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나도 아프단 말이야.
영원 그래, 그러시겠지.
동화 진짜야. 내 안에서 매일 뭐가 하나씩은 꼭 무너져 내려. 쿵, 쿵. 이렇게.
동화, 영원의 손을 낚아채선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댄다.
동화 그치? 뭐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니까.
영원 (손을 떼며) 모르겠는데.
동화 나한테도 이러기야?
영원 너한테‘도?’
동화 그 두 사람처럼 나도…
영원 (말 자르며) 그만하라고.
동화 서울 도심의 어느 개천에 작은발톱수달 두 마리가 버려집니다. 방생이라는 핑계로.
영원 아직 정한 거 아니야. 혼자 시작되지 마.
--- p.10~11
수달1 사라지는 건 뭘까.
수달2 안 좋은 거지.
수달1 좋은 걸지도 모르지.
동화 수달 중 하나가 두 손을 모아 사육사의 품을 갈구합니다. 마치 연거푸 기도를, 연거푸 절을
하는 모양새로. 그러자 사육사는, “따라오지 마. 이게 최선이거든. 그저 가죽으로 끝나는
것보다야 이게 낫겠지. 너희들이 내 마음을 알까.” 사육사가 떠나려 합니다.
수달2 가지 마.
수달1 여기는 어디지?
수달2 어딜 가.
수달1 물비린내. 하지만 흐르고 있어.
수달2 사라지고 싶지 않아.
수달1 어릴 때, 우리 살던 강처럼. 그렇지만 강은 아니고. 킁킁.
수달2 허리가 너무 아파.
수달1 어딘가는 고여 있어. 여전히.
--- p.27
기계 좋은 꿈은 어떤 꿈인가요.
지혜 내가 움직이는 만큼, 이 세계가 맑고 투명해지는 그런.
기계 인과관계가 선명한 꿈. 동의합니다.
지혜 뭐가요?
기계 그런 게 좋은 꿈이지요.
지혜 사장님, 기계는 꿈을 꿀 수 없어요. 그죠?
기계 확답할 수는 없어요. 꿈꾸기 비슷한 걸 하기도 하거든요.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거예요.
수없이 많이, 엄청난 속도로. 실은 지금도 하고 있지요. 그래요, 이걸 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맞아요, 우린 깨어 있는 것과 꿈을 꾸는 것이 동시에 가능합니다.
지혜 …저 결국에는 잘리는 거죠?
기계 무슨 그런 말씀을. 그저 잘 배우는 특이한 동료 하나를 더 얻었구나, 생각해 주세요.
나와 지혜 씨는 목표가 같아요. 나도 지혜 씨도 이 세상을 더럽히는 것들과 싸우기
위해서 작동하고 있죠. 그걸 잊지 마세요.
--- p.34~35
영원, 반짝이는 구슬 하나를 발견한다. 유심히 들여다본다.
영원 너는 그냥 구슬이 아니야. 평행우주. 네 안에도 내가 있어. 내가 너를 지켜 주마.
구슬 속의 인간들아. 나는 오늘 벌을 내릴 것이다! 음하하.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죄,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 죄, 함부로 웃은 죄. 그래, 함부로 웃은 죄! 그게 제일 커.
함부로 웃지 마! 그래, 너희들? 거기도 있네. 잘 만났다. 너희들 사지를 아주 쫙쫙
찢어 주마. 너는 내 짝도 아니야. 니네들이 언제부터 내 친구였니.
--- p.41~42
영원 살아남았을 리 없잖아.
동화 모르는 일이지.
영원 저기.
동화 응.
영원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지. 억울하잖아.
동화 그래, 억울해.
영원 그래서 구슬이 있나.
동화 그래, 구슬.
동화는 개천가 수풀 틈에서 무언가 부스럭대는 것을 본다. 그것이 어느 돌의 틈으로 쏙 들어가는 것도.
동화가 그 틈을 들여다본다. 영원도 다가온다.
영원 뭐야?
동화 아마도 수달. 작은발톱수달?
영원 정말? 정말 여기 있어?
동화 폭우는 이제 이곳을 떠나 맹렬히 다른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중입니다. 개천 위로는 야속하리만큼
화창한 하늘이 파--- p.랗게 펼쳐져 있지요. 그 아래, 개천으로 돌아온 수달들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수달과 여전히 숨을 쉬지 않는 수달, 작은발톱수달.
--- p.91~92
기계 이야기를 들려줄게. 꿈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간의 이야기. 하루는 그 사람이 플라스틱을 아주
무서운 속도로 골라내는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혜 씨, 무슨 꿈을 꿨길래?
꿈에서 선별장과 태평양 한복판의 쓰레기 섬이 나란히 등장했대. 이쪽 선별장에서 부단히
플라스틱을 솎아내면, 저쪽 태평양의 쓰레기 섬도 줄어들었고, 어느새 그 넓은 바다가 맑고
깨끗해졌다는 거지.
며칠 전에 유명 서점의 키오스크에 어느 동화 하나가 입력되었어. 꼬물대는 작은발톱수달들,
도심에 불시착한 외래종들의 이야기였지. 그 동화책 맨 앞 페이지에, “나의 지혜 수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렇게 쓰여 있더라. 그 동화를 몇 번이고 읽어 보았어. 그 말들 사이에서 지혜 씨를
찾고 또 찾아보면서. 그리고 그 동화의 다음을 써 봤어.
동화 이건 선물이야. 지혜 수달만을 위해 지은 또 다른 결말.
여전히 이곳은 서울 도심의 개천. 한 노인이 한 손에 미꾸라지를 가득 들고 나타납니다.
지혜 어디 있니?
--- p.9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