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까지 와서 너무 초라해진 우리의 피부와, 피로에 퉁퉁 부어 버린 손발을 보며 잠시 상상했다. 휴양지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누군가가 서빙해 주는 칵테일(칵테일을 안 좋아하지만 왠지 이 장면에서는 칵테일이 나와 줘야 할 것 같다.)을 한 잔 마시며 얼굴이 번지르르한 채 여유를 즐기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웃으며 로션을 아끼고 아껴 내 건조한 손등에 정성스레 발라 주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작은 것도 왠지 더 소중해지는 이 여행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값지게 다가왔다. 이 여행을 하며 힘든 일은 계속해서 생겼지만 그 역경을 함께 이겨 내며 우리는 부부로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 p.50~51, 「커내브에서의 다소 엉뚱한 로맨스」중에서
“오빠랑 연애할 때, 같이 속초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 속초에 느지막이 도착해서는 밤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놀았어. 비수기라 꽤 조용했고,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데 그게 또 괜히 낭만적이더라. 그렇게 앉아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캔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올라오는 거야. 나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바닷가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 마치 바다에 홀린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기지? 그래도 다행히 이성은 금방 돌아오더라. 그 짧은 몇 초 동안 ‘아이고, 오빠가 날 엄청 창피해할 거야…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리에서 뒤엉켰어. 그리곤 민망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았는데, 웬걸? 오빠도 나를 따라 나와 내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야.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오는, 달빛 아래서 춤추는 그런 낭만적인 장면은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오빠와 춤을 추는 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쿵 하면 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어떤 모습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아서.”
--- p.58~59,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중에서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의 목구멍은 턱, 하고 막혀 버렸다. 벌어진 나의 입은 흙빛의 텁텁한 애리조나 공기를 머금을 때까지도 좀처럼 닫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치 우주에 있는 어떤 별 하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그저 태평양만 건너왔을 뿐인데,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
미서부 자연의 삭막한 아름다움은 푸릇푸릇하게 숨 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확실히 달랐다. 척박한 땅에서 느껴지는 그 숨결은, 매번 나의 장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내 마음을 울렸다. 그 숨결이 지나간 자리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남았다.
--- p.95,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중에서
행복했다. 정말 온 마음 다해 벅차오를 만큼 이 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사실 그 뒤엔 불안함도 함께 따라왔다. … 이 상황이 왠지 내 인생과 닮은 것 같아 조금 슬펐다. 난 행복한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순간이 끝난 뒤 언젠가 찾아올 불행을 미리 걱정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역경을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무사히 이겨 낸 뒤에, 꼭 행복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내 인생, 온전히 행복함을 느껴도 괜찮다는 결론 말이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나를 토닥여 주었다. 걱정에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던 모뉴먼트 밸리의 밤, 나는 그 위로에 보답하듯 곤히 잠들었다.
--- p.102~104,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