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이웃집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집들은 마치 집 안에 있는 질병 때문인 것처럼 언제나 블라인드를 드리우고 있었다. 실제로 집 안에는 질병이 있었다. 소모된 삶이라는 질병이.
--- pp.20~21
침대에 누운 그는 육체적인 차분함보다는 훨씬 더 깊은 어떤 것, 삶 자체의 고동 같은 것을 느꼈다. 확고한 기쁨이, 따뜻함과 충만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고, 그는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이를 대신할 수 없었다.
--- p.47
더 우아한 방법일수록 더 드물다. 완벽한 사랑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가장 위험한 시도가, 비록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 정당성에 의해 아름다워진다. 암벽에는 약점이 있고 결함이 있다. 그 약점과 결함으로 암벽의 매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이 정상에 이르는 길이다.
--- p.88
“산이 하게 만든 겁니다. 우린 자기 자신 때문에 그걸 하는 거예요.”
--- p.161
랜드를 변화시킨 것은 고독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깨달음도 그를 변화시켰다. 중요한 것은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 p.174
항상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앞장서는 것이 운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삶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인간이다.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든 남보다 앞서 배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힘을 주고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곳의 어둠 속에는 사랑과 질투가, 선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 p.188
“그건 영웅주의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산에 빚을 졌기 때문에 한 행동입니다. 어쨌든 그 일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 네 사람이 한 거예요. 난 그중 한 명일 뿐입니다.”
--- p.194
“거대한 암벽은 대가를 요구하잖아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맞아요. 우린 모든 걸 다 바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죽을 필요는 없어요.”
--- pp.194~195
“산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 p.195
파리. 그곳은 랜드가 이미 떠나고 있는 거대한 터미널 같았다. 마치 공연을 알리듯 쉼 없이 깜박거리는 수많은 네온사인과 에나멜 간판이 걸린 터미널 같았다. 석조 지붕과 식당, 녹색 버스, 회색 벽, 담배를 피우며 개를 데리고 다니는 파리 사람들……. 그는 잠시 그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에 불과했다. 그의 얼굴이 실린 광고는 사라졌지만 그는 계속 이곳에 남아 있었다. 살다 보면 인생의 어떤 장소에서 시작과 끝을 다 보는 경우가 있듯이, 그는 똑똑히 보았다. 파리는 그를 버렸다.
--- p.216
그는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위는 용서가 없었다. 만약 집중력을 잃는다면, 의지를 잃는다면, 바위는 그가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p.230
인생 전체가 길 위를 지나가는 것 같다. 태양은 한 창문에서 다른 창문으로 옮겨 가고, 집과 도시와 농장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 p.269
그는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지극한 순수의 전형이었던 삶, 절대 망가뜨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삶을 지나와버린 모습이었다. 갑자기 너무 늙어버린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한때 그가 경멸했을 법한 얼굴이었다. 이제 그는 외투도 없이, 쉴 곳도 없이 겨울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