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시간에 맞춰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기가 하루 종일 깨어 있는 시간이 많거나 자극적인 일을 많이 경험했을 때는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날이 덥거나 손과 발을 많이 버둥거렸을 때에는 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다. 게다가 발달 과정에서 어느 때는 힘을 더 많이 쓰기도 하고 어느 때는 힘을 덜 쓰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느 때는 자주 엄마 젖을 먹어야 하지만 어느 때는 자주 먹지 않아도 된다. 젖먹이에게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음식을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성인에게 시간에 맞춰서 화장실을 가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다. (…) 우리는 아기가 ‘규칙적인 생활’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다. 시간표에 따라 음식을 먹은 아기들은 시간에 관계없이 음식을 먹은 아기들보다 더 자주 운다. 또한 발육 상태도 더 나쁘다.
--- p.51~52
진화를 통해서 보면 아이들은 보호자, 즉 부모나 부모 이외의 어른들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늘날 우리가 허용하거나 허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효능감을 발휘할 기회, 또 사회적으로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리고 그때는 기회가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머리, 생각, 목표와 요구를 가지고 경쟁할 준비가 된 다른 아이들 ‘곁’에서 지냈다. 거기서 아이는 자기 자리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 속에서 사회적 능력을 키웠다. 아이는 ‘한계’를, 그것도 교육 전문가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닌, 다른 아이들의 삶을 통해 규정되는 한계를 알게 됐다.
어쩌면 우리는 허상에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립이 인간의 발달에 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야생 고양이에게는 독립이 발달의 목표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성패가 집단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지가 않다. 인간에게 독립은 “고속도로에서 멋대로 달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교류하는 능력에 근거를 둔다. 독립의 본질은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 p.60~61
놀이할 때 아이들은 자기 능력의 최고치를 발휘한다. 한 유명한 실험에서 아이들에게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능한 오랜 시간 침묵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평균 2분 정도 침묵했다. 그런 다음 다시 아이들에게 군인이 되어 부동자세로 보초를 서는 놀이를 하게 했더니 무려 7분이나 침묵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장한다.
실제로 오늘날 발달심리학에서는 놀이를 아동 발달의 근원적인 출발점으로 여긴다. 놀이에서 아이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의 놀이를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하면 한 가지 놀이에서도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고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장한다. 동시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적 능력인 창의력의 토대를 만든다. 놀이와 학습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 p.84
소아과와 청소년 담당 의사들의 저널에 따르면 독일 아동의 두 명 중 한 명이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6~18살 사이의 아이들 중 25퍼센트 이상이 언어 치료를 받고, 20퍼센트 정도가 작업 치료를 받으며, 또 그 비슷한 수의 아이들이 치료 체조를 받는다. 그리고 최소 10명 중 한 명은 심리 치료를 받는다.
연구 결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중인 아이의 부모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자녀가 친구들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아이의 37퍼센트 이상이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야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 p.85
아이들이 마주한 세계는 더 이상 부모들이 한때 성공을 거두었던 세계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를 따라 한다고 해서 인생에 필요한 것이 쉽게 아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발달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삶을 이해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모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다른 아이들이 필요하다. (…) 사회적 규칙을 습득할 때에도 다른 아이들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쳐 준 놀이에서 우선 한 가지를 배운다. 그것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놀 때는 더 중요한 것을 배운다.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다른 아이들과 협상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법을 배운다. 그럴 때 보면 아이들이 성인들보다 더 철저하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는 함께 놀지 못해!” 이는 뒤뜰과 어린이 축구장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이다. 놀이에서 제외시키겠다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위협이 있을까?
--- p.86~88
한계를 정하는 것이 일정 기간 동안에는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효과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한계를 정해야 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연습을 통해서 언젠가는 그런 삶에 익숙해질 것이다. 오로지 부모가 정하는 한계만 갖고는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일정 기간 동안에는 부모의 한계 설정이 보호 장치로서 필요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한계를 지키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 사령부의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은 아이들에게 유익하다. 하지만 지휘 본부가 자리를 비우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 p.119
사람들은 아이들이 후원을 통해서 말을 배우거나 자립적이고 영리한 아이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정도는 외부의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자극, 동기가 없어도 아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 이는 발달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 그리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아이들이 ‘후원’을 통해 엄청난 효과를 얻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후원은 원래 저절로 형성되도록 설계된 영역, 즉 말하기나 생각하기와 같은 기본 능력과 관계된 영역에서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아이들을 좋은 유치원에 보내면 언어 능력이 금방 월등하게 향상된다. 또한 학과 공부 성적도 향상된다. 이는 잘 설계된 후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남다른 교육 방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주변 환경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발달 환경 속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29~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