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 GESTAE POPULI ROMANI' 즉 '로마인의 여러소행'을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집필의 방향을 이렇게 삼은 데에는, 어떠한 사상도 어떠한 윤리 도덕도 심판하지 않고 인생 무상을 숙명으로 짊어진 인간의 행적을 추적해 가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는 과정에 있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입니다.
--- p.9
한니발은 쫓아오는 로마군과 아직 부딪쳐보지도 않았는데, 로마군의 규모와 그 구성에서부터 두 집정관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 p.176
이리하여 제 2차 포에니 전쟁의 무대에 또 한사람의 천재적인 장군이 등장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수제자가 한니발이라면 그 한니발의 수제자는 바로 이 스키피오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제자의 재능을 시험할 기회를 갖기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리고 그것이 그의 행운이기도 했지만. 한니발의 경우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 p.243
로마군 경무장 보병은 스키피오가 세운 작전에 충실히 따랐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해오는 코끼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스키피오의 명령대로 경무장 보병소대는 중무장 보병소대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이리하여 가로로 길게 이어진 느낌이었던 로마군의 전열에 소대별 간격이 생겨났다. 이 통로가 코끼리의 돌진력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스키피오는 코끼리를 염두에 두고 통상적인 소대별 간격도 자마에서는 더넓게 잡아두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코끼리는 가볍게 몸을 피한 로마의 경무장 보병들 사이로 그대로 지나갔을 뿐이다.
--- p.335-336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가 왜 하필이면 지금 그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스키피오 아이릴리아누스는 폴리비오스를 돌아보며, 그리스인이지만 친구이기도 한 그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폴리비우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 pp. 425-426
그런데 나더러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요. 장군께서 내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소. 장군과 카르타고 정부가 아무리 승복할 수 없다 해도, 내가 제시한 강화 조건을 바꿀수는 없소. 한니발 장군, 장군께서는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라고 권할 수 밖에 없소. 왜냐하면 카르타고인, 그 중에서도 특히 한니발 그대는 무엇보다도 평화롭게 사는데 능숙하지 못한 모양이니까.
두 장군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헤어져 언더을 내려왔다. 역사상 유명한 '자마 전투'는 이튿날 아침에 결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카르타고와 로마, 5만명의 병력과 4만명의 병력이 맞붙는 대회전인 동시에, 전략 전술의 스승과 그의 제자가 벌인 첫 대결이기도 했다.
전술의 최고의 걸작이면서도 로마인의 집요함 때문에 결국 전쟁의 행방을 결정하지 못한 칸나에 전투와는 달리 자마 전투는 전재의 행방을 결정하는 동시에 지중해 세계 전체의 장래를 결정하는 싸움이 되었다.
--- p.330-331
고령자라서 완고한 것은 아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육체의 쇠약이 정신의 동맥경화 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완고함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훌륭한 업적을 쌓음으로써 고령자가 되었기 때문에 완고해진 것이다.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공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98
7만 명의 로마 보병은 5만 명의 한니발 병사들에게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멋지게 사방을 멋지게 포위당해 버렸다. '로마 연합'의 핵심을 이루는 시민병들이다. 적에게 포위당했다고 해서 당장 두 손을 들고 항복할 병사들이 아니다. 또한 지금가지의 전투가 모두 그랬듯이, 한니발의 로마군 포위작전은 곧 '섬멸 작전' 이었다.
---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