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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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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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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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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0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8.8만자, 약 6만 단어, A4 약 118쪽?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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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는 대개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일정한 틀을 가지고 묘사하기 때문이지 결코 벌어진 일이 비슷해서는 아니다. 최근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 관련 소식을 한번 살펴보라. 지도자 아무개가 승리를 호언장담했다는 뉴스 뒤에 주재 외교관들이 선언문을 발표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는 뉴스가 따라붙는다. 전투원들이 전리품을 머리 위로 쳐들거나 무기를 손에 든 채 한껏 으스댄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영웅이든 살인광이든 전쟁터에서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
기관총을 든 소년들이 반나체 상태로 거리에서 또는 픽업트럭 위에서 무차별 사격을 해 대고, 쑥대밭이 된 도시 한복판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춤춘다. 시체더미 앞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손으로 치켜든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쓴 붉은 베레모 청년이 서늘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죽여줄까? 뼈도 못 추리게 짓이겨 주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잠깐! 다시 장면을 들여다보라. 이번에는 앞에 두드러져 보이는 피사체가 아닌 그 뒤로 지나가는 배경을 주시해 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장면 속에서 주로 남자들을 봐 왔다면 이번에는 여자들을 찾아보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보일 것이다. 눈물 흘리며 황망히 도망치거나 어린 자식의 주검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우리’ 여자들의 모습이 말이다.
전쟁이야기에서 여자들은 늘 배경에 서 있다. 여성의 고통은 언제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전쟁이야기에서 여자들이 언급될 때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말할 때뿐이다. 즉 연민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을 때나 여자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특히 아프리카 여성의 상처는 그 의미가 과소평가되거나 그저 애처롭게만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찢어진 옷을 입고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 축 늘어진 가슴을 드러낸 전쟁 피해자들, 이것이 바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우리의 이미지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온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도 한결같다.
예컨대 한 외국인 저널리스트가 내게 물었다.
“라이베리아 내전 중에 강간을 당한 적 있으시죠?”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내심 실망한 눈치였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껏 라이베리아 내전 중 여자들이 겪었던 또 다른 현실을 제대로 보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 여자들은 자신들이 숨기 전에 먼저 남자들을 숨겨 줘야 했다. 군부가 남편과 아들을 찾아 죽이거나 전투원으로 끌고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과 먹을 것을 찾아 수 킬로미터를 걸었다. 전쟁이 끝난 후를 대비해 재건의 기반이 남도록 있는 힘껏 버틴 것도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여자들이 힘을 합쳐 라이베리아 국민을 대표해서 평화를 외쳤던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전할 나의 이야기는 기존의 전쟁이야기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나는,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흰옷을 입고 분연히 일어났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우리 여자들은 겁날 것이 없었다. 이미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상황을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 ---「당신이 알지 못했던, 배경 속의 여자들 이야기」 중에서

“살려 주세요! 제발!”
처절한 절규 소리에 이어 ‘탕-탕-탕’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신발을 사러 어머니와 함께 들르곤 했던 워터사이드 마켓 근처 메클린가에 다다라서 보니 길가에 웬 여자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교회에 다녀오던 길이었는지 원피스에 스타킹을 신은 차림이었다. 그런데 개가 그 여자의 한쪽 다리를 물어 당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다리살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라이베리아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완전히 딴 세상이 되었다. 그런 처참한 광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체를 뜯어 먹는 개들은 이후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도심지에서 전투가 자주 벌어지면서 탄피와 시신이 좁은 거리를 메울 때면 특히 많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다.
...
우리 집은 예전의 그 집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없었다. 외국으로 피난 가거나 다른 고장으로 옮겨 가거나 세상을 떠났다. 내 삶은 물거품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꼭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먼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좀 더 현명하게 처신해서 제때 우리를 피신시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무엘 도의 정부군과 반군들에게도 화가 났다. 그들이 앗아간 목숨들을 생각하면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웃 사람들도 밉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남은 물건들까지 다 가져가 버리다니, 정말 너무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화가 났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단 말인가? 졸업 축하 잔치에서 웃고 춤추던 그 소녀는 불과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천진난만한 소녀는 순식간에 공포와 고통과 상실의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마치 햄이 한 조각씩 썰리듯 내 마음과 정신의 살점이 베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는 앙상한 뼈만 남을 것 같았다. ---「1부 절망, 산산조각 나다/ 완전히 다른 세상」 중에서

다니엘과는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한번은 다니엘이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버젓이 관계를 가졌다. 나는 이제 그를 봐도 성욕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이따금 나를 때리고 나선 섹스를 요구했다. 만약에 내가 거부하면 또 손찌검을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잠옷이 갈가리 찢긴 채로 성경책을 집어 들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욕조 안에 웅크리고 앉았다.
“하나님,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세요.”
나는 잡히는 대로 성경책을 펼쳤다. 그러자 이사야 54장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
이사야 54:6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이사야 54:11

그때 갑자기 문이 쾅 열렸다. 다니엘은 내 손에서 성경책을 펼친 채 빼앗아 읽더니 비아냥거렸다.
“이건 애를 못 낳는 여자들한테나 주는 말씀이야! 너한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고, 이 여자야!”
나는 들은 체 않고 그 구절을 마음에 새겼다.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리라.’
그 뒤로 10년 동안 이사야 54장의 구절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1부 절망, 산산조각 나다/ 전쟁터에서 치른 나만의 전쟁」 중에서

나는 오히려 그들이 괴로워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웃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시에라리온으로 돌아가길 꿈꾸었다.
나는 밤이면 혼자 생각에 잠기곤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아직까지도 삶에 대한 열정을 품을 수 있지?’
그중 한 여자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동네 아이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가슴이 한쪽밖에 없었다. 피난길에 반군의 검문소를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어떤 남자가 봤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별안간 그녀를 손짓하며 불렀다고 한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가 아기를 옆으로 밀치더니 그녀의 가슴을 베어 버렸다.
“그런데도 어떻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묻자, 그녀는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안 그러면 어떡하라고요? 그 자들이 승리하게 내버려 둬요?”
순간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못했다. ---「1부 절망, 산산조각 나다/ 전쟁터에서 치른 나만의 전쟁」 중에서

주일 아침 열한 시가 다 되도록 누쿠가 일어나지 않자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가 보셨다. 그런데 누쿠는 침대에서 눈만 뜬 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이불에 오줌까지 싸 놓았다.
“할머니? 할머니 맞으세요? 여기가 어디에요?”
누쿠는 방으로 들어오던 어머니를 보자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긴, 라이베리아지. 그런데 왜?”
어머니가 놀라서 되물으셨다.
누쿠가 침대 위에 쳐진 모기장을 가리켰다. 가나에서 살 때는 늘 모기장을 쳐 놓고 잤지만 라이베리아에 돌아와서는 좀처럼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전날 밤에 모기장을 쳐 놓으셨던 것이다. 살충제를 미리 뿌려 놓지 못해서였다.
누쿠가 아버지가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구두를 가리키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저 신발을 보고 아빠 구두인 줄 알았어요. 거기다가 모기장이 보여서 내가 아직 가나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며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몇 달 동안 공상에 빠져 아무렇게나 살던 내가, 그 순간의 충격으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열일곱 살 어린애가 아니야. 아무것도 안 하고 슬픔에 잠겨 허송세월할 나이가 아니라고. 나는 자식을 둔 스물여섯 살의 엄마야. 그러니 레이마, 넌 뭐든 해야 해. 부모님, 다니엘, 싱글맘의 짐, 전쟁 따위를 원망하며 신세 한탄만 할 때가 아니야. 이제 자기혐오를 그만두고 다시 기운을 차려야 해. 아이들을 그렇게 고생시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는 훨씬 더 행복하게 해 줘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해 줄 수 있겠어.” ---「1부 절망, 산산조각 나다 /다시 찾은 현실」 중에서

나에게 있어서 THRP 자원 신청은 평화 건설자peace-builder의 길로 가는 입문 과정이었다. 사실 평화 건설이란 평화를 위해 협상하고 조정하고 조약을 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다. 내 관점에서 평화 건설이란 두 대립 세력의 중간에 개입하여 싸움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쟁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기운을 되찾아 주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전쟁 피해자들이 인간애를 되찾아 다시금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총을 들지 않고도 갈등의 해소가 가능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평화 건설이다. 요컨대 한때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사회를 치유하여 그들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다.
내가 이런 평화 건설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THRP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들어갔다가 거의 5년을 몸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곳의 일은 힘들고 때로는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일하며 배운 것과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뜨다」 중에서

BB는 내게 본래의 임무에서 더 나아가 활동해야 한다며 힘주어 말하곤 했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예요. 그래서 모두에게 치료가 필요하죠. 레이마, 당신이 나서야 해요. 당신 자신의 얘기를 해 줘요. 당신은 살아남았고 피해 의식을 극복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해요. 단 한 사람만이 아니라 전 사회를 도와야 해요!”
BB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내 열정과 의욕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그 못지않게 얘기하길 좋아했다. 게다가 그는 지극히 보수적인 여성관을 주입받으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방식에 반발하는 사람이었다.
“뭘 하고 싶어 하든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 주는 남자와 일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아프리카 여자들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내게 바로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우선 ‘학문적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한번은 내 논문을 읽은 BB가 나를 찾으러 다녔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는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신문을 던져 주며 말했다.
“읽어 봐요! 읽어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봐요.”
내가 용기 내어 의견을 말하자 그가 비웃었다.
“그건 뭘 모르는 소리예요!”
그러고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요, 전쟁은 나빠요. 하지만 전쟁이 왜 시작된 거죠, 레이마? 라이베리아가 큰 불행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죠? 우리의 역사를 돌아봐요! 수세기에 걸쳐 계속된 엘리트층의 원주민 탄압을 보라고요! 권력을 잡은 이들과 그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말이에요. 레이마, 생각을 해야죠, 생각을!”
나는 BB의 말에 자극받아 사회 개혁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자 그는 더욱더 독려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요. 전장에 나가려면 아이디어로 무장해야 한다고요.”
그러다 나는 예수를 불의와 싸우고 힘없는 약자 편에 선 혁명적인 인물로 그린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의 《예수의 정치학The Politics of Jesus》을 읽게 되었다. 마틴 루터 킹과 간디, 그리고 케냐 출신 작가이자 분쟁과 화해 부문의 전문가인 히즈키아스 아세파Hizkias Assefa의 책들도 읽었다. 히즈키아스 아세파는 현대 사회에서의 분쟁, 특히 내란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뿐이라고 썼다. 그러지 않으면 한쪽은 사과나 복수를 기다리고 다른 쪽은 복수를 두려워하느라,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나에게 그토록 강한 도전의식을 자극해 준 스승은 없었다. 히즈키아스 아세파의 책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번쩍 들어오면서 그제야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당시 스물일곱 살이 다 되어 가던 나는 죽음을 경험한 점에선 나이에 비해 조숙했지만 지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이렇게 내 무지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는 지식 탐구에 더욱 목이 말랐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 중에서

“레이마! 그 애들을 다시 사회로 데리고 나와야 해요. 그래서 라이베리아, 이 나라의 번듯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해야 해요!”
BB는 수많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듯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 뭐야? 여긴 왜 왔어? 당신 첩자 아니야?”
터브먼로 인근에 위치한 국립 재향군인 지원 프로그램의 어두운 사무실에서 나는 여러 명의 적대적인 시선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남자애는 아직 십대로 보였지만 목소리만큼은 위협적일 만큼 걸걸했다. 게다가 방에는 그 애처럼 어린 남자애들이 열 명 가량 더 있었다. 모두 호전적인 인상에 여기저기 흉터가 나 있는 데다 너덜너덜하고 때에 찌든 옷을 입고 있었다. 몇 년간 뭐든 맘대로 약탈하고 다니던 소년병들이다. 그 애들은 위협적인 자세로 거드름을 부렸다. 분별 있는 사람이 길에서 그런 애들을 본다면 얼른 눈치 빠르게 반대편 길로 피할 정도였다.
“어떤 백인 남자가 똘마니를 데려와 우리 얘기를 듣고 가서는 그걸로 떼돈을 벌었어. 그래 놓곤 우리한테는 땡전 한 푼 안 주고 달랑 비디오테이프만 보냈다고. 당신은 어떤 백인 작자가 보내서 온 거야?”
그 십대 남자애가 또 한 번 거칠게 쏘아붙였다.
“우릴 바보로 알아? 우리가 만만해 보여? 엿 먹으라고, 니미럴 다 엿 먹으라고! 눈알을 확 뽑아 버릴까 보다.”
다른 남자애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겁나고 치가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그 애들은 테일러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소년병이라는 이름으로 라이베리아의 내전에 처음 투입시킨 장본인은 ‘아바이’ 테일러였지만 나중에는 모든 반군들이 다 소년병을 이용했다. 그렇게 수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이 전투에 동원되었는데, 그중엔 AK-47을 들기조차 버거울 만큼 어린 여덟 살짜리 아이들도 있었다.
오락거리가 없어 심심했고 자기들이 뭘 하는지 이해하기에도 너무 어렸던 그 소년병들은, 가족들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어 더없이 무자비한 살인마들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악몽에나 나올 법한 유년기를 보낸 셈이다.
나는 시골 지방에서 열렸던 워크숍에서 소년병들에 관한 살벌한 이야기를 낱낱이 들었고, 다니엘과 함께 몬로비아를 떠나던 날 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칼을 씻던 소년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 그들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것은 내 선택이 아니라 흔히 하는 말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했으니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전투원 출신 아이들을 돕는 데 꼬박 2년이 넘는 시간을 바쳤다. 아이들은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테일러는 그 아이들이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쓸모없어지자 곧장 내쫓았다. 그나마 부모를 찾아도 부모가 자식을 다시 받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갈 데 없어진 아이들은 버려진 건물에 살면서 구걸로 목숨을 이어갔다.
...
가끔씩 5일 연속으로 아이들이 잘 따라주면 뭔가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한 번씩 아이들이 경악스러운 말을 내뱉을 때마다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섬뜩했다.
“있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강간했는지 모르죠? 우리 사이에선 그게 가장 신나는 게임이었어요.”
한 아이가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 내 반응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특히 나이 많은 여자들이 최고예요. 하도 오랫동안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처녀랑 하는 것 같거든요.”
어떨 때는 사무실이나 동네로 누군가 찾아오기도 했다. 내 ‘아들들’이 한 정부 관리의 집에 나타나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싸웠으니 이제 보수를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돌을 던졌다고 전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희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나는 너희가 나쁜 애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어. 내가 바라는 건,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 수 있게 너희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나는 절망감에 휩싸여 이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군가 한 아이가 웃으며 뻐기듯 말대꾸했다.
“우리 나쁜 애들 맞아요.”
또 한 번은 테일러의 부하 몇이 우리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보기 싫은 누군가를 손 좀 봐 달라고 청탁한 일이 있었다. 그야말로 일대 소동이 벌어졌고 나는 다시금 불려 갔다. 정말이지 분통이 치밀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너희를 이용했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또 다시 그들을 위해 일할 생각을 하니? 누구 때문에 이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데! 집에 물도 안 나오고 불도 안 들어오잖아. 사람들은 누군가 쌀을 주면 개처럼 달려들어 먼저 먹으려고 서로 으르렁대고 말이야.”
“집어치워요! 뭘 안다고 그래요?”
그때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대들더니 내게 달려들며 때리려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왜 그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움찔거리지도 않고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것도 때릴 테면 때리라는 식으로 차갑게 노려봤다. 그러자 그 아이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거 배짱이 보통이 아니잖아! 떨지도 않아! 총이 있으면 사람도 거뜬히 죽이겠어! 완전히 장군감이야!”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나를 ‘장군님’이라고 불렀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 중에서

히즈키아스 아세파에 의하면,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네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신과의 화해, 자기 자신과의 화해, 자신이 처한 환경과의 화해, 그리고 가해자와의 화해가 그것이다.
나는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을 주관할 때마다 아세파의 개념을 차용해서 그 원칙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여러분은 분노, 절망, 상처로 가득한 불행의 계곡에 빠져 있어요.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 아니면 여러분을 강간하거나 여러분의 가족을 죽인 그 사람도 그 계곡에 함께 있지요. 따라서 그에 대한 분노를 버리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용서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둘러보면 공감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자신에게 못된 짓을 행한 누군가에게 원한을 풀지 못하면, 그를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거나 심장이 멎을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런 트라우마가 정말로 심할 경우엔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평화와 번영의 산이 보여요. 하지만 그 산을 아무리 오르려 해도 용서하지 못하면 그 원한이 무거운 짐처럼 여러분을 짓누르지요. 이제 그 짐을 놓을지 말지는 여러분 개인의 선택에 달렸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죽음을 슬퍼하거나 강간당한 일에 분노할지를 선택해야 해요. 다만 원한의 굴레를 끊지 않고서는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사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내 경우에 발목을 붙잡는 과거는 바로 다니엘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앙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더 공부해서 그 사람이 보란 듯이 크게 성공할 거야. 두고 봐!’
말하자면 아직도 다니엘에게 매인 굴레를 끊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눙구아의 시댁으로 갔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먼지 날리는 길에서 놀던 아이들 몇 명만 나를 알아봤을 뿐 이웃들은 내가 누군지 짐작조차 못했다. 나는 감회에 젖어 허름한 집들을 둘러보았다. 결코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니엘의 매제 한 명이 근처의 교회에서 목사로 일하던 것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이 있었다. 다니엘은 나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얘들은 잘 있어? 동생한테 또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 들었어. 내 아이야?”
“아니에요.”
“동생 말로는 당신이 그 딸애의 사진을 보내 줬는데 우리 가족이랑 아주 많이 닮았다던데.”
“아니에요. 그 애는 조세핀 언니를 닮았어요.”
나는 거듭 다니엘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했고 그 뒤로 별 의미 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길 몇 분 쯤 지나자 이제는 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퍼졌다.
“오늘 내가 왜 왔는지 알아요?”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놓아 주려고요.”
“어, 몇 년 전에 벌써 놓아 준 거 아니었나?”
“마음속에서는 아니었어요. 여전히 많이 원망했으니까요. 그래서 용서해 주려고 왔어요. 당신을 용서할 게요. 그래야 내가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다니엘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
“고마워.”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여자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다」 중에서

LWI의 지도층 인물인 에트웨다 쿠퍼Etweda Cooper 여사의 집에서 개최되었던 모임에서, 델마는 WIPNET의 창설을 공표하며 내가 지역 책임자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뭐라고요? 안 돼요!”
여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반발했다.
“대체 레이마라는 여자가 누군데요?”
그때 나는 방 한구석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여성 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는 여자잖아요! 검증도 안 된 사람이라고요. 그런 대단한 운동이라면 이미 활동 중인 사람이 이끌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요.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결정을 번복할 순 없어요.”
델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여자가 어떤 자격으로 뽑힌 건가요?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던가요?”
나는 벌벌 떨며 옆으로 물러섰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자리에 오르려고 로비를 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을 탈락시키려고 애쓴 적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돌아보니 에트웨다 쿠퍼 여사였다. 쿠퍼 여사는 단순한 LWI의 운동가가 아니라 여성 운동의 대모?씟?다름없는 인물이었다. 나와 만났을 당시 이미 50대의 나이에 두 아들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공부했지만, 보장된 장밋빛 미래를 내던지고 평화와 여성의 인권을 위한 싸움에 뛰어든 사람이다. 저항 활동을 벌이다 여러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열렬한 페미니스트이자 LWI 내에서 가장 급진적인 여성이었으며, 모든 종류의 학대에 반대하고 약자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든 혐오했다.
“눈물을 닦고 저 허튼소리들을 잠재워요!”
에트웨다 쿠퍼 여사가 마치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조금은 얼떨떨한 채로 눈물을 닦았다.
“저 여자들에게 당신의 두려움을 들키면 앞으로 평생 약점 잡혀 끌려다녀야 할 거예요.”
“하지만 저도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자리를 맡아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런 말 말아요. 당신이 상대했던 남자들을 내가 알아서 하는 말인데, 당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남자들을 감당하지 못했겠죠.”
....
“내가 도와줄 게요. 조언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와요.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요.”
에트웨다 쿠퍼 여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내 팔을 흔들었다.
“자, 그러니 이젠 자리로 돌아가서 대담하게 맞서요. 그럴 시간이에요.”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평화 건설 여성네트워크, WIPNET가 탄생하다」 중에서

여자들이 고통의 짐을 더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그때는 유독 더 힘들었다. 폭력과 치욕, 비탄의 사연들이 한없이 쏟아졌고, 흐느낌과 통곡이 격해져서 그 자리의 누구도 더 이상은 못 듣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이제 됐어요.”
나는 아무래도 멈추는 게 나을 듯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 한 노부인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말했다.
“안 돼요! UN에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잘 곳과 옷을 주지만, 당신은 그보다 훨씬 값진 것을 줬어요. 속에 담아 놓았던 우리 얘기를 들어주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묻지 않은 얘기인데 말이에요. 여기서 멈추면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
그해 봄에 사무실에 자다가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사방이 어두웠다. 그때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말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할 여자들을 모으라!”
잠에서 깬 후에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평화를 위해 기도할 여자들을 모으라!”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대체 뭐지? 무슨 꿈이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말도 안 돼. 나는 요즘 술독에 빠져 살고 있어. 게다가 간통도 했어! 아내가 있는 남자랑 잠자리를 갖고 있잖아. 하나님이 라이베리아에서 계시를 내릴 사람을 찾는다면, 그게 나 같은 여자일 리가 없잖아!’
그날 아침, THRP 사무실로 출근한 나는 바이바를 한쪽으로 끌고 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BB를 찾아서 말씀드려야 해요.”
우리 세 사람은 사무실 건물의 작은 문간방에 선 채로 꿈 이야기를 나누었다. BB는 가만히 들었다. 에스더 무샤가 우연히 그 우리 얘기를 듣더니 끼어들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어찌 보면 그 순간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낡은 갈색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서 눈을 감았다. 에스더가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이런 계시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저희를 축복하시고 보호하고 인도하셔서 그 의미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이 꿈을 모태로, 기독여성 평화기원 모임이 탄생했다. 2002년 4월에는 근방의 루터교 교회들에서 여성도 20여 명이 이 꿈의 계시를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이제 우리는 매주 화요일 정오에 성 베드로 교회의 작은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레이마, 멈추지 말아요」 중에서

“글쎄요, 여자들이 뭘 어떻게 하죠? 왜 그런 일에 나서야 해요?”
“왜 나서느냐고요? 전투원들에게 강간당한 피해자들이니까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고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에요.”
얘기를 듣던 여자들이 차츰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맞아요. 그동안 우리가 손놓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끌려가고 있는 거라고요! 저도 당신들과 함께 하겠어요!”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 나는 생애의 첫 순간부터 내내 고통 속에 살아온 여자들이다. 여자들은 눈을 내리깔고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얘기하자 눈을 들고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단지를 만들어서 나눠 주기도 했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더 이상 내 아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더 이상 강간당하고 살 수는 없다!
여자들이여, 이제 눈을 떠라.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만큼은 우리 여자들에게도 발언권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찾아다니는 여자들 대다수가 문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그려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질문하면 몇 시간이 걸려도 끈기 있게 답해 주었다. 덕분에 매주 현실을 자각하는 여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변화를 몸소 느끼며 뿌듯해 했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레이마, 멈추지 말아요」 중에서

“어쩌면 우리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섹스를 거부하는 단계까지 가게 될지도 몰라요.”
모두가 웃고 넘어갔지만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었다. 정말로 여자에게는, 남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출 때까지 남자가 원하는 뭔가를 거부할 능력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우리는 라디오에서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남자들은 전쟁에 몰두하고 있지만, 전쟁은 여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때문에 세상의 반쪽이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설득할 방법 중이 하나로 성관계를 거부하도록 여자들에게 권할 생각이라고 말이다.
이 발언에는 전쟁이 계속되는 한 무죄인 자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을 멈추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유죄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섹스 파업이 진행되었다. 특히 시골 지역에서 시위를 벌인 여자들이 몬로비아의 시위대보다 잠자리 거부에서 있어서는 더 조직적이었다. 남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을 마련해 둘 뿐 아니라, 잠자리 거부를 종교적인 의미로 승화시켜 평화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까지 잠자리를 갖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함으로써 남자들이 대항하기 두렵게 만든 셈이었다.
그러나 몬로비아에서는 남자의 요구에 굴복하고 마는 경우들이 더러 생겼다. 싫다고 했다가 남편에게 맞아 멍이 든 채로 시위장에 나오는 여자들도 종종 있었다. 몇 달 동안 이어졌던 섹스 파업은 사실 별 효과도 없었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을 끄는 데는 상당히 유익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평화를 위한 집단행동’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얘기가 바로 ‘섹스 파업’이니 말이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맞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다」 중에서

14년간 이어진 전쟁의 상흔은 처참했다. 주변을 둘러볼 만큼 불안이 가라앉을 무렵, 이제 우리는 라이베리아가 입은 어마어마한 피해와 대면해야 했다. 전쟁으로 25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4분의 1이 어린이들이었다. 세 명 중 한 명이 집을 잃었으며, 35만 명이 실향민 수용소에서 살았고 나머지는 어디든 되는 대로 거처를 잡고 살고 있었다. 더욱이 100만 명의 국민이 우물물의 오염으로 인해 영양실조, 설사, 홍역, 콜레라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중 대다수는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도로, 병원과 학교 등 나라의 기반 시설 75퍼센트 이상이 파괴되었다.
정신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청년 세대는 손에서 총을 내려놓자 정체성을 잃었다.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여자들이 과부가 되었거나 성폭행 피해를 입었으며 딸이나 어머니가 성폭행당하는 모습, 자식들이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당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던 여자들도 있었다. 이웃 사이의 정은 한층 각박해졌다. 젊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고, 나이 든 사람들은 고생고생해서 일군 것들을 모조리 잃었다. 또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전쟁에선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앞으로 살아갈 길을 걱정할 때였다. 평화는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길고 긴 여정이었다.
....
오늘날, UN 같은 큰 기관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전쟁은, 심지어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전쟁들조차 내실을 들여다보면 각기 다 다르다. 나라별로 싸움의 이유와 방식이 저마다의 역사, 또 사회구성 방식과 얽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분쟁의 성격이 동일하지 않으니 만능의 해결책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 UN 같은 기관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진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외지인이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들에게 이리하면 치유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모욕하는 일인 것이다.
내 생각에, 외지인이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외지인은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가서 그곳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곳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가 지배하는 지역이라도 말이다. 참혹한 분쟁을 이겨 낸 사람들은 굶주리고 필사적일는지 몰라도 최소한 ‘멍청하지는 않다’. 그들 중에도 평화의 촉진 방법에 대해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므로 현지인의 의견을 두루두루 물어야 한다.
물론 그 대상에는 여자들도 포함된다. 아니, 특히 여자들에게 많이 물어야 한다. 분쟁 방지나 평화 건설에 관한 한, 여자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기 집을 훤히 꿰고 있어서 불이 나가도 어디에 부딪히는 일 없이 이 방 저 방 잘 돌아다닌다. 주변에 낯선 사람이 어슬렁거리면 금방 알아챈다. 우리 여자들은 자기 고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훤하다. 고장 사람과 위험할 만한 낯선 사람을 분간할 줄 안다. 우리는 고장의 역사를 알고 고장 사람들을 잘 안다. 우리가 전투원 출신자들에게 말을 걸어 협력을 얻어 낼 방법을 찾게 된 것도, 어디 출신인지 알기 때문이다.
UN 평화감시단 같은 외지인들에게는 이런 병사들이 단속해야 할 골칫거리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들은 자식 같은 아이들이다. ---「3부 평화, 그 이상을 원한다 /총성이 멈춘 뒤」 중에서

2004년 5월에 동부메노나이트 대학이 있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해리슨버그로 떠났다. 그곳에서 보낸 한 달이 내게는 또 한 번의 전환기가 되었다. 다니엘에 대한 분노를 떨칠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뜨게 한 히즈키아스 아세파 교수가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도를 받았고, 하워드 제어Howard Zehr에게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개념을 배웠다. 회복적 정의란 범죄 행위에 대해 처벌과 징벌을 내리는 대신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동 노력을 통해 상처를 회복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즉 가해자가 자신이 입힌 상처를 치료하는 단계를 밟는 동안, 피해자는 치료를 통해 그를 용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양쪽 모두가 유익한 사회 일원으로서 거듭나도록 하는 식이다.
나는 이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라이베리아 전통사상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락 전통에서는,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하면 죽은 사람의 빈자리를 메워 주는 보상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농부라면 죽은 사람의 몫까지 더해 두 번 수확을 해서 갚아야 한다.
회복적 정의란 그런 전통이 더 확장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방 사람들로부터 인위적으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전통을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 전역에 비`처벌적 문화가 팽배해 있었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결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이 저지른 피해를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도록 해야 했다.
회복적 정의의 개념은 내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며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히 풀어 주었다. 조셉 콜리나 샘 브라운 같은 소년병들에 대해 가졌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들을 사회에서 내쫓기보다는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고 싶어 했던 내 생각이 망상이 아니었다! 트라우마 치유에 대해 가졌던 답답함도 씻기는 느낌이었다.
트라우마 치유는 좋은 시도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고통을 씻어 내는 것은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전쟁 후에, 특히 내전 후에 지역사회가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3부 평화, 그 이상을 원한다 /총성이 멈춘 뒤」 중에서

그때 나이 지긋한 여자들 여럿이 내 곁으로 다가와 서더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희는 우리 집에 와서 문을 부수고
모든 것을 가져가지, 모든 것을 초클라하지
아아흐-오흐, 아아흐-오흐, 아아흐-오흐
저기에 누가 도망치네. 아흐-오흐 도망치네
저기에 누가 도망치네. 아흐-오흐 도망치지”

그들은 춤추고 박수 치며 깔깔 웃었고 나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노래는 ‘평화를 위한 집단행동’ 이전의 오래 전, 그러니까 내전 초반에 LWI 회원들이 종종 반군이 모여 있는 다리 같은 곳에 가서 서서 시위를 할 때 불렀던 노래이다. 여기서 ‘너희는 모든 것을 초클라(chokla)하네’라는 가사는 라이베리아 말로 ‘너희는 모든 것을 어질러 놓았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반군들이 마을에 들어와 저질러 놓은 짓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괜한 화를 자초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은 말을 조심해야 했고, 그래서 대놓고 ‘개자식’이란 말을 못하고 ‘아아흐-오흐’로 에둘러 욕했다.
따라서 이 노래의 가사를 풀면 이런 의미였다. ‘너 이 개자식, 개자식, 개자식들아. 누가 도망칠지 두고 볼까? 너희 개자식들이 도망치지.’ 그리고 그 가사대로 된 것이 기뻐서 여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그렇게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이제 그 개자식들은 도망쳤지만, 우리 모든 여자들은 여기에 남아 아직도 투쟁하고 있었으니까.
---「3부 평화, 그 이상을 원한다 /평화를 위한 노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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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목격한 레이마 그보위는 역사의 뒤안길에 선 여성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고, 라이베리아의 위대한 정신을 일깨웠다. 그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
엘렌 존슨 설리프 Ellen Johnson Sirleaf (라이베리아 대통령, 2011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
지금껏 내가 읽어 본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맞서 싸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일깨워 준다.
셰릴 샌버그 Sheryl Sandberg (페이스북facebook 최고운영책임자COO)
역사가 짙은 어둠 속에 묻히는 것처럼 보일 때 인류애가 밝은 빛을 비춰 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Desmond Tutu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슨 말을 더할까? 더없이 훌륭한 이야기다.
미첼 바첼레트 MIchelle Bachelet (전 칠레 대통령, 유엔 여성기구 사무차장 겸 총재)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필독서다.
캘빈 O. 버츠 3세Calvin O. Butts Ⅲ (뉴욕 애비시니언 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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