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그렇게 미련을 떨며 얻은 교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책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거다.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이건 특히 쓰는 사람이 명심해야 될 얘기다. 사실 우리네 작가들이란 대개 주제에 걸맞지 않는 역할을 해내느라 쩔쩔매는 인간들 아닌가. 분에 넘치는 대저택을 짓는가 하면 청승맞게 목 놓아 울다 별안간 호탕하게 웃어젖히기도 하고 때론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니까. 그러니 작가라면 밤에 이를 갈 수밖에. 제 꼬락서니가 얼마나 한심한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어찌 분이 치밀어 오르지 않겠는가. 이야기 속 인물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절대로 자기가 이룰 수 없는 것을, 날마다 조금씩 버려야 하는 희망만을 그려야 하니.
--- p.13-14
“죽은 자가 날 가르칠 순 없어.”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 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어디로 떠날지 얼마 동안 떠나 있을지 그런 건 확실하지 않았지만, 피서차 떠나는 여행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난 돈도 없고 꿈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삶의 물결 속에서 헤엄쳐보고 싶었다. 싸우고 싶었다. 지키기 위해서든 물리치기 위해서든. 행복과 두려움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거센 바람과 뜨거운 햇볕과 얼어붙는 추위와 맞서고 싶었다. 돌을 깨고 흙을 파헤치고 싶었다. 깊이 깊이 파헤쳐 그 속에 내 안의 구덩이를 파묻고 싶었다.
--- p.53-54
“신이든 뭐든 뭔가를 믿는다는 건 말이오, 인간이 갈 데까지 갔다는, 비천해질 대로 비천해졌다는 증거라오. 믿음이야말로 굴종과 예속이 어떤 것인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존재를 찬양하고, 그를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단 말이오? 천만다행으로 말이오, 그런 증상에 대해서 약이 하나 존재하오. 불행이라는 약이지. 나도 엄청난 불행을 겪고 나서야 믿음이라는 미혹에서 벗어났으니까. 아직까지 내가 믿는 게 하나 있긴 해요. 그게 뭔지 아시오? 바로 내 발 밑에서 질척거리고 있는 진흙탕이오. 언젠가 때가 되면 나를 빨아들여줄 이 미적지근한 진흙탕.”
--- p.71-72
서쪽 하늘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비행기의 벽면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여놓고 있었다. 둥근 유리창엔 파리가 한 마리 달라붙은 채 꼼짝 않고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파리는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얼마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거기까지 날아들었을까? 도대체 그 무슨 운명의 장난에 말려들어 비행기 여행까지 하게 됐을까? 우주적 차원에서 우린 둘 다 똑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 p.90
새벽이었다. 나는 빗방울이 허술한 지붕을 무너뜨릴 듯 마구잡이로 두드려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에 가려 맞은편 기슭은 보이지도 않았고, 어제만 해도 거울처럼 매끄럽던 수면은 이제 오렌지 껍질처럼 우툴두툴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책을 쓰게 되면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겨보겠노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얼마나 주제 넘는 생각이었는지. 제아무리 공들여 쓴다 해도 거센 비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냄새 흙냄새를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을. 돌풍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나무둥치가 휘어질 때 따뜻한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행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온 숲을, 거기 깃들어 사는 모든 것들을 덮치는 공포를? 책이라는 조그만 거울은 기껏해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비춰줄 수 있을 뿐 울창한 숲과 깊숙한 진창과 끝없는 바다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허먼 멜빌의 『흰 고래 모비딕』의 마지막 장면을 제아무리 주의 깊게 읽는다 한들 그 공포감을 주인공이 느끼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놈이 마침내 ‘나’를 찾아왔다고? 두려움에 대해 묘사해놓은 글을 읽는 것과 그 두려움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인 것이다.
--- p.165-167
내가 오리지널을 활로 쏘아 죽인 것도, 그 시체를 토막 낸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굳윈 내외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할 순 없었다. 죽이는 자와 죽이는 걸 바라만 보고 있는 자, 둘 중에 누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피가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피로 물든 오솔길을 홀로 걸어 절벽 위에 이르렀다. 저만치 굳윈 내외가 고깃덩이를 둘러맨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다시 올라올 그들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이제 난 숲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무섭지 않았다. 곰이 나타난대도 겁날 게 없었다. 와이모어와 아이클에 이어 굳윈 내외를 보고 나서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 p.195
손이 끊어져나갈 것 같을 때, 온몸에 열이 펄펄 끓을 때, 배고프고 목말라 미칠 것 같을 때, 그럴 때 제발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며 기도를 한다손 치더라도, 그럴 때조차도 기도란 걸 하려면 털끝만 할지라도 믿음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굳이 신이라 이름붙일 순 없다 하더라도 뭔가 제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 존재와 자신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그날 아침,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불을 지피고 그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불은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살아서 너울거렸으니까. 내가 믿을 건 불밖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불밖에.
--- p.232
무려 십삼 일 동안 나는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 두 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자작나무가 인간에게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지, 가을밤이 얼마나 추운지, 빗물에선 어떤 맛이 나는지 알게 되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 숲속엔 ‘흰 고래 모비딕’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등에 올라탄 채 그 숨결이 내 몸을 가로지르는 걸 느꼈다. 그 느낌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새겨진 채 지워지지 않으리라. 이제야 난 죽어가는 친구를 지켜보는 느낌이 어떤지를 알 것 같다.
--- 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