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말은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이래 중국 민간 연예에서는 특히 장편 역사 이야기 공연을 ‘강사’라 불렀다. 이 ‘강사’는 점차 창 없이 이야기로만 공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들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은 점차 독서물로 문자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평화’다.
--- p.31~32
폐하께서는 저 현판의 뜻을 알지 못하십니까? 무도한 임금에게는 악랄한 백성이 있기 마련인데, 이는 모두 천제의 뜻입니다. 진시황을 매도한 행동에는 천제를 원망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에 천제께서 저를 시켜 폐하를 보원지전에서 저승을 관장하는 임금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승에서 사사로움 없이 송사를 판결하시면 폐하를 이승의 천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판결이 잘못되면 음산 뒤로 폄적하여 영원히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 p.53
한 고조는 세 공신을 배반했으니 세 공신이 한나라 천하를 나누어 갖게 하라. 한신에게는 중원을 나누어주어 조조가 되게 하고, 팽월에게는 촉 땅 서천을 나누어주어 유비가 되게 하고, 영포에게는 강동과 장사를 나누어주어 오왕 손권이 되게 하라.
--- p.59
두 사람은 장비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후원에 복숭아밭이 있었고 그 가운데 작은 정자가 있었다. 장비는 두 사람을 초청하여 정자 위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각자 나이를 밝혔다. 덕공이 가장 나이가 많았고, 그다음이 관우였으며, 장비가 가장 적었다. 이로써 나이가 많은 사람은 형이 되었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아우가 되었다. 백마를 잡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오우를 잡아 땅에 제사지냈다. 세 사람은 같은 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같은 날 죽기로 약속했다.
--- p.74
장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장팔장창을 빙빙 돌리자 적군은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가 적의 창을 꺾은 것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였다. 적진 속 장졸들은 모두 소리를 지르며 놀라 흩어졌다. 필마단기로 적진 속을 종횡무진 누비는 장비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 p.81~82
장비는 분노하여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손에 장팔신모를 들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여포를 향해 곧추 찔렀다. 두 필의 말이 서로 엇갈리며 30합을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평소 장비는 적을 죽이기 좋아했는데 이제 맞수를 만난 셈이었다. 또다시 30합을 겨루다가 장비는 창으로 여포의 창끝 명주 깃발을 베어 그의 얼굴에 덮어씌웠다.
--- p.121
여포는 장안에서 죄를 지은 뒤 동쪽으로 동관을 나와 서주로 도주했다. 근래에 알려진 바로는 조조가 황제 폐하의 성지를 받든 채 군사 10만과 명장 100명을 이끌고 수수에 주둔하여 여포를 잡으려 한다고 한다. 나는 기병 18명과 수수로 가서 조공을 만나 뵙고 군사를 빌려 여포를 격파하고자 한다.
--- p.140
그날 밤 장비와 유비는 군사 3만을 이끌고 한밤중을 지나 조조의 진채를 기습했다. 그러나 진채는 텅 비어 있었다. 유비와 장비는 조조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들은 서로 살육전을 벌였으나 날이 밝아오는데도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했다. 황숙 유비와 장비의 생사도 알 수 없었다.
--- p.167
유비가 공명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았다. 군사들의 용맹함이 천하의 으뜸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강력함도 비할 데가 없었다. 천시, 지리, 인화를 세 나라가 각각 한 가지씩 힘쓰며 사직을 세웠다. 유비는 마침내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다. 제갈량이 초막을 나올 때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 p.208
이때 주유는 장막을 친 배를 동원했다. 조조의 군사가 화살을 발사하자 주유의 병선 왼쪽 장막에 화살이 수북하게 꽂혔다. 그러자 주유는 노를 젓는 군사들에게 배의 방향을 바꾸게 하여 병선 오른쪽 장막으로 적의 화살을 받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유의 병선은 화살로 빽빽했다.
--- p.237
천지간에 세 사람만이 제사를 올려 바람을 불러올 수 있소. 첫째, 헌원 황제인데, 풍후를 군사로 삼아 치우를 항복하게 했소. 또 순임금도 고요를 군사로 삼아 바람을 불러일으켜 삼묘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하오. 이제 이 제갈량이 하도낙서의 술법을 끌어들여 원수께서 화공을 펼치는 날에 일진 동남풍을 일으켜 도움을 드리고자 하오.
--- p.245
황숙 유비가 형주를 지키자 백성들은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 노래를 불렀고 황숙의 어진 덕을 이야기했다.
--- p.263
열흘도 되지 않아 제갈량은 군사를 일으켜 세 부대로 나누었다. 조운에게는 자오성을, 장비에게는 파주로를 빼앗게 했고, 제갈량 자신은 가맹관으로 통하는 길을 점령했다. 세 부대는 10만에도 모자라는 8만 병력에 불과했다. 관우는 형주를 지켰다.
--- p.308
제갈량은 마초의 항복을 받은 뒤 군사를 거두어 익주로 돌아와 유비를 배알했다. 유비는 연회를 베풀고 관우를 수정후, 장비를 서장후, 마초를 정원후, 황충을 정란후, 조운을 입국후에 봉했다. 또 유비는 은혜를 베풀어 이 다섯 사람을 오호장군으로 삼았다.
--- p.318~319
관우가 출전하자 양 군사가 협공했다. 관우는 형주 동남쪽 산고개에서 곤경에 빠졌다. 관우가 곤경에 처한 지 며칠 뒤에 큰비가 내렸다. 그뒤 오나라와 위나라 양국 장수들이 형주에 이르러 성인이 하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 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