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일단 달리기를 해 봐야 한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실제로 달리기가 재미있다는, 짧지만 뚜렷한 감정을 느낄 때까지 해 보라는 뜻이다. 달릴 때마다 단 몇 초, 몇 분이라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 경쾌하고 우아하게 달리다 보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 그 움직임에 활력과 자신감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달리기를 하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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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깨달은 사실이 또 있다. 마라톤이나 10킬로미터, 5킬로미터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 대부분은 (나처럼)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경주에서든 선두 그룹에 속하는 수십, 수백 명의 특출나게 빠른 선수들은 있다. 하지만 그 나머지는 직장을 다니고 가정이 있으며 대출금을 짊어진 평범한 사람으로, ‘최대한 멀리 달리기’라는 기이한 취미를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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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달리기는 개떡 같다. 시작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연습을 충분히 하면 이력이 나서 고통스럽다기보다 불편한 수준이 된다. 그러면 고통이 나타나기까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좀 더 길어지고 통증의 강도도 준다. 결국에는 달리기가 조금은 재미있거나 유익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고 고통을 견디며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체력이 쌓일수록 힘이 덜 들기 때문에 마침내 달리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날이 온다.
노력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 견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불편함은 감수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면 달리기는 빗자루로 자리 다리를 때리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필요 없는 일을 굳이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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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에 걸쳐 한 번에 몇 분에서 몇 시간, 한 주에 몇 차례씩 상당한 불편을 견디고 나면 다른 현상도 발생한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 찾아오는 고통과 역경을 거뜬히 이겨 낼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그 현상을 “X킬로미터를 달린 마당에 Y인들 두려우랴.” 효과로 본다. 이 효과는 거슬리는 자극의 크기를 줄인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에스컬레이터 고장으로 계단을 오를 때도 죽도록 힘들지 않다. 종종 찾아오는 통증과 고통도 대수롭지 않거나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고, 긴 회의 시간도 부담스럽지 않다. 한마디로 강한 사람이 된다.
‘고통의 동굴(운동이나 경지 중에 신체나 정신이 극도로 힘들어지는 상태)’에서 살다시피 하면 일상생활 속 거북함은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불편함에 대한 내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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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절대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아이일 수도, 직장 상사나 배우자일 수도, 혹은 그 모두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이 누구든 우리는 까먹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달리기 계획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 한 주에 몇 차례, 몇 시간쯤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떤 일보다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자신을 위해 달리러 나가야 한다.
아이들에게 데리러 가겠다고 해 놓고 목 빠지게 기다리게 만들어서는 안 되듯, 달리기도 절대 건너 뛰면 안 된다. ‘의무감’은 ‘영감’만큼 매력은 없지만 훨씬 중요한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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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계속하면 관절과 근육이 결리고, 굳은살이 생기고, 훈련 시간이라며 잠을 깨우는 알람 시계를 미워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많고, 그 대부분은 훈련을 시작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일단 밤에 잠이 잘 오고, 스트레스가 줄고, 인내심이 생긴다. 밥맛도 더 좋아지고, 오래 달린 다음 날의 뻐근한 근육통마저 열심히 운동한 증거처럼 느껴져 뿌듯하다.
경주 거리와 관계없이 어떤 대회든 참가만 하면 티셔츠, 메달, 벨트 버클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매일 착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날마다 걸치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그 과정에서 습득한 교훈이다. 신체나 정신의 작은 성장 그리고 한층 더 커진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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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몇 년을 꾸준히 달리는 사람은 러너로 성장하는 동시에 다른 분야에서도 성숙해진다. 의무감을 이해하고 인내심을 개발하며 얼마간 자제력도 기를 수 있다. 당신이 달리기에서 얻는 것이 힘든 일을 견디고 이겨 낼 수 있다는 증거뿐이라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거리, 수분 섭취, 결승선, 달리는 속도와 걸리는 시간을 파악하는 것 역시 그 과정의 일부다. 그렇게 하면서 좀 더 괜찮은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음, 당신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 p.131~132
목표가 원대할 필요는 없다. 변화무쌍한 우리의 인생에는 별의별 일이 일어나다 보니,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는 달리기 목표를 설정하기는 어렵다. 벌여 놓은 일이 많은 해에는 그것을 수습하는 데 주력하고 달리기는 기본 체력을 유지할 만큼만 꾸준히 하면 된다. 0에서 시작해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는 스케줄로 조절할 수도 있다.
어떤 목표를 정했든, 달리기의 우선순위를 높이면 달릴 시간은 생기게 마련이다. 못 견디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간이 없어도 짬을 낸다. 바쁘다는 핑계 따위는 던져 버리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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