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한 사람이 수동적으로 굴었다고 질타할 일은 아니다. 자연사를 감히 누가 거스를 수 있을까. 나도 우물쭈물하고 있고, 하루하루 버텨내며 세상에 오래 머물려는 필부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사─사고사가 아닌 재난사─사건사 앞에 한 사회가 수동적으로 구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된다. (…) 내가 뭐라도 되는 양 시답잖은 훈계를 하려는 게 아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식으로 사건을 사고로 위장하는 목소리가 반복되는 기이한 현상,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이상한 보도에 ‘가만히 앉아’ 침묵할 수 없었을 뿐이다.
--- p.20, 허희 「타이밍이 (안) 중요한 건 가봐」 중에서
마음도 몸인데, 마음에 남은 감각은 어떻게 지워야 하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지울 수 있나. 지워지지 않고 그 위로 켜켜이 쌓일 뿐인가. 흐르는 시간만큼 감각은 두껍게 쌓여만 갈 텐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감각이 가장 깊은 곳으로 꺼져가고 있을 것이 애가 탔다. 애타는 감각 역시 언젠가 가장 밑바닥에 내려앉아 보이지 않게 되겠지. 그럼에도 남아 끊임없이 그것을 그리워하게 만들겠지.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은 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끝이 날 것만 같다.
--- p.27, 김선오 「죽음에도 타이밍이 있다면」 중에서
나는 용기를 내서 떠나온 이 여행이 그에 대한 추억으로만 점철될까 봐, 추억을 떠올릴 때 그가 내 곁에 없을까 봐, 그래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여행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런 견딜 수 없는 조급증 역시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을 알기에는 나는 좀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 p.43, 정지향 「소설로는 쓰지 못한」 중에서
결론은 초록불도 빨간불도 아니다. 내가 빨라도 빨간불에 멈추게 되고, 내가 느려도 충분히 초록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삶이자 시간이기도 하다. 떡을 살까 고민한 시간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널 타이밍을 놓쳤다고 단언할 수 없고, 임신과 출산, 구직과 이직 등 일련의 상황들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혹은 내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예단할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길이 순탄해지는 것도, 기대를 하지 않았을 때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단편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다. 타이밍이라는 것은 내가 잘 찾아야 하는 것일 수도, 나를 찾아와주는 것일 수도, 혹은 이미 나와 함께하는 것일 수도 있다.
--- p.77, 김아주 「시간의 안, 시각의 밖」 중에서
좋은 타이밍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내 선택에 뒤따를 후회를 위한 보험인지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가운데 난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세상엔 느린 음악도 존재하기에 나는 스스로 느린 음악이기를, 그리고 그런 나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 p.87, 박성운 「아직은, 괜찮다」 중에서
우물쭈물해도 좋고, 덜 좋은 선택을 해도 괜찮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순간들이 살아 있다는 거니까.
--- p.99, 박은정 「나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전」 중에서
같은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별것도 아닌 것에 멋져 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실망하게 되는 이상한 감각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일상을 뒤흔드는 그 순간 작은 균열에서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곳에서 자꾸 멈추고 고장 나는 일이다. 그 고장 때문에 적절한 순간을 알지 못하는 일이다.
--- p.131, 김건영 「연애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