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딛고 있던 바닥이 사라지면서 바닥 아래 구멍으로 쑤욱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키라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얼음처럼 차가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오한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키라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토끼와 곰 인형이 차가운 눈으로 키라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꺼리는 이유가…….’
파란색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기 때문이구나.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여 시뻘건 피가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감각이 키라를 에워쌌다.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단칼에 베인 마음은 그저 ‘죽은 듯 가만히’ 있을 뿐이다.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슬픔이 끓어올라 통곡하고 싶은데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 p.12
생각해 보니 그때 ‘잃어버린 성궤’ 얘기를 했는데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 왕의 ‘솔로몬의 보물’이며 그 안에는 검과 거울, 구슬이 들어 있다고 했었다. 그 검을 손에 넣은 자는 용사로 인정받고 어떤 소원도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그 전설을 믿는 세계 도처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고 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키라는 그 수업에서 ‘선한 마음은 약처럼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고 했던 솔로몬 왕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 멋진 말을 한 왕이 남긴 보물은 어떤 것일까 흥미가 생겼었다.
‘잃어버린 성궤는 그야말로 꿈같은 전설이지, 설마 현실에 존재하겠어?’ 하고 흘려들었는데 눈앞에서 가나모리 교수가 그 성궤가 이 하야마의 비밀의 숲에 숨겨져 있다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28
개구리 인간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서쪽으로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산을 가리켰다.
“그 성궤의 뚜껑을 열 수 있는 사람을 용사라고 허지.”
“용사요?”
이번에는 키라가 물었다.
“일곱 개의 돌을 모은 사람을 용사라고 하는 것이여. 저 산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일곱 번 시험을 당하게 되어 있어. 성공한 자들에게만 하나씩 돌이 주어지는 것이재. 그런데 말이여, 그게 지금까지 보면 어떤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허고 또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기도 했당께. 어떤 이는 사나운 짐승으로 모습이 바뀌기도 했어. 느그들, 그래도 갈 참이냐?”
키라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엄청난 곳에 와 버렸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야. 여기서 나가야 해!’
키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리쿠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가야지요!” 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내가 쪼까 힘을 빌려주도록 허지.”
“고마워요, 라오시.”
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 리쿠와 라오시를 보면서 키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돌아갈래요.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요?” --- pp.34~35
“소울 비즈니스요?”
“누구나 말이여, 미나모토로부터 그 사람만이 가지는 독자적인 재능을 받아서 태어난단 말이여. 소울 비즈니스가 직업이 되는 사람, 직업은 아니지만 취미가 되는 사람, 이런저런 타입이 있재. 소울 비즈니스는 영혼의 표현이라 이거여. 발견하는 나이는 제각각 다르지만 언젠간 다 발견하게 되어 있어. 그걸 발견하면 영혼이 흔들려. 너도, 리쿠도, 네 엄니에게도 다 있어. 헌데 느그들은 아직 그걸 발견 못했어. 그래서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우왕좌왕하는 것이여. 소울 비즈니스를 발견하게 되면 곧장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어.”
“그건 어떻게 발견하는데요?”
“두근두근 나침반을 쓰는 거여. 일상생활 속에서 가슴 뛰는 일들이 뭔지, 그걸 기준으로 선택하는 거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 안에 힌트가 있는 거여. 그런디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건 자기가 하면 너무 쉬운 일이니까 그게 재능이라고 눈치를 못 채는 것이재.” --- pp.178~179
“만약 내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 누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건 그 사람의 문제고 그 사람이 해결할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 미움받을 게 무서워서 오그라들고 움츠리고 살았던 시간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야. 이렇게 자유로운 걸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키라는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리쿠,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건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인 것 같아!”
리쿠도 동감한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생각이 오늘을 만드는 거야!”
키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에겐 힘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오케이 사인을 할 수 있게 되었어!”
--- p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