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은 편지를 쓴다. 편지가 잊혀진 시대에 편지를 쓰는 것이다. 왜 편지인가? 그의 편지라는 형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편지는 결국 인연 맺기, 즉 관계 맺기-짝짓기다. 모든 관계항이 잘려져 버린 세상에 그는 관계망의 복원에 나선 것이다, 음악 배송과 함께.
그의 ‘관계론’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부드러우나 질기고, 속삭이듯 감미로우나 때론 맵고 짜고 시다. 쫄깃쫄깃한 육질, 마르지 않는 샘. 그의 편지는 음악 없이도 이미 음악이다.
임옥상 (화가)
음악편지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음악의 고전성과 편지의 낭만성을 결합한 합성어인데, 이 신종 울림통이 내는 소리를 전해 듣다가 보면 우리는 이종민 교수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깐깐한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이가 얼마나 따뜻한 현실주의자인지도 짐작하게 된다. 정치나 문화현상에 대해 매서운 질책을 가하다가도 종종 위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일을 잊지 않는 것 좀 보라.
고백하자면 나는 음악편지가 도착하면 음악이라는 건더기는 빼고, 편지라는 국물만 들이마시는 편이다. 음악에 대한 무식의 소치이겠으나, 이종민 선생의 다양한 관심을 도대체 따라잡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관심의 영역에 얼씬거릴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만 해도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나는 벅차기만 하다. 역사ㆍ문학ㆍ전통문화ㆍ 환경운동ㆍ영화ㆍ창극ㆍ철학ㆍ농사ㆍ축제ㆍ등산ㆍ음주가무ㆍ가족ㆍ우정…. 손으로 다 꼽을 수조차 없다. 가히 사통팔달, 분류불가의 경지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 중 어느 하나를 꼭 집어 아는 체하다가는 도리어 내 마음의 빈 곳간만 들키고 마는 꼴이 되니 이쯤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빼는 게 상책일 듯하다.
안도현 (시인)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함을 열어본다. 밤새 온 영양가 없는 메일들이 편지함에 그득하다. 대충 쭉 훑어본 후 습관적으로 삭제를 하려는 순간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화양모재.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입 안에 향기가 그윽하게 고이는 느낌을 주는 이름. 이곳에 들어오면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햇살 같은 음악과 시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목은 ‘이종민의 음악편지’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단순한 음악편지가 아니다. 실용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물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오늘날, 그의 음악편지는 이런 참을 수 없는 천박함에 대한 한 지식인의 고뇌이자 인간다운 삶에 대한 정신적 지향(志向)이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주제를 풀어나가는 그의 접근법은 지극히 감성적이다. 클래식에서부터 국악, 퓨전음악, 뉴에이지에 이르기까지 그는 듣는 이의 마음을‘짠’하게 만드는 음악을 참으로 잘도 골라낸다. 여기에 음악에 맞는 시 한 수 곁들이니 듣고 읽는 사람의 마음이 한 줄기 강물처럼 넉넉해진다.
도처에서‘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는 요즘 ‘이종민의 음악편지’는 우리에게 진정한‘문화적 웰빙’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나는 몇 년 전에 신년화두로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라는 글을 써서 친지들과 나눈 적이 있다. 이 교수는 후배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과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참 좋은 사람’이다. 나 역시 그의 세상 살아가기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 그가 두 번째로 펴내는 음악편지 모음의 곁글을 선뜻 물리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내 책상머리에는 친근한 마음으로 열어보게 될 새롭고 값진 한권의 책이 놓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즐겁다.
한승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