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의 증가는 정말 고령화와 진단 기술의 발달에 따른 현상일까? 대표적인 예로, 아토피는 70년대 이전, 우리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흔한 질환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20%가 아토피를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되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 이후 아토피환자의 수는 약 3배 정도 증가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린이 아토피의 증가는 환경, 유전, 식습관 등 다양한 원인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구의 고령화나 특별한 진단 기술의 발달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암환자 역시도 최근 29세 이하 젊은 암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젊은 암환자의 증가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암이 단순히 고령화나 진단 기술의 발달로 그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나 역시도 진료현장에서 이러한 젊은 암환자들의 증가는 체감해온 부분으로 분명 어떠한 이유로 아주 젊은 나이에 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는 청년, 어린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언가 우리 사회에 암을 유발하는 어떤 원인 요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장 〈의료에 관한 오해〉」중에서
현대의 만성질환 관리는 보통 ‘조기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의료 산업’속에 환자로 노출되면서 시작되는데, 이후에는 평생에 걸친 약물 관리, 정기 검진 등으로 지속적인 의료 소비자 형태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러다 기존의 만성질환 관리 체계에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 환자들 중 일부는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이들 중 일부도 결국은 건강 기능식품, 의료기기, 민간요법 시장 등으로 넘어가 또 다른 산업의 소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가 어찌 보면 현대의 대략적인 만성질환 환자 관리 체계의 맥락인 것인데, 이런 만성질환 관리 체계 안에는 어쨌든 의료가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아건강’ 상태에서 관리하는 예방 의학적인 체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최근에는 의사들에게도 환자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나름의 지침이 권고되고 있고, 생활 코디네이터와 같은 다양한 시도들도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질병’을 빨리 진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질병’에 대한 대증치료 약물을 처방 받으며, ‘질병’에 대한 진단 검사, 정기 관리를 받거나 ‘질병’에 대한 특효 식품이라든가 특효 요법이라는 또 다른 시장을 찾아나서는 만성질환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1장 〈환원론과 마법의 탄환〉」중에서
‘플렉스너 보고서’를 기점으로 의학은 역사상 유례없는 자본의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지원을 받는 한편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료 재단들은 명목상은 기금 운영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고 하였으나, 후원금은 사실상 의과대학의 구체적인 개혁을 조건으로 하였고, 이는 결국 의과대학 운영에 자본이 개입하게 만들었다. 재단은 연구 지원을 통해 의과대학의 연구방향을 설정하였고, 개업과 겸업하는 교수진이 아닌 의과대학 전임 교수진을 요구하면서, 이러한 전임 교수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즉, 의학의 과학화는 필연적으로 자본을 필요로 했고, 의학은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본가들의 개입을 감내하며 과학화를 추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20세기 거대 자본들의 의료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기부금이 아닌 일종의 계약이었다. 그리고 ‘플렉스너 보고서’는 교육 재단들과 의과대학 사이에 이러한 계약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가장 큰 단초였다. 결국 ‘플렉스너 보고서’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당시 엘리트 의사들과 대학의 교수진 및 부유한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모두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산업화 시대의 의료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한다’는 순수한 목적만을 가지고 발달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 집단의 이해관계 속에서 시대적 흐름을 따라 발전했다.
---「2장 〈현대 의료 체계의 탄생〉」중에서
이처럼 한의학과 같은 대부분의 보완대체의학들은 기본적으로 ‘이론 의학’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지원 문제를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부분의 이런 의학들은 과학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상품성과 시장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고, 투자한 주체에게 실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많은 보완대체의학들의 치료법은 이미 자연에 있는 것들이라 특허권이 없다거나 시술자 의존적이라 산업계 주도로 의료를 끌고 나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론 의학’ 중심의 의료 체계에서는 인류가 자연에서 경험적으로 획득한 많은 ‘임상 의학’적 노하우들이 배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 의학’의 지위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본 의존적이다. 그리고 결국 ‘이론 의학’ 중심의 의료 체계는 자본의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 게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의료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의료 산업은 점점 더 호황을 누리지만 질병의 부담은 점점 더 가중된다. 어떻게 해서든 자본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전체 의료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2장 〈이론 의학 중심의 의료 체계〉」중에서
현실에서 의료인들은 종종 자신이 의료인이기 때문에 모든 의학적 판단에 있어서 올바를 것이라는 오류를 저지를 때가 많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의학 분야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타의료 직종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또 다른 치료적 대안이 있는 환자에게 자신의 수준에서 치료 범위를 한정하는 등의 태도는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교만 가설’과 ‘후광 효과’의 사례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실에서는 머리가 좋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실수에서 교훈을 얻거나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미국의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SAT 점수가 높은 사람은 점수가 낮은 사람에 비해 ‘편향 맹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편향 맹점’이 크다는 것은 자기 논리의 허점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향 맹점’이 큰 엘리트들은 실수를 해도 그럴듯한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지능을 활용하고, 오히려 자신의 견해에 의심을 품지 않는 교조적 태도는 점점 더 심해진다.
---「3장 〈현대 교육의 문제와 의료 엘리트의 함정〉」중에서
결국 의료계의 갈등은 각 의사의 직능과 규정에 대한 사회적 정의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이는 곧 교육의 문제로 연결되고, 의료인의 폭 넓은 의료 경험과 사고의 확장 문제와도 연결된다. 아마 우리나라도 의사들이 마음껏 한약을 한의사들처럼 처방할 수 있고 침치료를 시행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한의학적 치료를 비판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의사들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의사들처럼 주도적으로 한의학을 활용하거나 관련 학회를 형성하였을 수도 있고, 한의학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는 한의사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의사들에게 모든 의학적 처치에 대한 권한과 교육이 있었으면 한의사들 역시 지금처럼 서양의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의료계와 과학계와 좀 더 자유롭게 소통하며 한의학을 과학화하고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문제는 당연히 적절한 교육과 의료 체계 자체가 갖추어져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찌되었든 현대 의료 체계 내에서의 ‘의료인’에 대한 규정이 모든 ‘임상 의학’적 지혜를 품을 만큼 자유롭지가 않기에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친 자율성으로 인한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을 걱정하여 생긴 조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현재의 방식이 무조건적인 최선의 대안인가에 대대해서는 이제는 한번 의문을 품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3장 〈한국의 의료인들: 의사와 한의사는 왜 이렇게 싸우는가?〉」중에서
점점 더 증가하는 만성질환 사회에서 우리는 현대 의료 시스템을 지지하기 위해 오히려 ‘질병 중심의 의학관’을 가진 의료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한 의료에 우리의 건강 문제를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고, 그 연구에 있어서도 ‘연구 자체를 위한 연구’로 대표되는 쓸모없는 자원 낭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그렇게 전반적으로 목적의식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시험을 위한 시험공부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과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의료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인 목표 의식 재고가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적 엄밀성을 기한다거나 끊임없는 투자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지만, 투여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해나가야 한다.
세계적인 투자개발회사의 대표이자, 미국 내에서만 1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원씽The One Thing》 의 저자인 개리 켈러와 제이 파파산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One Thing, 특히나 ‘그것을 함으로써 다른 모든 일들을 쉽게 혹은 필요 없게 만들 일’을 먼저 하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질병의 문제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의료’의 발달이 아닌 ‘사회 환경’과 ‘생활 습관’과 같은 질병 전 단계(아건강) 상태에서의 조절인 것이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아건강 상태에서 조절하면 그 뿌리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예방 의학적인 문화가 발달하면 지금처럼 이미 만연해버린 질병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회적 차원에서 수많은 비용 부담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4장 〈우리가 변해야 하는 이유〉
나는 사실 암환자들을 진료할 때 특히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적으로 개선되지 않던 환자들의 여러 불편 증상들, 항암 후 신경통, 식이 장애, 장폐색, 코끼리 다리처럼 부었던 림프 부종, 불면, 심지어 암성 통증까지도 때로는한방 치료를 통해 크게 호전될 때가 있었다. 현대 의학 치료만 고집했더라면 환자들에게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2주마다 재발하는 장폐색으로 위중했던 환자가 처음 자녀분과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나를 찾아오셨을 때, 그 보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장폐색이 계속해서 재발할 경우 환자의 사망률은 급격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환자들은 이러한 한방 치료나 다른 치료를 활용하는 것을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말하기를 꺼려한다. 내게 진료받은 어떤 환자분은 자신이 한방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대학병원에 이야기할 경우 더 이상 주치의가 진료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환자분도 계셨다. 물론 이는 환자 입장에서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현재 의료 시스템 상에서는 사실 이러한 주치의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자신이 하고 있는 치료에 변수가 개입되었을 경우 위험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의료라는 직능 규정이 지나치게 좁고, 넓게 소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효율적인 시스템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고스란히 환자들뿐이다.
---「4장 〈의료가 변해야 할 부분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