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지다. 제주에 살면서 한동안 동네 어른들께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처음엔 어감과 특유의 억양 때문인지 욕인가, 싶었어요. “한결 엄마 요망지네.” 할머니들 대화에 끼어 있을 때 누군가 한 분이 격앙된 목소리로이 한마디를 남기고 후다닥 사라질 때면 솔직히 느낌이 싸-했습니다. ‘요망지다니, 내가 뭐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네를 잘못 선택한 건 아닌지 속이 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면서 보니 동네 젊은 삼촌들도 웃는 얼굴로 같은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욕은 아니구나, 안심했습니다. (…)
요망지다는 자칫 요사스럽다 또는 요란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장로님께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막 웃으며 좋은 뜻이라는 겁니다. 제주 사투리로 ‘똑똑하다, 야무지다’라는 뜻이니, ‘한결 엄마 요망지네’는 동네 할머니가 외지에서 온 한결 엄마에게 건네는 최고의 칭찬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큰 오해를 하고 말았어요.
--- 「한결 엄마, 요망지네」 중에서
가게 이름을 ‘송당나무’라고 지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 가족이 송당리에 안착하기를 바라면서, 큰 도움을 주신 동네 분들의 바람대로 커다란 나무처럼 이곳에 깊게 뿌리 박고 잘 살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지요. 어떤 분은 송당나무란 나무가 따로 있느냐 묻기도 하고 송당리 ‘할머니 모시는 나무’에 기도하러 가려는데 (교회 집사인 제게) 위치 좀 알려달라고 전화하는 무당분도 있습니다만. 송당나무는 ‘송당리의 큰 나무처럼 살겠다’고, 가족이 주문을 외우듯 다짐하는 그런 의미의 공간입니다.
--- 「무작정 귀촌에서 무사 안착까지」 중에서
농사, 특히 꽃을 키우는 건 그저 낭만만이 아닙니다. 예쁘고 아름답게 관리된 식물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 자본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가드닝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귀족들만 누릴 수 있는 고급 취미였던 거죠. 화분 한두 개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희 같이 나름 규모 있는 공간을 식물로 가득 채우고 좋은 상태로 유지시킨다는 것은 몸을 갈아 넣고, 시간을 갈아 넣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시간도 시간, 돈도 돈이지만 특히 내 귀한 꽃들을 돼지처럼 처먹는 새끼손가락 만한 대벌레를 손으로 잡아뜯어 발로 팍 으깨버릴 수 있는 그런 ‘못돼 처먹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해요. 마음이 여리여리한 착한 사람은 할 수 없답니다. (…)
영화의 삶처럼 뽀얗고 아름다운 파스텔 빛이 시골의 삶일까요? 아마도 조금은 더 쨍한 ‘원색의 피곤한 삶’이 더 클 텐데, 파스텔 빛만 생각하고 귀촌한다면 실망만 클 뿐입니다. 본인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은 못 한 채 시골이 변했다, 시골 사람들이 무섭다, 라며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작가분 역시 파스텔 톤으로 가득한 시골의 삶을 화면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앞마당에 키운 고추, 오이, 호박을 따 먹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저도 이것 저것 직접 키워 먹기는 하지만, 역시 그것만이 시골 삶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혹시 저만 고추 따 먹고 사는 삶에 만족 못 하고 라면 끓여 먹으면서 궁상스럽게 사는 걸까요? 저 혼자만 고생하며 쨍한 시골 생활을 하는 걸까요? 정말로 그렇다면 조금은 절망스러운 기분입니다.
--- 「고운 파스텔 톤일까, 쨍한 원색일까」 중에서
저는 진짜 운이 좋아 20대에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확실히 알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30대엔 너무도 많은 경험을 쌓으며 긴 시간 힘들어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40대인 지금은 지난 시간에 비해 일이 수월하게 잘 풀리는 과정인 듯합니다. 물론 인생은 길고 긴 과정이니 ‘결국은 잘 풀렸다’로 끝날지, ‘풀린 줄 알았는데 다시 꼬였다’로 이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풀리건 다시 꼬이건 언젠가는 50대, 60대 그리고 70대가 될 텐데 나이와 상관없이 제 삶의 목표는 ‘앞으로 나아간다’입니다. 그 앞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직업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족 관계와 사람 관계 혹은 경제나 지식에 관한 부분일 수도 있어요. 그게 무엇이든 지금 당장보다는 나아지도록 노력하면서 살자는 거죠. (…)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물론 그 앞에 자질구레한 수식어가 화려하게 붙기는 합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 게…. 그것이 우리 가족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될 수 있도록 하루 하루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롤모델을 위한 것 중 하나가 제가 다시 공부하는 것이고요. 공부하라는 백 마디 말보다 저를 보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 정원, 송당나무도 그렇게 될 겁니다. 여전히 자연환경을 이기지 못해 죽어나가는 식물이 있을 것이고 제 실수로 망쳐버린 공간도 생길 테지만, 이 또한 호미 던지며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을 참아 잘 이겨내고자 합니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아름답기를, 내년에는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하면서 열심히 호미질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매일 정원을 만들어갑니다.
---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위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