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삶이 힘들어 더 버틸 수 없었을 때, 난 ‘글쓰기’라는 또 다른 생명줄을 찾았다. 희미해져가는 나를 찾을 수 있었고, 직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되찾았으며, 내 글이 책과 강연 콘텐츠가 돼 돈도 벌어다 주고 있다. 커피가 직장인의 생명수라면, 글쓰기는 직장인의 생명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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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 글을 쓰며 확신을 갖게 된 말이다. 쓰다 보니 정말 작가가 됐다. 작가는 꼭 책을 출간한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책을 출간한 사람은 ‘저자’라고 하는 게 맞다. 글쓰기라는 본질을 잊고 자꾸 책부터 떠올렸던 마음이, 나를 작가로 규정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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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자기 계발의 방법이 있겠지만, 글쓰기는 나에게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글쓰기만큼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크게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당장 시작하기 어렵지도 않고 사전에 많은 걸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저 스스로를 내어놓을 다짐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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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할까 말까 잴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 이제는 왜 글을 쓰고 싶은지 고민하고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꾸준하게 이어갈지에 몰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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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줄여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거나, 하루 30분은 글쓰기 시간으로 정해놓자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간이 확보됐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글쓰기는 이어지지 않고 자책만 늘어났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한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게 아니라면, 과연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 p.60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빈도가 아니다. 매일 쓰고 자주 쓰는 것보다 어찌 됐든 계속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주일에 글 하나, 심지어는 한 달에 글 하나를 쓰더라도 자신을 칭찬하고 응원해야 한다. 나는 이를 ‘글쓰기 점·선·면 전략’이라고 부른다.
--- p.80
‘내가 쓸 수 있을까?’, ‘쓸 이야기가 있을까?’, ‘내가 글을 쓰면 누가 봐주기라도 할까?’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나는 내 지난날을 돌아보기로 했다. 영혼을 갈아 넣은 직장 생활에서 나에게 남는 것이 없다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을 하나하나 헤집어보면 그래도 무언가 의미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글을 써나갔다.
--- p.93
내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만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분열시킬 수 있다. 분열된 자아를 힘껏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 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다. 모든 삶 속엔 내가 있고, 삶을 살아내고 글을 써내는 것은 나이므로. 그래서 글쓰기는 곧, 삶 쓰기다.
--- p.95
글쓰기를 결심했다면 어떤 장르의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건 나에게도 정말 큰 고민이었다. 그러다 나는 또 하나의 장르를 알게 됐다. 바로 ‘업세이’다. 업세이는 ‘업(嶪)’과 ‘에세이’를 합친 말로 이미 서점에서도 대세가 된 장르다. 나는 업세이라는 장르가 참 반갑다. 보통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쓰고 담아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업세이는 나의 업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 p.117
글쓰기에 가장 찰떡같이 달라붙는 연관어는 바로 ‘꾸준함’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분 중에 “나는 꾸준하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꾸준해야만 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나 꾸준하지 못한 내가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니, 글쓰기의 전제 조건이 꾸준함이 전부가 아니란 걸 내가 증명해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꾸준하지 못한 자의 글쓰기. 어떻게 가능했을까?
--- p.127
나는 그래서 ‘문어발식 글쓰기’를 추천한다. 시작부터 여러 가지 소재와 주제를 함께 시작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1가지 주제라도 제대로 쓰며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에 집중해 쓰려고 할 때 글쓰기는 멈춘다.
--- p.135
모든 글엔 첫 문장이 있다. 물론 단어로 시작할 수도 있고 길고 긴 두세 줄의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들이 글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지,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지, 내 생각의 기승전결을 잘 담아낼 수 있는지의 여부다. 첫 문장이 그리 특출나진 않더라도 그다음 문장이나 본문 어느 중간에 소중한 가치를 녹여낼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첫 문장을 자연스럽게 써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p.140
내 생각보다 그 깊이가 얕고, 내 삶에 통찰이나 자극을 주지 못하는 글을 읽을 사람이 있을까? 에세이는 필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필력보다 더 중요한 건 ‘진솔함’과 ‘통찰’이다. 다시, 통찰은 메시지를 포함한 삶의 깨달음이다.
--- p.149
글쓰기가 잘 안 될 땐 ‘제목 짓기’가 답이다. 사람들은 보통, 서론-본론-결론을 완벽히 구성하고 글을 써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글쓰기는 ‘생각해놓고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완벽하지 못할 거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은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다. 글쓰기의 시작과 과정에서 좌절을 맛볼 때면, 어설픈 완벽주의나 서론-본론-결론을 완벽히 세워놓고 글을 쓰려는 마음이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 p.156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쓸 때 항상 컴퓨터를 통해 웹으로 글을 작성하고 모바일로 퇴고한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내 글을 읽으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소리 내어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모바일로 퇴고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내 글의 독자 대부분은 모바일로 글을 읽을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모바일로 글을 다시 읽으며 문장 구조나 단락의 구분 등을 그에 맞게 재조정한다. 일종의 배려다. 독자들이 최대한 깔끔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 p.204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감정’이 아닌 ‘감성’이다. 감정이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기분이라면, 감성은 그 기분을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즉, ‘감성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승화해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 p.210
플랫폼은 수단이다. 본질은 글쓰기다.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간과한다. 마치 생산성 도구가 내 생산성과 의지를 책임져줄 거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내 글쓰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하고, 여러 글쓰기 플랫폼을 좋은 수단으로서 활용해야 한다. 단기간 사용해보고 당장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이리저리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 p.221
중요한 건, 나와 내 글을 알려야 하는 대상을 넓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책이 나왔다고 자랑하고 주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별 소득 없이 실망감만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무당도 먼 데 무당이 용하다”란 말처럼 내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에게 자랑해봤자 소용이 없다. 내 영역 안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소득 없는 사투다. 내 대상은 우물 밖이 돼야 한다. 그게 진정한 실력이다.
--- p.225
나에게 돈이 되는 글쓰기는 ‘선택’이지만, 나를 위한 글쓰기는 ‘필수’다. 글로 숨을 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바라는 건 ‘중심 잡기’다. 그래서 나는 돈이라는 말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돈이란 단어를 가치로 치환한다. ‘돈을 벌어야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지’라는 생각. 자본주의 사회는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두 단어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 p.230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쓰는 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나의 글이 부끄러워서 또는 잘 못 쓴 것 같아서 글을 쓰고 내팽개치듯 발행(혹은 완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다시 보지 않는다. 대단히 위험한 습관이다. 누군가는 글을 산통 이후에 얻은 자식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 비유에 동의한다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혹은 발행 버튼을 눌렀다고 해도) 곧바로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자. 그러면 독자의 입장이 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고, 글 속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오류나 비문들을 맞이하게 된다.
---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