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하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는 동요입니다. 또 하나는 “까치가 우는 것을 보니 손님이 오시려나 보구나” 하셨던 외할머니 말씀입니다.
초가집 시절이었습니다. 집 주변에서 가장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를 차지했던 것은 까치였습니다.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친구였지요. 게다가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한 친구입니다. 누가 집으로 오는지를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까치에게는 낯선 이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까치가 경계의 소리를 내고, 곧이어 외할머니 말씀대로 손님이 옵니다. 어릴 때는 그런 설명을 해주는 분이 없어 무척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더라도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새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까치는 압니다. 하지만 생김새와 까치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이야기 말고 더 말할 것이 있을까요? 이제라도 이야기할 것이 많아져서 다행이고 기쁩니다. 까치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품고, 어린 새를 키워 독립시키기까지의 일정, 곧 까치의 번식 생태를 밝혀낸 것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꿋꿋이 걸으신 오영조 선생님의 애씀 덕분입니다.
새의 번식 일정에 동행하는 것은 부모 새 각각의 역할을 밝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부모 새의 암수를 구별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외형만으로도 쉽게 가릴 수 있는 종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종도 많으며, 까치가 그
렇습니다.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관찰한 끝에 두 개체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먹이를 선물로 전하는 수컷의 구애 행동과 짝짓기 때의 위치를 살펴 결국 암수를 구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까치의 번식 생태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하루 종일 둥지 나무 하나만 바라보는 삶, 그 일정을 세 달 남짓 반복하는 삶, 결국 길고도 먼 고행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까치입니다. 까치의 움직임만 관찰하기에도 몸이 하나인 것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까치 또한 홀로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까치에게도 이웃이 있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갑니다. 저자의 다정한 눈길은 까치에 머물지 않고 이웃의 생명에게도 온전히 가 닿으며 이 책이 완성됩니다.
저자는 자연의 모습을 닮아 겸손한 분입니다. 그 오랜 시간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며 까치가 둥지 튼 나무를 지켰음에도 과학적 사실은 전문가의 몫으로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까치에 대해서라면 이제 최고의 전문가는 오영조 선생님입니다. 저자만큼 까치에 다가선 사람이, 눈높이를 맞춘 사람이,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 사랑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가섬’이라는 낱말을 좋아합니다. ‘기다림’이라는 낱말도 똑같이 좋아합니다. 다가섬은 그 깊이만큼, 기다림은 그 길이만큼 아름답습니다. 『늦깎이 까치 부부와의 만남』은 까치에 깊이 다가서서 오래도록 기다리며 저들 삶의 속살까지 오롯이 지켜본 향기로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간절하고 감동적인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김성호 (『동고비와 함께한 80일』, 『까막딱따구리 숲』 저자)
드디어 『늦깎이 까치 부부와의 만남』이 세상에 나왔다. 판교환경생태학습원 옥상 정원 남단 난간에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메타세쿼이아 가지에 걸쳐 있는 까치집을 탐색하는 오영조 선생의 모습을 봐왔던 나로서는 당사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마음이 제법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탐조할 때의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진지함 ? 그녀의 삶 전체가 진지함으로 똘똘 뭉쳐 있다 ? 을 넘어서는 듯하다. 차라리 종교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경건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따라서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이 기록의 배후에는 삶의 진지함과 영혼의 경건함이 녹아들어 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114일의 끈질긴 대장정은 그런 순수한 열정과 경건한 마음이 있어서 가능했을 터이다. 몇 년 전 하남까지 원정하여 이뤄낸 꾀꼬리 탐조 기록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고,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참새 아파트의 기록도 기대를 모으고 있는 터라 이번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적지 않았다. 파일을 열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읽어냈다. 까치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섬세함, 엄마 까치와 아빠 까치의 작은 움직임의 차이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 까치의 일반적 특성에 ‘늦깎이’ 까치의 생태를 비교하는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환경교육을 하는 기관인 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으로서 본다면 자연에 대한 작가의 감성과 태도가 두드러지게 돋보인다. 까치의 집이 ‘스카이 캐슬’로 보이거나, 집짓기가 늦어져 마음이 바쁜 까치에게 ‘늦깎이’로 이름 짓기, 아빠 까치의 조기 교육이나 엄마 까치의 조바심 공감하기, 거기에 까치의 사랑 노래를 달달하게 맛보는 그녀의 감성에서 인간과 까치 사이에 어떠한 거리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는 이성적 글쓰기 논리의 강박감 같은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연’스럽다!
‘기후 재앙’, ‘기후 비상사태’가 이젠 일상적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이 사태를 나는 ‘위기 인식의 위기’라고 부른다. 이 위기의 역사적 기원은 갈릴레이에서 베이컨, 뉴턴,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근대 과학과 철학에서 비롯된다. 이 흐름의 핵심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연을 대상화하고, 무한정 개발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파괴를 성찰 없이 자행하게 되었다. 자연과의 소통을 신화, 망상으로 몰아붙이고 ‘인간을 이런 불합리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계몽주의의 목표라고 선언했다. 이 흐름이 현재의 부와 편리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재앙을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환경교육은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을 대상화하여 이용하고 버리는 태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세를 강조한다. 그러기에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지속가능한 자연을 우리 후손에 전해주기 위한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늦깎이 까치 부부와의 만남』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와 까치는 하나의 공동체로 엮여 있다. 따라서 이 글은 환경교육의 핵심을 꿰뚫는 환경교육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오영조 선생의 노력과 수고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 하동근 (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