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자연이 만들어준 최상의 솔숲 응접실
숲 찾아 나서는 길은 홀가분해서 좋다. 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여정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꼭 올라야 할 봉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건너야 할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할 일정이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사람의 흔적을 가능한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만 있으면 언제나 떠날 수 있다. 혼자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온 가족이, 또는 마음 맞는 사람 누구나 함께 나설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꽉 찬 머리를 적당히 비울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오관을 활짝 열고 숲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적 여유만 있으면 나설 수 있다. 하긴 오늘날처럼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숲 찾는 길이 오히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루 온종일 흙이라곤 한 걸음도 밟아보지 않고 사는 물질문명의 수혜자에게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해보는 일은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르니까. 자연의 소리, 자연의 색, 자연의 조화보다는 인공의 소리, 인공의 색, 인위적 조화에 익어온 일상의 굴레를 잠시 벗어나는 것은 현대인에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솔숲을 지나는 초록색 바람 소리
안면도는 500년의 역사적 숨결을 소나무 숲을 통해서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중부 서해안 지방에서 가장 혈통 좋은 소나무들이 살고 있는 곳, 단 한 가지 수종 소나무를 5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보호해온 조선 정부의 처절한 노력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곳,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우리의 민족수인 소나무 개량사업을 세계적인 규모로 추진하고 있는 곳. 숲과 관련하여 안면도를 설명할 때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내용들이다.
안면도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섬 같지 않은 섬이다. 태안반도와 안면읍을 이어주는 안면교가 있기 때문에 섬이라기보다는 육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태안 해안 국립공원의 남쪽 부분을 차지하면서 천수만을 끼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안면도는 행정구역상 충남 태안군 안면읍과 고남면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에서는 242킬로미터, 대전에서는 218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중부 지방에서는 아침 일찍 일정을 서두른다면 인근에 있는 천연기념물 모감주나무 군락까지 하루에 둘러볼 수 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으로 탐방 증거물을 남들 앞에 자랑삼아 내세우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오히려 일상에 매인 끈을 끊고, 넉넉한 마음으로 솔숲의 내음,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솔갈비의 감촉, 솔숲의 푸르디푸른 녹색을 가슴에 담고 오고픈 사람들에게는 하룻밤을 여유 있게 묵으면서 이 소중한 자연을 체험해보라고 권한다.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소나무 숲은 조선 왕조의 소나무 시책과 관련된 귀중한 유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지구상의 어느 정부도 감히 시행하지 못한 소나무 보호 정책[송목금벌]을 500여 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실시해온 흔적이 여전히 푸른 숲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따라 남으로 향하면 30~40분 안에 안면읍에 닿는다. 남행 차창에는 검푸른 색의 솔숲이 우리 눈 가득히 들어오는데, 바닷가에서 자라는 곰솔[해송]이다.
푸른 절개를 가르쳐주는 소나무들
이 땅에는 지난 수만 년을 이어오면서 자라는 토종 소나무들이 몇 종류 있다. 먼저 나무껍질의 색이 나이를 먹어가며 붉은 색의 철갑으로 갈아입기에 적송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벼슬을 가진 속리산 정이품송, 토지를 가져서 재산세를 내는 경북 예천군의 석송령,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등과 같은 종류다. 개마고원 지대나 높은 고산지역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흔한 나무다. 울릉도에도, 제주도에도, 홍도에도, 설악산에도, 지리산에도 소나무는 자란다. 그래서 소나무는 이 땅의 터줏대감 나무다. 우리 국민이 나무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며 국민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민족수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이 땅에 터 잡고 살아온 소나무 가족은 곰솔이다. 기후가 비교적 온난한 해안과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나무껍질의 색이 검고 바닷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흑송, 해송이라고도 부른다.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소나무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륙 지방에는 자랄 수 없으나 경기도의 일부 해안이나 강원도의 강릉 지방에까지 자란다.
세 번째 소나무 가족은 잣나무다. 잣이 열리는 이 나무는 원래 추위에 강하고 서늘한 곳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잘 자란다. 이 나무와 사촌격인 누운 잣나무도 있는데,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에서 볼 수 있는 오엽송이다.
이 밖에도 외국에서 종자를 도입하여 우리 땅에 심은 리기다소나무, 테다 소나무 등이 있다. 소나무 가족을 식별하기 쉬운 방법은 한 속에 잎을 몇 개씩 달고 있는지 세면 된다. 소나무와 곰솔은 한 속에 잎을 각기 두 개씩 달고 있고, 잣나무와 누운 잣나무는 한 속에 잎이 다섯 개 있다. 그리고 리기다소나무와 테다 소나무는 한 속에 잎을 세 개씩 달고 있다. 나무껍질인 수피색이 붉으면 소나무, 검으면 곰솔로 구별하여 판정할 수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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