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순서가 되었다. 잘 웃어요, 라며 아이들이 먼저 나섰다. 선생님도 굳이 확인해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틀렸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따로 있다.
참는 것. 보고 싶어도 참고, 화가 나도 참아 넘기고, 울음도 꾹눌러 참아내고…….
참는 일은 매일 갈아입는 팬티와도 같다. 앞으로도 계속 참아야 한다. --- p.23
저는요, 기분이 별로일 때마다 복어를 그려요.
사실이다. 복어가 허파로 숨 쉬는 동물이었으면 좋겠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다. 복어를 꺼내 들여다보면, 슬픔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애쓰지 않아도 명랑한 아이로 지낼 수 있을 테고. --- p.29
내 꿈은 엄마다. 장래의 희망을 조사하는 곳에 엄마 이름을 써 놓을 수는 없어도.
엄마는 너무했다. 나를 계속 놔뒀다간 내 꿈은 점점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요즘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 엄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는 있지도 않은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다. 바보처럼. --- p.53
기도할 거리가 많다. 너무 많다.
한 가지씩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해피빌라 사람들, 마이아줌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 301호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서려 하지 않는 뭉치, 잘난 척하는 수애, 매일 아빠한테 얻어맞는 기호,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빠르게 녹고 있는 북극의 빙하…….. --- p.154
“죽으면 아파요. 아파서 안 돼요.”
삼촌은 반대로 말했다. 아파서 죽는 법이다. 죽으면 끝이다.
내가 틀렸다. 삼촌의 말뜻은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아픈 게 아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이 아프다. --- p.218
별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여서 함께 반짝이기 때문이다. 딱 하나의 별이라면 작고 시시한 유리조각 같을 거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해피빌라를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우리는 식구다. 한 팀이라서 반짝반짝 빛난다. 식구가 되어 한 팀을 이루지 못했다면, 나에게 해피빌라는 지긋지긋한 바퀴벌레 소굴일 뿐이다.
---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