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추상적입니다. 일상 언어가 아닌 인공언어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가 어렵고 즉각적인 이미지 형성도 불가능합니다. 영국의 경우,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칠 정도면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기업에서 이리저리 데려가는 통에 수학 교사가 모자라, 아시아 등에서 초빙하여 충원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학은 어느 사회에서나 특별한 지식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어려운 수학을 우리는 왜 물리나 화학, 경제나 생활과윤리처럼 선택 과목으로 만들지 못할까요? 수학이 어려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배워야만 할 가치가 있는 걸까요?
---「1부 수학이 영원히 ‘선택’ 과목이 될 수 없는 이유」중에서
고등학교에 올라온 학생들이 첫 중간고사를 치를 때가 되면 예외 없이 늘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이번 수학 시험에 증명 문제 나와요?” 고등학교 수학이라는 고해(苦海)에 발을 디딘 후 첫 시험에 대한 부담은 여지없이 증명에 대한 공포였던 거죠. 제 학창 시절을 생각해 봐도 수학 외의 과목에서 증명 문제가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증명 문제를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교과서의 (이해할 수 없는) 문제 풀이 과정을 죄다 암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증명 문제가 시험에 나오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 교과서 문제 풀이 과정을 모두 암기해야 하나요?”
---「2부 수학의 맛」중에서
사실 이 가설은 수학적인 가치나 실제적인 응용 양쪽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수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가설이 가진 기묘한 매력 때문이었죠. 결과물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인데, 증명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도 해내지 못했으니까요.
이 기묘한 가설의 증명은 많은 수학자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가설을 증명하는 쪽과 반례를 찾는 쪽, 이렇게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됐죠. 어마어마하게 큰 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지루하게 계산했는데도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가설을 참으로 간주하는 쪽이 대세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가설의 증명 과정에서 수많은 성과와 놀라운 발견이 잇따른 것과 별개로, 제가 이 책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증명은 완료되지 못했습니다.
---「3부 수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중에서
홈스의 추리는 수학적 기준에서 볼 때 엄밀하지는 않지만 단서를 조합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큰 재미와 깨달음을 줍니다. 도일은 자신의 또 다른 단편 「녹주석 보관(The Adventure of the Beryl Coronet)」에서 홈스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는 것. 아무리 믿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다.” 문제 해결이 심각한 어려움을 맞았을 때 직접 부딪쳐 깨트리는 정공법이 아니라, 때로는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 없애고 남은 것을 취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홍운탁월(烘雲托月)’이라는 동양화 기법에 비유될 만합니다. 밤하늘의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에 구름을 그려서 달을 드러내는 거죠.
---「4부 수학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중에서
『안네의 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나요? 책에는 주인공 안네가 나치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있을 동안, 수학 문제를 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극한 상황에서 증명하는 기하학 문제가 안네의 내면에 어떤 그림을 새겨 넣어 주었을까요? 여러분도 수학 공부의 넓은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자신이 수학을 공부하는 고유한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5부는 플라톤, 칸트, 페스탈로치, 피아제, 비고츠키 등 위대한 학자들과 제가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통해, 수학 공부의 인간학적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끔 구성했습니다.
---「5부 수학을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중에서
인생을 너무 좁게 생각하지 말고 몰랐던 언어(개념)를 조금씩 알아 가는 재미와, 안 풀리던 문제를 시행착오를 거쳐 풀어내는 기쁨을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목표를 설정할 때, 혼자 하지 말고 주변 어른(예를 들어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얻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입니다. 만약 어떤 주변 사람이 ‘넌 할 수 있어’를 남발하며 무리한 목표를 제시하거나 요구하면, 설사 나의 부모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내 편이 아닙니다. 누가 내 편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하느냐고요? 먼저 나 스스로 내 편이 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6부 수학 불안과 성공 경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