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라는 단어는 어감이 참 별로인 거 같아요. 그보다는 치어리더? 격려자? 영향을 주는 사람? 글쎄요. 사실 용어가 뭐가 중요한가요? 저는 그저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이 활동이 육아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는 데 기여하길 바라며 저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할 뿐이랍니다. 진솔함이 저의 브랜드랍니다. 저는 항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니까요.
--- pp.16~17
아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구두 협찬이나 좀 받으려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에미가 블로그에 첫 글을 게시하기도 전에 이미 도메인을 구매하고 ‘베어풋’과 ‘마마베어’로 인스타그램 계정 등록까지 마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3년이 지나기도 전에 에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에미가 에이전트와 계약을 마친 후 가장 처음 들은 조언은 모든 활동이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에이전트도 나도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에미의 천부적인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 p.22
내가 가능하면 아침에 집필 작업을 많이 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정오가 지나면 초인종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대기 때문이다. 에미가 인스타그램에 ‘코코가 원래 먹던 종합 비타민을 잘 먹지 않네요. 다른 비타민으로 갈아타려고 하는데 추천 부탁드려요’, ‘이런 다크서클도 없애주는 세럼 있을까요?’, ‘우리 집 믹서기가 고장 났네요. 엄마들의 추천 기다립니다’라는 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기업의 홍보 담당자에게서 자사의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온다. 사실 그게 에미가 인스타그램에 저런 글을 올리는 진짜 목적이다. 오카도(영국의 온라인 식료품 유통업체)에서 주문하는 것보다 싸고 빠르게 물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내내 에미는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내용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번 주 내내 여러 회사에서 무료 고데기, 무료 헤어 제품, 무료 샴푸와 컨디셔너 등으로 채워진 리본 달린 상자를 보내왔다.
--- pp.30~31
인스타그램에 뭔가를 게시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아이들이 잠들고 난 저녁 시간이다. 내 계정을 팔로우하는 100만 명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재운 후 남편과 대화해보려고 에너지를 짜내기보다는, 술을 한잔 따른 뒤 휴대폰을 들고 SNS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시간에 게시물을 올린다. 마치 가볍고 즉흥적으로 올린 것처럼 보이는 사진과 글이지만 사실 모두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준비해놓은 것들이다. (…) 마마베어의 콘셉트는 진솔함이기 때문에 글에는 약간의 진실이 포함되는 게 좋다. 나는 100퍼센트 픽션을 쓰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소설가는 남편이지 내가 아니니까. 진짜처럼 들리는 그럴듯한 일화를 만들어내려면 실생활에서 얻은 상상의 동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낸 육아 모험담이 나중에 기억하기에도 좋다. 인터뷰, 토크쇼, 초청 강연 등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야기에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 pp.42~43
내 에이전트인 아이린은 원래 내가 전에 만들던 잡지에 표지 모델로 자주 등장하던 여배우들을 관리하는 배우 전문 에이전트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를 그만두고 우리 편집장이 표지에 절대 싣지 않으려고 그렇게 발버둥 쳤던 인플루언서들을 맡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두 블로그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 나는 그녀에게 연락해 내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생각을 들어본 아이린은 그건 이미 한물간 트렌드라고 딱 잘라 말했다. 구두 블로그는 이미 레드 오션이 된 지 오래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이미 패션계의 거장들이 그 시장을 잠식해서 이제 막 인플루언서로 노하우를 터득해나가고 있던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아이린은 내게 요즘 뜨는 트렌드는 육아와 정신 건강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면서 구두 블로그는 해보면서 감도 좀 익힐 수 있고, 나중에 다른 아이템으로 전환할 때 진솔해 보이는 배경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열심히 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신경쇠약에 걸리거나 임신을 하면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4개월 후, 나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흔들어 보이며 다시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
--- p.50
어제는 유독 음침한 사람들에게서 메시지가 많이 왔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최대한 빨리 답변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그들은 불평하는 댓글을 남기거나, 가십 사이트에 마마베어가 요즘 좀 건방져졌다는 글을 작성하고 다닐 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유쾌하게 그들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베어풋 블로그 시절부터 따라다니며 내 맨발 사진을 사진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중년 남자에게는 “하하, 미안해요 지미! 제 발은 이미 막스앤드스펜서 슬리퍼를 신고 잘 준비를 마쳤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여성의 출산을 주제로 시를 써 보내는 남자에게는 “정말 고마워요, 크리스. 시간 날 때 제대로 음미해볼게요”라고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 중에는 빅토리아 시대 드레스를 입은 코코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다며 코코가 언제 시간이 되냐고 계속 묻는 여자도 있다.
--- pp.96~97
로라는 카디건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앞에 서 있는 로라와 나를 팔로우하는 100만 명 이상의 여성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낀다. 대중매체도, 남편도, 친구도, 그 누구도 아기를 낳은 후의 진짜 현실은 알지 못한다. 매일매일, 온종일, 아기의 토사물과 똥과 먹다 남은 이유식을 치우며 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그들은 모른다. 지루함으로 미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내일은 다른 걸 해보려고 매일 밤 머리를 짜내는 심정을 모른다. 매일 가는 놀이터나 발 냄새 나는 실내 놀이터가 아닌 곳, 빵 한 조각 시켜놓고 코코아를 바닥에 흘리며 자리만 차지하는 당신과 당신의 징징대는 아기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카페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 헤매는 심정이 어떤지 그들은 결코 알 수 없다.
--- p.245
나는 버스에서 네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일 수도 있고, 지하철에서 너를 스치고 지나간 여자일 수도 있다. 나는 슈퍼에서 네가 먼저 카트를 밀고 지나가도록 길을 양보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너를 스쳐 지나가거나, 기차 맞은편에 앉아 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과자를 줘도 되냐고 묻는 사람일 수도 있다. (…) 실수로 네 아이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팔꿈치로 쳐서 차가 다니는 도로로 밀어버린 사람일 수도 있다. 공원에서 마주쳐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네가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새로 태어난 아기가 누워 있는 유아차로부터 잠시, 아주 잠시 눈을 떼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 pp.41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