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은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 주변에 울타리나 보호막을 쳐놓고, 담을 넘어오려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내야 한다. 부당하게 날 대하거나, 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날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항의가 필요하다. 화라는 감정은 바로 내 울타리를 누가 넘어오고 있다는 반증이다. 허락도 없이 울타리를 넘어온 그 사람에게 화라는 감정이 생겨야 정당한 내 주장을 할 수 있다.
--- p.52~53, 「반짝이는 나도 초라한 나도 모두 나: 이집트」 중에서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면담 중 의사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주로 초진 때 처음 환자를 만나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정신과 레지던트 면접 자리에서 교수님에게 받은 질문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첫 기억은 그 사람의 정서와 심리적 안정감을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첫 기억이 얼마나 긍정적인가 아님 부정적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서와 감정 상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엄마와 다정히 정원에서 노는 첫 기억을 가진 사람과, 엄마에게 심하게 혼나거나 맞은 후 무서움에 떨고 있는 첫 기억을 가진 사람은 평상시 마음의 안정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 p.81~82, 「중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 스페인」 중에서
내가 과거 배낭여행에서 독일이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던 이유가 이런 소도시들을 안 가봤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풍스러움이 넘친다는 게 이런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까. 애매한 포지션의 국가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나 특출날 것이 없다고 느꼈는데, 다시 보니 압도적이진 않더라도 자연, 문화, 사람 모든 것들이 준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지적이면서도 유머도 있고 배려심도 많은,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사람. 이 독일 바이에른 지방이 그런 사람의 이미지로 다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p.122~123, 「평범함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 중에서
아기는 어릴 때는 부모와 떨어져 있는 상황을 매우 불안하게 받아들이지만, 점점 크면서 ‘내가 떨어져 있어도 어디에서든 부모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안심하게 된다. 믿음과 안심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게 된다. 보호자로부터 떨어져서 더욱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반면 그러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은 항상 내 눈앞에 있는 누군가가 날 지켜주고 돌봐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게 된다.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고 항상 누군가 날 돌봐주길 원한다. 나 홀로 세상을 탐험해 나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홀로 있으면 항상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질 것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 p.159~161, 「너무 고독해서, 함께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곳: 아일랜드」 중에서
시험이 내일모레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조치가 공부하는 것이라면, 막연히 걱정하는 것보다는 공부하는 게 훨씬 낫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는 스스로의 이성적 사고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준비할 수 있는 불안’과 ‘준비가 안 되는 불안’을 구분해야 한다.
--- p.182, 「준비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 것: 하와이」 중에서
우울과 불안 상태가 나아지면, 대체로 ‘까칠해지는’ 경향성이 있다. 예전에는 나를 잘 돌보지 않았던 사람이, 스스로를 더 잘 돌보게 되면서 주변에도 다양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교육이나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나를 더 잘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날 더 뒤흔드는 것들에 항의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요즘은 가끔 화를 내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자기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남들도 사람이 변했다고 하고, 자기 자신도 당혹스러워 한다. 이게 옳은 건가? 이럴 때 나는 그를 격려한다. “잘하고 있습니다. 더 까칠해져도 돼요. 남들에게 너그럽고 스스로에게 까칠해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아요.”라고.
--- p.207, 「영혼이 생기를 찾는 곳: 발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