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정상을 향해 싸우지만 정상에 오르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감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친구, 동지, 친지, 자신의 참모,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기적 충동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부패한 지도자는 개혁을 단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패를 박멸하고 도덕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강철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부패한 국가에서 자유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형태를 공화정에서 군주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법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광란은 제왕적 힘에 의해서만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부패로부터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도덕, 자비심, 종교 등에 역행하는 행동을 해야한다."라는 경고는 부패에 빠질 위험이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名句라 할 것이다.
지도자는 사랑의 대상이 좋은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좋은가?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추종자들에게 애정을 불어넣어 복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승리와 번영이 있을 경우에는 지도자를 따르지만 패배할 경우 등을 돌리며, 사태가 악화될 경우 그들의 분노를 피하기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추종자들에게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의 예로써 저자는 1794년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폭동 때 군대를 동원하여 강경 진압한 것을 들면서, 그러나 그 어떤 대통령도 워싱턴만큼 사랑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의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에 대한 강경 조치, 대처 수상의 탄광노조의 강경 대응에 따라 얻게 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 등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두려움의 대상이 훨씬 안전하다'라는 마키아벨리의 지혜에 대한 기념비적인 사례로 PLO의 아라파트를 든다. 그가 중동평화협상을 이끈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피의 성전을 선언한 이후였으며, 그러한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마키아벨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러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통치의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지도자로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교황 바오로 2세, 싱가포르의 이광요, 폴란드의 바웬사,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영국의 마가렛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등을 들고 있으나,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소위 방종과 덧없는 인기만을 추구하다가 '유약한 지도자'로 추락한 사례로써 영국의 존 메이저, 미국의 조지 부시,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독일의 헬무트 콜, 그리고 미국 공화당 원내총무였던 깅그리치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등을 들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력의 근간이 되는 권력의 기원을 인간 역사의 본질에서 찾는다. 즉, 인간은 처음에는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싸우지만 나중에는 인간의 가슴에 내재한 강력한 야망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결국 승리자는 '지배의 달콤함'이라는 맛을 즐기게 되고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고 지키기 위하여 '제도'와 '법'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위반하는 사람에게 벌을 부과한다. 여기에서 '정의'의 개념이 나오고 지도력의 원천이 생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본질적으로 쉼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순환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지도자를 향한 명령은 절대적이다. 즉, "변화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인 마키아벨리가 쓴 정치학의 고전이다. 군주의 통치기술을 다룬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통치·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야심·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몰인정·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후세에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게 된 권모술수주의(權謀術數主義)를 주장하였다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어 위험한 서적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분열과 외국의 간섭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상태에 빠진 이탈리아를 강력한 군주에 의하여 구하고자 한 그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정치이론가. 피렌체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498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관직으로 내정·군사를 담당했으며, 대사로도 활약했다. 1512년 메디치가가 피렌체로 복귀하자 음모의 죄명으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군주론』, 『로마사론』, 『전술론』 등이 있으며, 특히 정치학의 고전으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 『군주론』은 군주의 통치기술을 다룬 책으로, 후세에 '마키아벨리즘 = 권모술수주의'라는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획기적인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