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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검은 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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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검은 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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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504쪽 | 560g | 140*210*35mm
ISBN13 9788925561219
ISBN10 89255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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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은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얀 와이셔츠 틈새로 피부가 보였다. 햇볕에 타지 않은 피부였다.
팔이나 목과는 색깔이 달랐다.
그가 뒤통수에 댄 손바닥에 힘을 주어 렌의 얼굴을 셔츠에 묻었다.
다시 눈을 감자 마른 풀과 비슷해 기분 좋은 냄새가 콧속에 가득 찼다. 셔츠 틈새를 통해 입술이 피부에 닿았다.

그대로 시간이 멈추었다.
렌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피로감이 온 신경을 마비시켰다. 지금 렌이 느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체취뿐이었다. --- p.42~23

아소는 일어나려고 하는 렌을 팔로 다시 끌어당겼다.
“시험해봐. 이렇게 하면 잘 수 있지 않겠어?”
꿀처럼 달콤한 향기가 콧구멍을 간질였다. 여자 체취도 향수 냄새도 아니건만, 그보다 더 달콤했다.
매미 소리가 귓속에 울려 퍼졌다.
그해 여름, 숨이 막힐 듯 더운 취조실에서 그 냄새를 맡았을 때 울려 퍼진 매미 소리. --- p.77~78

렌의 말은 일부 옳았다. 그때 분명 아소는 이 남자가 ‘무서웠다’. 무슨 강력한 마법처럼 그 덥고 좁은 공간을 지배한 이 남자의 달콤한 향기가. 가녀린 울음소리와, 긴 속눈썹 아래에서 윤기가 흐르는 흑단처럼 빛나던 눈동자의 힘이.
렌은 마치 입으로 들어가서 아소와 한 몸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정신없이 혀를 탐했다. 형체 없는 뭔가에 몹시 굶주렸는지 혀끝이 불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아소는 렌의 등을 손바닥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신경질적인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양팔로 몸을 끌어안고 등을 탁탁 두드렸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렌은 그제야 입술을 떼고 아소의 품에 얼굴을 묻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쉬었다. --- p.177

아소는 렌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변함없이 주눅이 들어 주뼛주뼛하는 눈으로 보였다. 이 눈을 보고 가지와라는 타고난 악당의 눈이라고 했다. 얽히지 않는 편이 나은 인간이라고,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생물의 눈이라고.
이 남자의 내면에는 다른 인격이 하나 더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야 깔끔하게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의 몸 밑에서 여자가 그러듯이 영문 모를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쓰는 이 사람과, 가지와라와 오이카와가 이 세상에서 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렌의 인격이 단 하나임을 아소는 알고 있었다.
그 암흑은 이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눈동자와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 있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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