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후아르트는 관찰자 또는 탐정처럼 그의 눈앞에 펼쳐진 도시라는 무대 공간과 그곳을 활보하는 인간 부류들을 ‘산책자’로 우선 명명한다. 그리고 이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염탐하며 범주화하고 분류한다. 겉보기에는 모두 한가로운 산책자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가는 도시 공간 속에서 일정 부분 위협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 pp.14~15
만일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면, 그 이유는 산책할 줄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인간에게 사회적 우월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이 창조의 왕이 된 것은, 온갖 날씨와 기후에도, 또 가능한 계절이면 어느 때든 나가서 자신의 시간과 청춘을 잃어버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 pp.29~30
진정한 산책자란 유유자적의 경지를 보여주는 자여야 하는데, 특히나 아주 존경할 만한 자여야 한다. 그저 어쩌다 산책하는 자들도 “뭐 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산책 중입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적어도 이런 자는 최고의 산책자라 할 수 없다.
--- pp.45~46
산책은 공무원이나 연금 생활자나 변론 없는 변호사나 군인들, 한마디로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산책은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우리 산업화 시대의 특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동료 시민의 지성을 모욕하는 말이다. 우리 같은 선진국의 도시에서는 물, 공기, 불, 땅, 사랑, 명예, 정신, 물자 그 모든 게 사고 팔리고 임대되고 임차된다. 한마디로 모든 게 다 활용된다. 산책 역시나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되어야 한다.
--- p.87
친근하고, 생글거리고, 빈정거리고, 게으르고, 식탐 많고, 고대 로마인처럼 구경거리 좋아하고, 특히나 산책을 좋아하는 오! 사랑 가득한 산책자여!
--- p.119
진정한 산책자는 그리스어, 라틴어, 수학, 아니면 초유동 과학 같은 것은 몰라도 된다. 대신 모든 길을 알아야 한다. 파리의 모든 상점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떤 모자 가게에서 어떤 예쁜 모자를 파는지, 어떤 정육점에서 어떤 맛있는 고기를 파는지, 어떤 카페에서 어떤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파는지 등은 알아야 한다. 마술꾼, 요술꾼, 호객꾼, 노점상, 점포상 등을 꿰고 있어야 한다. 파리 수도의 광고 벽보라면 거의 다 외우고 있어야 한다.
--- pp.197~198
다음과 같은 자질을 소유하지 않은 자는 산책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어떤 경우에나 명랑할 것.
필요할 때는 성찰할 것.
항상 관찰 정신을 지닐 것.
독창성은 그닥 없어도 됨.
유연한 사유.
약간의 피로와 훈련.
특히, 자신을 쉬게 할 줄 아는 의식 상태.
그래도 다들 산책자가 되길 원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