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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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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47*215*30mm
ISBN13 9788972773764
ISBN10 89727737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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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사르르 녹이고 마음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저는 어머니에게 수도 없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어머니의 애정을, 제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거든요. 어머니의 대답은 항상 제가 예상한 대로거나 그걸 뛰어넘어 한 번도 기대를 배신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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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받지 않도록 완벽하게 행동하는데 그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타도코로의 어머니가 저를 한 번도 칭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평소의 저였다면 분명 그걸 알아채고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타도코로의 부모님과 한번 만나봐 달라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꽤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 어머니가 타도코로를 좋게 봐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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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코로는 주말마다 딸아이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는 모습, 엎드린 모습, 앉은 모습, 서 있는 모습까지. 딸아이의 성장을 그대로 담아낸 그림은 하얀 피부와 장밋빛 뺨, 분홍 입술 등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없던 밝고 따뜻한 색조로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그림들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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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해 이제 다 적었는데도 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왜 딸을 애지중지하며 모든 걸 다 바쳐 키웠는지. 정말로 답이 존재하긴 할까요? 답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신부님은 단지 저의 마음에 평안을 되찾아주기 위해 이 노트를 건네주신 게 아닌가요? 아니면 신부님은 여기까지만 읽고도 답을 알아내셨을까요? 아니면 신부님은 처음부터 답을 알고 계시면서 제가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하며 기다려주시는 걸까요? 노트를 돌려드릴 테니 만약 답을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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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제대로 안 챙겨주고 아이한테 빼앗은 돈으로 파친코나 하러 다니는 여자에게도 이런 성질이 있다는 걸까? 일반적으로 여성, 혹은 암컷에게는 모성이 존재한다는 게 당연시되지만, 과연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갖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환경에 따라 진화하거나 퇴화해가는 것일까? 아니면 모성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지만, 여성들을 가정에 속박시키기 위해 남자들이 멋대로 창조하고 신성화시킨 가짜 성질을 나타내는 말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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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과연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 따윈 없다. 그걸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더라? 아니, 상당히 이른 시점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단지 그게 당연한 일이라 믿었기에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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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딸아이가 제 손을 쳐낸 일로 어머니로서의 자신감을 잃어갈 때, 문득 자식이 한 명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한 아이에게 거절당했다고 이 정도로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언덕집에 살던 무렵부터 타도코로는 아이를 한 명 더 갖고 싶어 했습니다. 형제가 없으면 외로울 거라며 딸아이를 위하는 척 말했지만, 타도코로 본인이 아들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건 설득하는 내내 티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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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부님. 저는 절대 딸아이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사쿠라를 잃으면서 저의 자식은 세상에 오직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의 핏줄을 미래로 이어줄 그 아이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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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토오루의 울퉁불퉁한 감촉부터 떠오르지만, 유일하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손도 있었다. 그 손에서는 항상 버터 향이 났고 나에게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꿈같은 집에서 엄마가 구워주던 핫케이크보다도 진하고 달콤한 버터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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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앞에서 ‘신(神)’이라는 글자를 사용한다는 게 조금 조심스럽지만, 저는 세상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너무 신성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은 강한 유대감으로 묶여 있으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건 대체 어느 가정을 예로 들어서 하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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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에서 손에 관한 생각만 하게 되는 건, 온도나 감촉의 기억뿐 아니라 누군가가 손수 만들어준 물건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인 것 같다. 엄마와 맞춰 입었던 옷. 외할머니의 에코백. 아빠가 손수 만든 요리. 토오루의 손거울. 하루나가 손수 구워준 쿠키…. 꿈같은 집에서 타도코로 저택으로 이사한 뒤로 엄마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엄마가 방석 커버나 식탁보를 만드는 걸 보면 안심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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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제가 딸아이를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오해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적었던 대로 딸아이가 저에게서 행복을 계속 앗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역시 자살미수와 동시에 타도코로가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히토미 씨까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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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전하자 “외할머니가 기뻐하시겠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정원의 수양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어떤데?’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일을 해주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내 모든 걸 줄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걸 바쳐서’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아이는 그런 나를 귀찮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 충만한 증거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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