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신적 이미지, 영웅적 이미지, 인간적 이미지는 각자의 ‘향기로운’ 물줄기 를 유지하면서 현실이라는 넓은 바다로 유입된다. 비학과 자연과학과 인문학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느 하나만이 일방적으로 존재하였던 시대는 없으며, 그 어느 하나가 개인의 정신을 온통 사로잡은 적도 없었다. 신을 잃어버린 시대도, 자연을 잃어 버린 시대도, 인간 자신을 잃어버린 시대도 없었다.”
--- p.5
“어떤 이론의 함축이 뒤 시대에 실현되는 진보의 역사를 기술하려면 이론적 ‘선구자’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 는 역사가에 의해 미리 결정된 틀에 선구자를 끼워 맞춘다는 데 있다. (중략) 관한 길고도 뜨거운 논쟁의 와중에서 희생당한 장본인은 바로 베이컨과 비코였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그들이 선구적인 천재로 칭송 되었느냐 지적 낙오자로 취급 되었느 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론의 진보과정을 재구성하겠다는 연구자의 결정이 그 이론을 만 든 과거의 인물들에게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 pp.15~16
“복선적? 이중적 접근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중적’이라고 해서, 16-17세기에 비학과 과학이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었다던 가, 당시의 지식인들이 과학자와 비학자로 철저하게 나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처럼 철저한 구분은, 또 다시 뉴턴을 정 신분열자로 만드느냐, 아니면 두 개의 ‘모순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느냐는 양자택 일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8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의 연원을 아랍 및 비잔틴 전통으로 추정하거나, 중세 스콜라주의로 추적하거나, 라틴 변경 지역으 로 추적해도,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가 ‘태고 신학’의 계보에 편승하여 운반 되고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 느님의 계시는 특별히 선택된 인간이나 초인간적 존재의 입을 빌어,태곳적의 모든,즉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이교 민족에게 도 주어졌다는 것, 따라서 모든 민족의 태곳적 문헌은 ‘경이로운 지식의 보고’라는 것. 바로 이것이 ‘태고 신학’의 참뜻이다. ‘어 느 지역이든 그곳에 어울리는 신학의 원형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 p.50
“‘태고 신학’이 아주 먼 옛날에 이교민족과 유대민족의 선지자들이 ‘신에 관한 일’에 대해 가지고 있었으리라고 믿어진 ‘심오 한 지혜’ 를 뜻한다면, ‘태고 신학’의 르네상스는 그 지혜 안에서 ‘신사’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그것 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것을 발견하였다는 확신 등을 수반하였을 것이다. 베일에 싸인 창조주의 의지며 권능의 비밀을 훔쳐 보려는 호기심은 중세 내내 죄악시되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호기심의 해방’과 함께 뚜렷한 지적조류를 형성할 수 있었 다.”
--- p.58
“비학의 상징적 표현은 이러한 ‘자폐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감각에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자 ‘언어의 부족’을 메우는 대안으로 정당화 되기 보다는, 일종의 ‘시험’으로 정당화된다. 상징적 표현이 독자들에게 일으키는 혼란과 혼동은, 비 전의 입문자를 가리기 위한 ‘시험’으로 당연시된다.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지식은 마술사 자신에게만 명료할 뿐 공표될 수 없 는 지식으로 남는다. 진리의 공표는 계속 유예된다. 한마디로, 비학적 유비에 서 ‘감춤과 드러냄’의 수사적 전략은, 지식의 축 적보다는 반복을, 지식의 개선과 진보보다는 손상되지 않은 계승을 의도한다.”
--- pp.143~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