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코레시스는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원형의 춤을 추는 ‘윤무’(輪舞) 또는 세 사람이 원탁에 마주 앉아서 주고받는 ‘담화’(談話)를 연상시킨다. 윤무를 추는 무용수들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하나의 춤, 하나의 연기, 하나의 표상을 만든다. 셋은 하나가 되어 돌면서 한 몸처럼 뭉치는 듯하다가 어느새 떨어져서 각자의 개성을 표현한다. 나아감과 물러남, 어울림과 두드러짐을 오가는 역동적인 몸짓이 펼쳐진다. … 윤무의 춤사위에서는 홀로 추는 독무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역동적인 에너지, 섬세함과 우아함, 카리스마와 신비감, 조화와 어울림의 생명력이 빚어진다. … 다마스쿠스의 요한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삶은 페리코레시스의 춤처럼 보였다.
---「8. 하나님의 하나 됨과 셋 됨을 설명하는 방법은 하나일까?」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메커니즘에 무감하다. 우리가 대면하거나 실감하지 못할지라도 거대한 도시의 시설과 제도의 배후에는 그것을 움직이는 누군가가 있다. 성경은 인간 실존의 구조 배후에 영적 존재들이 운행자로 배치되었다고 말한다.
---「11. 하나님은 왜 인간 외에 다른 영적 존재들을 지으셨을까?」중에서
새내기 부모가 갓난아기와 관계 맺으려면 수십 년 동안 익힌 고등 언어를 내려놓고 ‘베이비 랭귀지’를 익혀야 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는 가늠할 수도 메울 수도 없는 존재의 차이가 있다. 관계 맺기는 ‘서로’ 길들이는 일인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으니 하나님이 먼저 연약하고 낮은 인간에게 자신을 맞추실 수밖에 없다. 만물을 조성한 창조주가 비천한 피조물의 친구이자 종으로 낮아지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자기 맞추심(God’s self-accommodation)이다. … 이 모든 이야기를 꿰뚫는 하나님의 자기 맞추심이 바로 언약이다.
---「16. 언약이란?」중에서
예정과 섭리 같이 거대한 신념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질 수 없고 우리의 영혼과 몸이 그 안에 뛰어들어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오해하고 예정과 섭리를 낭만적 허구나 사변적 궤변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무엇보다 신앙고백을 담은 실천적인 교리이다. 처음 예정 교리를 말한 아우구스티누스나 그를 계승한 칼뱅도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필연성과 법칙’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칼뱅은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니면 예정과 섭리의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고 여겼다. 신앙에 입문한 새내기 그리스도인이 머리로 수긍하는 교리가 아니라, “하늘에 머리를 들이밀고 바다에 발을 담가 본” 참된 신앙인이 고백하는 교리, 체득(embodiment)의 교리인 셈이다.
---「23. 만사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이뤄진다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할까?」중에서
교회로 오가는 길은 세상을 초월하지 않는다. 광장과 시장을 지나 학교와 마을로 이어지고 숲을 지나 이웃 마을로 뻗친 길 그 어딘가에 교회가 있다. 그 길에 있는 모든 것들, 즉 시장 선거(정치), 밀의 가격(경제), 신임 교사(교육), 가십거리(언론), 거리 악사(예술), 일찍 개화한 봄꽃(자연)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세상 속에 거하는’(요 17:15-16) 교회의 지정학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 길 위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0. 그리스도인은 왜 정치, 문화, 환경, 인권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중에서
이런 구절들은 인류 멸망을 그린 SF 영화로 물든 상상력이나, 문자에 대한 편집증을 버리고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구원은 이웃 국가의 침략에 맞서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간헐적인 해방을 누리는 국지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어떤 구약 본문은 미래에 일어날 우주적 구원을 묘사하기 위해 천체가 어두워지고 일그러진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 표현은 하나님의 구속이 총체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것을 말할 뿐 실제로 우주가 파괴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40. 새 하늘과 새 땅은 세상이 끝난 다음 펼쳐지는 세계일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