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 마을 반내골에 2년 전 숙자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온 마을을 들쑤셔놓고 있습니다. 숙자 언니는 우리 막내 이모의 딸인데, 이모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모와 떨어져 우리와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숙자 언니는 공밥을 얻어먹는 주제이지만, 염치는 미제급입니다. 숙자 언니는 할머니와 말싸움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고, 공부만 잘할 뿐 게으르고 얌체스런 세찌니 영미와 밥상에서 반찬 전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하던 우리 집은 숙자 언니가 오고 나서부터 늘 크고 작은 소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세찌니는 읍내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집을 떠납니다. 늘 신작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좀이 쑤셨던 세찌니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말수가 부쩍 줄어들며 어딘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숙자 언니와 싸우지도 않습니다.
더불어 숙자 언니도 이상해집니다. 봄에는 나물을 뜯어 팔고, 가을 추수철에는 품을 팔아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숙자 언니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팬티 속 주머니에 차곡차곡 모읍니다. 가을이 지나자 숙자 언니의 아랫배는 애밴 여자처럼 불룩해졌습니다. 숙자 언니는 왜 그렇게 악착 같이 돈을 모으는 걸까요? 이모가 보고 싶어서, 다시 서울로 가려고 하는 걸까요? 하지만 너무도 이상하게도 숙자 언니는 1년 동안이나 아껴 모은 그 돈을 세찌니에게 줍니다. 돈이 든 봉투에는 숙자 언니의 얼굴처럼 오종종한 글씨로 ‘피아노 배울 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찌니가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숙자 언니도 국민학교를 졸업합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부터 숙자 언니는 이모의 소식을 더욱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모가 2년 만 여기 가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언제 이모가 데리러 오나 기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체부가 숙자언니에게 가져다준 소식은, 이모의 재혼한 남편 그러니까 숙자 언니의 새아빠가 반대해서 숙자 언니를 데려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후 숙자 언니는 어디론가 달려 사라집니다. 숙자 언니가 사라진 뒤부터 봄눈이 무섭게 펑펑 쏟아집니다.
밤이 되자 동네 어른들이 숙자 언니를 찾아나서고, 숙자 언니는 다행히 얼어죽기 직전에 발견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숙자 언니는 첫찌니와 둘찌니가 있는 서울 공장으로 가겠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첫찌니, 둘찌니, 세찌니에 이어 숙자 언니마저 신작로로 떠나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 마음은 모르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숙자 언니가 떠나던 날 하늘은 유난히 맑았습니다. 나는 언니가 가르쳐 준 대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했지만,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우리 마을을 온통 들쑤셔놓았던 숙자 언니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언니가 들어왔던 신작로를 따라 다시 서울로 간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단하기만 했던 숙자 언니의 인생, 앞으로 언니 앞에 펼쳐질 인생 또한 결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숙자 언니는 어느 곳에 있건 지금까지처럼 억척스럽고 강인하게, 그러나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