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라는 게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또 기가 막히게 티나 나요. 거기다 지겹게 맨날 똑같은 일의 반복이야! 주말도 없고, 퇴근도 없고, 휴가도 없고…. 이렇게 365일 일하는데 이걸 가치 있게 봐주는 사람이 없어요!! 가정주부라고 하면 일단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 이러다 보니 또 자존감은 떨어지고…. ‘나도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싶다’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나 하고 말이에요. 어휴, 열 받아!!” 언니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GDP에 가사노동을 포함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말했다. “맞아요, 한 1,000만 원은 해야죠!”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2021년 통계청에서 낸 ‘가사생산 위성계정’이라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쓴 기사에는 월 1,000만 원이 아니라 하루 평균 4시간, 시간당 1만 원 정도의 연봉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 전업주부들이 가사일 다 팽개치고 사회에 나가면 정말 연1,000만 원을 못 벌까? 왜 우리가 사회에 나갔을 때 창출할 수 있는 GDP에 대한 기회비용을 못 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집에서 살림하면서 마음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밖에 나가 스스로 알바라도 해서 그 돈을 버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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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주기로 극심하게 변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 의견, 감정, 생각은 사치였다.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형성된 이 성격은, 사실 집에서 살아남기에도 쉬웠다. 우리 집은 엄마가 대소사를 진두지휘했고 반대 의견은 무시되거나 거센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너 같은 딸은 10명도 키우겠다!”
“어쩜 너는 동생들을 그렇게 잘 챙기니? 너 같은 언니는 처음 봤다.”
한 번도 누구와 사이가 틀어진 적 없는 나였다. 일평생 큰소리 내어 싸워본 적이 없다. 직장에서도 1등 직원으로 충성을 다해 일했다. ‘딸, 언니, 누나, 친구, 아내, 며느리, 직원’이란 단어 앞에 늘 ‘친절’이 따라붙었다. 나는 이게 특급 칭찬인 줄 알았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40대 중반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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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너머 은하수를 그리며 둥둥 떠다니는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려 노트에 쓴 ‘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으니 지금이라도 정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적어보았다. 기가 막히게도 공통으로 들어가는 게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춤’이었다. 허! 내가 얼마나 어렵게 결정하고 춤을 포기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춤으로 무언가 해보겠다는 건 미친 짓이지. 게다가 서른을 넘은 나이에 애가 둘이나 있는 아줌마 몸으로 새파랗게 어리고 날아다니는 댄서들과 경쟁할 수나 있을까? 당연히 자신 없지!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끔은 평소에 하지 않던 질문을 스스로 던짐으로 인해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꽤 바람직하다.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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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또 다른 호기심에 이끌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게 있다. 지금 한 걸음, 오늘 하루를 100% 전력투구하며 스스로에게 정직하려 한다. 어느 순간이든 ‘나’라는 존재를 절대 잊지 않고, 나 자신에게 다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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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진짜 괜찮은 거 맞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진짜 괜찮은 것일까? 아마도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줄곧 아이들 이야기만 한 것 같다. 4남매의 엄마로서 힘든 적도 있지만, 4남매가 주는 행복이 컸다. 생활 면에서도 아주 바쁘기는 했지만, 특별히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어서 넉넉하고 부유하진 않아도 불편 없이 지냈다. 하지만 딱히 미래가 설계되어 있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런 건 남편이 알아서 다 하겠지. 나는 4남매를 돌보고 챙기면서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잖아.’ 그렇게 전업주부가 나에겐 디폴트인 양, ‘4남매 맘’이라는 말과 상황에 안주해 그저 하루하루를 보냈다. ‘4남매가 있으니 육아만 하느라 다른 것은 할 수 없어.’가 당연한 시선이었고, “어떻게 아이 넷을 도움 없이 다 돌봐요?”라고 하는 주위의 얘기에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4남매 때문에, 아이 넷을 돌봐야 하니까, 다른 것을 할 수 없어. 육아만으로도 빠듯해.” 그런데… 진짜? 그럼 나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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