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특별한 그곳’으로 가는 길을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어디서 버스를 내리고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요.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부탁이에요.”
그곳은 이름이 따로 있지만, 트리샤 앤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곳을 언제나 ‘특별한 그곳’이라고 불렀습니다.
“가게 해주세요, 네? 할머니.”
“정말 괜찮겠니?”
프란시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손녀의 원피스 허리띠를 묶어주었습니다.
“혼자 외출한다는 건 어른이 되기 위해 커다란 발걸음을 떼는 일이긴 하지.”
“전 준비가 되어 있어요. 보세요, 제가 얼마나 크게 걸을 수 있는지.”
트리샤 앤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루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 보였습니다. ---p. 2
처음으로 할머니와 버스를 타던 날, ‘저 표지는 우리에게 어디에 앉으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단다’라고 하셨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난 ‘특별한 그곳’만 생각할 거야.”
트리샤 앤은 스스로 다짐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정거장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버스는 승객으로 가득 찼습니다. 과일과 야채 꾸러미를 잔뜩 든 사람들이 많이 탔습니다. 프란시스 할머니의 바느질 모임 친구인 그란넬 부인도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란넬 부인이 버스 뒤쪽으로 조금씩 다가왔지만 트리샤 앤이 둘러보니 ‘흑인 지정석’ 표지 뒤에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트리샤 앤은 그란넬 부인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p. 8
트리샤 앤은 어깨를 쭉 펴고, 인종차별 표시가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따뜻한 그곳에 앉아있을 생각만 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십번가를 걸어서 두 번째 신호등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궁전같이 화려한 사우스랜드호텔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 호텔 수위로 일하는 쟌 윌리스 아저씨가 트리샤 앤을 보았습니다.
“웬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나 했구나.”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트리샤 앤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쟌 윌리스 아저씨는 언제나 칭찬을 해주시는 분입니다.
“천사가 아니고 저예요, 아저씨.”
“그런데 네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네 눈은 그렇지 않구나. 무슨 일 있니?”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p. 18
트리샤 앤의 귀에 들리는 것은 멀리서 붕붕대는 벌 소리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블루밍 매리 할머니가 한 얘기는 무슨 뜻일까요?
그런데 앤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정말 프란시스 할머니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넌 이 세상 누구보다 잘나거나 못나지 않은 한 사람의 소중한 인간이란다. ‘특별한 그곳’으로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야. 하지만 포기할 생각을 해서는 안 돼. 그곳을 향해 쭉 걸어가야 해. 그러면 꼭 그곳에 다다를 수 있거든.’
앤은 이 조용한 곳에서 할머니와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 말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앤은 더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앤은 눈물을 훔치고 모자를 똑바로 고쳐 썼습니다.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프란시스 할머니는 제 곁에 계세요. 그리고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으세요.”
앤이 블루밍 매리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p. 26
길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트리샤 앤은 여름 햇살 아래 주변의 모든 건물보다 높이 솟아 당당하게 서 있는 건물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건 벽돌과 돌로 만들어진 그저 보통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프란시스 할머니는 그곳을 ‘자유의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 앤은 화난다거나 상처받았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드디어 난 ‘특별한 그곳’에 다다랐어.”
조그만 목소리로 트리샤 앤이 속삭였습니다. ---p. 28
이것은 내 이야기입니다. 비록 이야기의 배경은 허구이지만 이야기 속 사건들은 테네시 주 내쉬빌에서 보낸 내 유년시절에서 온 것입니다.
내쉬빌에는 1950년대 미국 남부 대부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이 있었습니다. 호텔, 식당, 교회와 놀이공원 입구에는 흑인들의 입장을 금지하는 유색인종 분리 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흑인들은 버스 뒤칸에 앉아야만 했고 백인들과 분리된 학교에 다녔으며, 발코니석 가장 뒷줄에 앉아야만 했고 따로 지정된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수모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내쉬빌의 공공도서관 이사회에서는 도서관의 모든 시설에 대해 인종차별을 없애도록 조용히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시내에 있는 도서관 분관은 인종차별 표시가 없고 흑인들에게도 공손하게 대해주는 얼마 되지 않은 장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대부분의 흑인 부모들은 자녀가 인종차별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 전에는 흑인 동네 바깥으로 혼자 외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부모님의 신뢰를 얻어 처음으로 혼자 도서관까지 다녀오게 된 것도 열두 살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리샤 앤처럼 나는 내가 부딪치는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듬뿍 받았고,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나는 온갖 종류의 인종 편견과 차별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가면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더 많은 책을 빌렸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왜 할머니께서 도서관은 호텔이나 극장, 레스토랑 그리고 놀이공원보다 더 신나고 흥미로운 곳이라고 믿고 계셨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대부호인 앤드루 카네기가 도서관을 짓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독서는 자유를 향한 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에서 패트리샤 맥키삭
---「작가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