에서 영웅사관(英雄史觀)에 의해 국부(國父)를 추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 인식이다. 역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인식하는 민중사관(民衆史觀)은 더욱 아니다. 연방국가 미국의 정치적 특성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빚어낸 특별한 역사 인식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도 한 사람의 국부를 추앙하기 위해 진영 간에 갈라져서 극한적인 갈등을 겪는 것보다 미국처럼 ‘건국의 아버지들’을 선정하면 되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과가 존재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통일 노선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우선하여 국가의 기초를 다진 이승만과 당시의 상황은 비현실적이었지만 통일을 강조하여 미래‘통일 한국’을 위한 이상의 기초를 심어놓은 김구 두 사람의 선택에 괴리는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우리 국민을 위한 고민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에 감안할 때, 지금 우리 사회에는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상대 진영의 입장을 상호 존중하도록 이끌어 주는 역사 인식으로서 국민통합사관(國民統合史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승만과 김구, 누가 국부(國父)인가?」중에서

더욱이 해방 이후 환국하여 서울에서 재결성된 임시정부가1947년 3월 4일 임정을 정부로서 봉대하기 위한 개편을 단행하면서 주석 이승만, 부주석에 김구를 선출하고, 임정의 각 부장은 이승만과 김구가 추후 선임하여 국무회의의 인준을 받도록 의결했다. 이것이 최후의 임정으로 이때 이승만이 주석으로 선출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에서 개인(Personal Qualities)의 역사적 정통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1년까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결과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은 건국이 완성된 정부 수립보다 건국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과 비교해 보면 미국은 독립선언부터 정부 수립까지 13년이 걸렸고, 대한민국은 1919년의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29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두 국가의 건국 과정을 비교하면, 미국은 독립 당시에 13개 주가 영국령 식민지였지만 이미 자국민으로 구성된 식민지의회가 자치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주권행사를 선포한 독립선언일이 영토·국민·주권을 갖춘 사실상 건국일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제에 영토와 국민을 강탈당하였고 국외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상태여서 국가로서 기능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해방이 되고 미군정기를 거친 후 주권을 이양 받게 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에 동의하면 “광복절을 폐지하고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광복절이 곧 건국절이기 때문이다. 1949년 9월 국회에서 국경일 제정을 논의할 때, 광복절의 개념을 독립기념일(1948년 8월 15일)로 정한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한다. 그때는 독립과 광복·건국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1948년 건국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과물이며, 새로운 국가건설(건국)은 독립운동의 최종 목표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완성된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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