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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 1 / 비극적 형식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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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 1 / 비극적 형식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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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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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11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78g | 110*175*20mm
ISBN13 9791196007393
ISBN10 11960073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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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2-23 : 괴테가 고대의 전범들로부터 끌어온 가장 중요한 형상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그 복잡다단한 시간의 구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시간적 층위들이 교차됨으로써 순차적인 연속성은 복선과 반추들로 인해 교란되고, 헝클어진 시간의 축은 우리로 하여금 위반과 죄, 고통과 속죄의 거대한 신화적인 순환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신화적인 시간과 운명이 자아내는 매듭들의 이와 같은 출현이야말로 비극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작용의 힘을, 괴테는 소포클레스의 전범을 수용함으로써 『파우스트』의 근대 세계로 불러냅니다.

P. 27-28 : 진정 천재적인 시인의 발상은, 젊은 파우스트의 기도 안에 자기 고양이라는 비극적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는 데에서 엿보이고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그가 “희망”과 “믿음”이라는 기독교적인 미덕을 증명했다고 회고하지만, (……) 무언가를 “강제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그야말로 오만에 다름 아니며, 신의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오히려 자기 고양의 충동에 의해 촉발된 종교의 도구화이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마법과 관계를 맺는 일의 진정한 비극적 의미가 확보될 수 있습니다. 종교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마법으로 기울어지는 그의 전환은, (……) 절망에 찬 저주를 선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저주는 마침내 메피스토펠레스―마법의 도구성이 인격을 지닌 형상으로 육화된 존재―와의 계약이라는 불길한 행보를 내딛는 것으로 구체화됩니다.

P. 45-46 : 비탄은 파우스트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에, 보다 정확하게는 인간적인 존재를 넘어선 무한자가―비극의 중심인물인―파우스트에게로 덮쳐드는 순간에 출현합니다. 비극적인 격정이 특수하게 경험되는 이러한 차원을, 괴테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래로 “인간성의 한계”를 둘러싼 실존적인 질문이 괴테에게 있어 예술을 통해 극복해야 할 주된 문제의식이었음을 떠올려 본다면, 『파우스트』는 분명 괴테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비극적 탐색이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P. 80-81 : 휴지(休止)란 “그것을 통해 사건의 비극성에 대한 경험이 사건 안으로 침입하는 비극의 요소”입니다.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필연성은 사건에 깃들어 있는 비극성을 통해 느껴지게 됩니다. (……) 관객들은 각자에게 주어지는 미학적 의식의 거리를 통해 몰락의 불가피성을 감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파우스트』에서는 이러한 비극적 인식이 파우스트 자신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 「숲과 굴」 장면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된 긴 독백이 갖는 극적인 위상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 여기에 드러나는 것은 파멸을 희구하는 동시에 그것이 강제되고 있는 비극적인 열망의 합법칙성입니다.

P. 82-83 : 이 장면을 끝으로 관객의 의식과 중심인물의 의식은 다시금 멀어지게 됩니다. 저 독백은 파우스트가 비극적 사건의 계속되는 필연성을 스스로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미학적 성찰을 그만두는 순간에 끝이 나게 됩니다. 그의 성격에 깃든 악마성이 다시금 활력을 얻고, 바라봄의 작용은 “확장된 실제적 현존재를 향한 갈망”에 또다시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 인간의 결정과 필연의 요구가 분리될 수 없게끔 뒤얽혀 있는, 전형적인 비극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이러한 교차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다름 아닌 파우스트 자신입니다. 『파우스트』가 보여주는 드높은 성찰의 높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엿보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다름 아닌 비극의 중심인물이 자기 자신의 행위에 깃든 비극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P. 108-110 : 노력은 저절로 생겨나는 힘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의도적인 지향이며, 바로 그러한 까닭에 위협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절망에 사로잡혀 창조에 등을 돌리는 행위, 즉 노력의 중단은 곧 인간 존재가 갖는 탁월한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 노력은 섭리에 속해 있는 행위이며, 그 내적인 원리는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 또는 창조와 맺는 이러한 연관은 위험 앞에 내던져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체 이 위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하나의 답변은 하느님의 말에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오류를 범하는 법이다.” (……) 신의 아들이 맞이하게 될 파국에 대한 괴테의 이해는, 그가 구상했던 근원으로 향하려는 노력이 이미 의미심장한 오류의 가능성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파에톤의 운명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근원을 향한 노력이란 그것이 즉각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비롯된 성급하고 과도한 행보로 말미암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P. 112-113 : 처음부터 비극적 이행의 가능성이 심어져 있었던 까닭에, 섭리에 닿고자 하는 저 노력의 개념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공격이 시작되기 위한 최적의 목표가 됩니다. 파에톤의 추락이, 즉 파우스트적 노력이 초래할 사랑스러운 소녀의 참혹한 불행이라는 결말이 이미 예견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에서 비극적 주체가 그의 근원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노력하기를 포기하며, 창조의 부정에 도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라도, 정당성의 법정은 이 극단적인 위협을 불가피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상황이 곧 비극을 완성해 내는 것입니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발전시킨 장르의 컨셉 안에서, 비극은 이제 세계를 긍정하기 위한 한 줄기 빛을 구하기 위해 급진적인 부정성 안으로 뛰어드는 문학 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P. 143-144 : 모든 문제의 핵심은 오직 (……) 신만이 영원의 동굴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사실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저곳에 발을 들이려 한다면, 그것은 곧 금기를 위반하는 일이자, 오만이며, 루시퍼적인 배은망덕이 되는 것입니다. 파우스트 소재의 비극적 컨셉은 시간-테마와 신화적-신성모독적 경계 침범의 교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러한 이유에서 「밤」의 모노드라마는 파우스트의 자살 충동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파우스트에게 자살이란 절망의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순수한 행위의 새로운 영역”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입니다. (……) 즉 파우스트의 자살 시도는 곧 자기 자신의 원천인 순수한 자기 생산적 활동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신적인 시도가 되는 것입니다.

P. 151 : 파우스트의 성적 판타지는 그 자신을 원천으로 전치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성적 판타지는 또 다른 루시퍼적인 배은망덕함을 제시하게 됩니다. (……) 왜냐하면 파우스트의 열망은 많은 비극적인 열망들이 그러하듯이, 인간에게는 오직 금기를 위반한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는 귀결만이 허락될 불가능한 목표를, 다시 말해 신적인 욕망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우스트』가 비극으로서 뿌리내리고 있는 영역은 시민사회의 성도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성성의 영역입니다.

P. 159 : 파우스트가 감행하는 자기 고양의 시도를 신의 섭리로 되돌리고자 하는 그레트헨의 시도는, 사랑에 미친 나머지 횡설수설하는 소녀를 마주하고 당황스러워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게 될 뿐입니다. 이 아이러니한 급변과 더불어 그레트헨의 의식은 결정적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 그렇지만 이와 같은 거부는 파우스트를 향한 사랑을 부정하는 선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저 사랑이 갖는 신성모독적인 성격에 대한 거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를 부르는 그레트헨의 마지막―1부의 마지막이기도 한― 말은, 그를 그리는 소녀의 외침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한 사랑의 형식으로 그를 인도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이것은 창조의 원리로서의 사랑이 신성모독적인 날조에 맞서 스스로를 입증해 내고자 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P. 161-162 :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레트헨의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그가 앞서 주장했던 창조의 가련한 실패에 대한, 그리고 노력의 무용함에 대한 증거로 내세웁니다. (……) 그러나 천상의 음성이 울려오면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저 선고를 바로잡습니다. “그녀는 심판받았도다!”가 아니라, “(그녀는) 구원받았도다!”로 말입니다. 저 음성을 초재적인 존재에 의한 극적인 사건에 대한 개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비극적인 과정 안에 자리하는 내재적인 의미 자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신의 저 개입은 그레트헨이 견뎌내야만 했던, 그러나 또한 그것을 견뎌냄으로써 그녀의 사랑에 순수성을 부여하게 될 운명의 의미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비극 장르에 대한 괴테의 성찰 안에서, 비극의 개념은 이렇듯 극단화된 존재 부정의 경계에까지 이르며, 창조의 원리로서 사랑이 갖는 힘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법정을 형상화하는 데로 나아가게 됩니다. 극의 결말을 가로지르는 서로 다른 음성들 간의 불일치를 통해, 미학적인 신정론으로서의 비극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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