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는 우리 신체의 연장이다. 인간은 이러한 보충적 사물을 신체 범위에 포함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동작이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석기시대 유물을 직접 사용하면서 그것의 물리적 특징을 밝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형태의 세부속성에서 도구의 기능적 의도와 인체공학적으로 고려되었던 사항이 무엇이었는지 직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p.5,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중에서
나무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원자재였다. 숲 생태계 자원을 절대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에서 목재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건, 에너지, 건축, 옷 심지어 영양 보충제의 기본 원료로 쓰였다. 목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특성이 활용되었다. 또한 나무의 크기는 사물의 규격을 결정하였다.
--- p.41,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중에서
과거의 도구들은 부품을 교환하도록 제작되지는 않았다. 여러 용도로 사용된 도구들도 있었지만, 기본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 예비 부품이라는 개념은 세계적 규격화가 낳은 결과이다. 과거에는 도구가 사용자의 신체에 맞춰 제작되었고, 얼마나 잘 맞추어져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었다. 또한 도구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요소도 더해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편적 기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도구로서 인정된다.
--- p.129, 「사물의 생태학」중에서
과거에 사용된 재료 중 일부는 그 다기능성 때문에 인공재료를 이용하여 현대의 산업 문화 속에서 계승된다. 이 부츠는 가죽과 자작나무 껍질이 현대적 물질로 재해석된 두 사례에 해당한다. 대량소비가 발달함에 따라 기존에 존재해온 일부 규격화된 형식의 효율적 형태와 구성방식은 거의 동일한 결과를 낳도록 재현되었다.
--- p.204, 「전달」중에서
‘컴퓨터(computer)’는 복잡한 계산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행동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는 코딩을 배우고 일상은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으며,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매일 일어나는 의식(儀式)이 되었다. 컴퓨터는 개개인의 제단(祭壇)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마우스는 스크린 위에서 흔드는 오늘날의 마법 지팡이다.
--- p.249,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중에서
정보 수집은 과거부터 사용되어온 관리 도구이다. 통계의 기원은 ‘국가의 상황에 대한 과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으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진다. 핀란드국가통계연구소(Finnish National Statistics Institute)는 1865년에 세워졌다. 주요 분야의 발전 양상에 대한 최신 정보는 총리실과 협력해 제작한 보고 시스템인 〈핀디케이터〉를 통해 제공된다.
--- p.304, 「운영체계」중에서
물질에 대한 인간의 행위는 상호호혜적인 관계 맺음을 동반한다. 그 둘 사이에는 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 주고받음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물질의 속성은 인간이 형태를 만들어내거나 기능을 투영하는 작업을 위한 역동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인간이 물질의 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식도 함께 시작되었다. 물질을 변형하는 능력은 초자연적 능력으로 여겨졌다. 물질을 능숙하게 다루고 가공하는 능력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그 과정의 결과물인 유물은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 p.309,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중에서
재활용의 개념에는 물질이 생산물에서 또 다른 생산물 그리고 물질로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된다. 혹은 그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순환(cycle, 사이클)의 개념은 지속해서 변화한다는 해석을 낳는다. 순환에 대하여 언급할 때, 시간과 물질 사이의 대화는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독특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사이클’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주기’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연속 혹은 반복의 의미를 함유하는 일정한 시간 간격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이 개념에 관한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 p.319,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중에서
핀란드에서는 500m² 이상의 넓이를 가진 호수와 물길이 18만 7,999개에 이른다. 핀란드 영역에 물이 이렇게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상황이 초반에는 정착민들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했겠지만, 결국에는 의사소통의 주요 네트워크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수로는, 핀란드에서 인간의 이동과 물자의 대량 수송을 위한 경로가 되어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었다. 겨울에 강과 호수는 단단한 표면으로 얼어버린다. 발트해 역시 얼어버린다. 물이 얼음으로 고체화되면서 그 표면은 새로운 이동 방향, 이동 네트워크, 새로운 속도에 대한 구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수들은 새로운 기술을 등장하게 하였다.
--- p.334, 「사물의 생태학」중에서
장인정신의 발현 역시 지식 이전의 또 하나의 사례에 해당한다. 기술 전문화의 한 형태에 해당하는 장인정신은 물질적, 기술적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유목민적 방식으로 핀란드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였다. 이러한 순환적활동은 지식 이전의 네트워크를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역할에 대한 이야기의 전달에도 영향을 끼쳤다.
--- p.335, 「전달」중에서
생체지능(bio intelligence)은 인공지능을 통하여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들은 환경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해주는 적응 통로로 여겨질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우리는 다시금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원시 기술에서 정보 기술로의 발전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물질적, 비물질적 환경은 ‘최상의’ 모습 혹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p.352,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중에서
사회의 모습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네트워크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사물의 의미에는 이러한 사회집단의 가치체계가 투영되어 있다. 그것이 기술적이든 정신적이든, 이러한 사물들의 의미는 구조의 환경을 설정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그 논리가 운영체계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물들의 사회적 삶인 것이다.
--- p.355, 「운영체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