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처럼 확정되지 않은 기원과 기억의 공백 덕분에, 마치 내가 막연한 선입견에 따라 주인공을 마녀로 착오했듯, 누구든 다시 지어내고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조그맣고 단단한 원재료 하나에서 출발하여 언제든 무엇으로든 새로 끓일 수 있는 수프처럼, 문학은 인간 공동체의 언어를 다 담아내면서 매 순간 새로 형성된다. 단추인지 조약돌인지 모호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자양의 이야기가 풀려나올 최초의 말. 우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그것을 하나 꺼내놓음으로써 누구나 보태고 나눌 글쓰기를 시작한다.
---「단추와 조약돌」중에서
세계와 나 사이에 시간의 격차가 발생한다. 내 안에 미처 소제되지 못한 정보가 잔류한다. 세계에서 사라졌는데 내 안에서는 여전히 사무치는 것이 있다. 부유하며. 명멸하며. 빛나던 것이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 여전히 보인다. 보았던 것이 보이는 것에 잔존한다. 영상이 중첩되면서 정지된 것조차 운동하는 것만 같다. 죽은 것이 산 것만 같다. 잔상이라 한다.
---「감광과 잔상」중에서
그런데 인간이 멀리서 운반한 조약돌을 자기 앞에 두고 그것에 종족의 이미지, 미적인 감정,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쩌면 사랑, 기억, 무리의 삶과 죽음, 태어남과 나이듦의 생각, 시간의 감각을 겹겹이 투영한다면, 그것은 조약돌에 자취를 새기는 행위인가 아닌가. 조약돌을 종족과 돌려보며 즐거워하기란 그것의 외형에서 시각적 쾌락을 느끼기를 넘어서 그것에 감정, 기억, 생각을 거듭 더하며 전하는 행위 아닌가. 어쩌면 100만 년도 넘게 대대로.
---「마카판스갓의 조약돌」중에서
나는 책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목과 형상의 책. 꿈속에서 나는 책의 발견자나 목격자에 불과하지만, 꿈을 꾸며 꿈의 내용을 창작한 사람은 나이므로 실상 나는 그 책의 저자이다. 나는 현실에서 결코 본 적 없고 읽은 적 없고 쓴 적 없는 책을 꿈의 마술적 장치를 빌려 제작한다. 꿈은 불가능한 책들의 출판소이다. 꿈속에서만큼은 나는 꽤 유능한 출판기획자이자 편집자이다.
---「백일몽의 서가」중에서
책인데 체 같은 책도 있다. 책에 최종의 말들을 인쇄하기 전에 무수한 초고, 다시 쓴 말, 고친 말, 지운 말, 덧붙인 말, 덧입힌 말들이 생겨난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말들이 고운 체에서처럼 하얗게 떨어져 쌓인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최종의 말들 이전의 말들을 체로 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일몽의 서가」중에서
문학과 맹점. 글쓰기는 언어의 구멍과 심연의 윤곽을 더듬어 그리는 작업이고, 텍스트는 그 명멸하는 맹점들의 성글거나 촘촘한 조직체라면. 나는 맹점을 읽는다. 또는 읽지 않는다. 우리는 맹목으로 만나고 말한다. 또는 말하지 않는다.
---「백일몽의 서가」중에서
새가 나무에 날아오거나 난간에서 놀면 창의 간유리에 흔들리는 식물과 새의 그림자가 묻는다. 창은 세 폭의 움직이는 수묵화조도가 된다. 창을 열면 나뭇가지와 새의 그림자는 간유리 대신 방 안에 드리운다. 새의 노랫소리만 아니라 날갯짓 소리까지 선물 받는다. 책상 앞 창밖으로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포로롱 그림자를 어른거리면 마음에 고마움과 평안이 샘솟는다. 저 가벼운 몸짓의 리듬을 글에 담아 닮고 싶다.
---「겨울 새 손님」중에서
시가 낡는 것은 시간. 시가 삭는 것은 습기, 불, 좀, 곰팡이. 하지만 이런 것들만 시를 망가뜨릴까. 독자 앞에 갓 쓴 시를 가져다준들 그는 그것을 부술 것이다. 읽어가며, 읽은 것을 잊어가며, 몇 편의 인상과 몇 개의 낱말만 남아, 감상과 숙고를 구실로 몇 줄을 오려 베끼며. 읽기는 사실상 강력하게 파괴적인 행위다.
---「사포의 향낭」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