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때 주역과 사서삼경 등 30여 권의 예언서와 한문 서적을 배우고 야간 중학교 때 팔만대장경을 모두 배우고 야간 고등학교 때 기독교 성경을 모두 배운 뒤 야간대학 때 한국최대 그룹의 아들이 되어 실제 한국 최대 그룹의 운영을 맡아 노조가 없도록 특수한 비결로 관리해 왔습니다. 비록 제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미래 예측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미래의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며 아시아 연방의 대표와 나아가 유엔을 세계 평화와 기아해결의 세계적 본부로 이끌어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제가 구시대적인 예언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미래의 컴퓨터 세계는 천지조화와 천문지리를 꿰뚫는 선지자, 선구자, 선각자를 동시에 겸비한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고서는 이 나라와 세계를 바꿀 수 없습니다.
-- pp.149~150
내가 만나게 된 네 명의 양부모는 모두 특이한 개성이 있는 분들이었다. 태어나기는 서울의 중량교 다리밑 가마니 움막에서였지만 4살때 농부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15세에 서울에 올라와 삼각산에 있는 화계사의 주지인 숭산 이행원 스님의 양아들이 되었고 17세에 광화문 내수동 교회의 홍근섭 목사님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러다가 19세에 홍제동의 모악산 판자촌 꼭대기 정상 부근에 천막을 치고 야간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밤중에 눈보라에 천막이 바람에 날라간 것을 찾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져 우연히 한국 첫째 재벌 이○철 회장의 양아들이 되었다.
-- pp.82
나의 건의에 의해 1972년 3월 9일 방송통신대학이 처음으로 개교한지 13일이 지난 3월 22일 저녁이었다. 그날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여자들만이 다니는 우리나라의 이화여자대학교가 처음으로 남자수강생을 입학시킴으로써 화제가 되었던 날이다. 그날저녁 박 대통령은 이화여대 이야기에 뒤이어 방송통신대학제도를 건의하여 실행시킨 나에게 미래에 국가교육과 국민평생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다.
그때 나는 오늘과 같은 서울대학이라는 브랜드 이름하나를 얻기위해 온 국민이 국가예산과 맞먹는 연간 80조라는 교육비를 버려가며 청소년들의 인생을 망치는 망국적 인류주의를 예상했던 것이다.
-- pp.30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