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9
멋진 학창 시절 · 15 새로 온 선생님 · 64 지하의 아이들 · 113 ‘러문애’ · 130 마지막 무도회 · 183 민족 간의 우정 · 207 커다란 초록 천막 · 226 황혼의 사랑 · 290 고아들 · 305 아서왕의 결혼식 · 327 조금 작은 부츠 · 372 높은 음역대 · 384 여자 동기들 · 434 그물 · 509 머리가 큰 천사 · 533 |
저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관심작가 알림신청Людмила Улицка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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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승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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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날 운명인 사람들의 행동 궤적을 주시하는 것은 흥미롭다. 가끔 이런 만남은 운명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에 따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등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하곤 한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나 시 한 편 썼어. 고양이에 대한 시야. 봐봐.” 미하는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잘생긴 고양이라네 죽을 각오도 돼 있다네, 일리야는 그의 목숨을 살렸다네, 그리고 이제 지금 그는 우리와 함께 있다네. “나쁘지 않네. 물론 푸시킨에는 못 미치지만 말이야.”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죽이 잘 맞는 이들 세 사람은 오랜 시간 논쟁 끝에 3인조를 의미하는 ‘트리니티’와 ‘트리오’를 거쳐서 자신들을 ‘트리아농’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순전히 발음이 예쁘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고른 것이었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당장 목숨을 바쳐야 할 드높은 이상, 훨씬 따분하게는, 1백 년 남짓 동안 사샤와 니카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은혜를 모르는 국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이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1951년에 일어난 비극을 보지 못하고 죽은 허약한 새끼 고양이였다. ---「멋진 학창 시절」중에서 “우리는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새로운 소식이라도 되는 듯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고는 했다. “문학은 인간이 소유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는 문학의 심장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새로 온 선생님」중에서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여러 민족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자신이 국외자 같기도 하고 귀족 같기도 했는데, 유대인을 잡아먹을 듯이 싫어하는 이 시기를 무엇보다도 미적 관점에서 혐오했다. 못생긴 사람들이 옷도 이상하게 입고 행동도 아름답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 밖의 삶은 뭔가 모욕적이었지만, 책 속에는 생각과 감정과 지식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이 두 공간의 격차가 견디기 힘들 만큼 너무 커서 그는 점점 더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 덕분에 역겨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새로 온 선생님」중에서 “맞아요. 왜냐하면 어떤 시대에나 문학 주위를 맴도는 것을 가장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나와 여러분처럼 말이죠!” ---「‘러문애’」중에서 “미샤,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애벌레, 즉 성충이 되지 못한 사람들, 어른으로 위장한 사람들의 사회에 살고 있어.” ---「‘러문애’」중에서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천막은 초록색이 아니라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어. 가보니 일리야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혈색이 굉장히 좋아 보이고, 건강하고 젊어 보였는데, 나를 자기 옆에 세우고는 한쪽 어깨에 한 손을 얹더라고. 그런데 이때 옥사나가 나타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는 그녀를 못 본 척하는 거야. 천막 입구엔 제대로 된 문은 없고 웬 커튼 같은 두꺼운 천이 늘어져 있었는데, 이 커튼이 젖혀지더니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겠더라고. 무슨 냄새도 나고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했어.” ---「커다란 초록 천막」중에서 일리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뿐이었다. 물론 모두가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사람인 데다 이상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고, 정상적인 삶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고 전혀 불필요한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매혹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국가가 그들과 엮이기 싫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서왕의 결혼식」중에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저쪽 세계에서 생겨나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곳에 온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음대의 홀을 가득 채우던 것도 음악학교 복도에서 들리던 불협화음도 검은색 레코드판에 숨어 있던 소리도 음악이었다. 심지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널을 뛰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음표들도, 가끔 생겨나는 공백도,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갈라진 틈으로부터 비집고 들어오는 것도 전부 음악이었다. ---「조금 작은 부츠」중에서 이것은 특정 정당도 아니고, 동아리도 아니고, 비밀 단체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의 모임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스탈린에 대한 혐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책을 읽었다. 열정적이고 광적인 독서는 그들의 취미이자 노이로제이자 마약 같은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책은 삶의 스승에서 삶의 대체재로 변모했다. ---「높은 음역대」중에서 |
험난한 시대에서 피어난 우정과 예술에 대한 탐구
소련의 역사적 변동과 개인의 삶을 엮어낸 작품 1950년대 모스크바, 어린 소년이었던 일리야, 미하, 사냐는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다. 가정환경도 성향도 제각각인 세 사람은 문학 교사 빅토르 율리예비치의 가르침과 러시아 문학 애호가 모임인 ‘러문애’를 통해 견고한 우정을 쌓아간다. 우정의 중심에는 러시아 문학이 있다. 그들은 모스크바 곳곳을 산책하며 푸시킨, 마야콥스키,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 앞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와 혁명가들의 삶을 탐험한다. 그렇게 어느 시대든 인간은 시대적 어려움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애써왔음을 배우고, 억압적인 사회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수요일마다 빅토르 율리예비치는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들, 즉 자칭 ‘러문애’라는 동아리에 속한 아이들을 데리고 모스크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시절이자 아픈 시기를 통과하던 그들을 사상이 꿈틀대는 공간으로, 자유와 음악과 모든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데리고 다녔고, 그는 그 모임이 좋았다. 바로 여기서 그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니, 바로 이 창문 너머에서! _1권 130쪽 학창 시절이 지나 각자의 삶을 구축하고 확장하며 여러 고난에 직면하는 동안, 세 사람의 운명은 상호 얽히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리에 명석한 일리야는 지하출판물 사업에 뛰어들어 거처를 옮기며 살아가고, 이상주의자 미하는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을 가르치다 금서를 유포한 행위로 쫓겨나며, 종국에는 강제 추방된 이민자들을 돕다가 위험에 처한다. 한편 사냐는 새로운 실험과 미지로 가득한 음악 이론과 악보의 세계에 매료된다. 이들은 정부 차원의 검열과 통제가 팽배한 분위기에서 도리어 예술적으로 활발하고 풍부한 시기를 살아가지만, 동시에 반유대주의와 같은 인간의 잔인하고 나약한 모습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정을 통한 사회적 연결망은 “어른으로 위장한 사람들의 사회”에 잡아먹히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 잡지를 계속 발행하지 말고 새로운 잡지를 만들어봐. 이름은 바꾸고. 뭔가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 시는 네가 맡아. 나는 예술가들을 소개해줄게. 굉장히 멋진 예술 평론가를 알고 있어. 이건 새로운 아방가르드야. 내 친구 중에 훌륭한 친구들이 많아. 예술 잡지를 만들면 될 거야. 정치는 그 안에서 저절로 싹이 틀 거고.” _2권 311쪽 사라진 역사의 편린을 생생하게 복원한 한 시대의 진실한 기억의 악보 소설은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날에서 시작하여 망명 시인 브로드스키가 죽은 날에서 끝난다. 그 방대한 시간 폭 사이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러시아를 관통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시공간을 바꿔가며 전개되는 일화 하나하나는 세 명의 주인공과 반체제 지식인들의 삶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아간 “삼류 단역 배우들”의 드라마 또한 생생히 담아낸다. 가령, 기존의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주변화된 여성 인물들의 서사는 이상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채 소설의 한 축으로 존재한다. 또한 반정부 지하조직을 이끈 장군을 정신병자로 진단하길 강요받은 의사, 레닌에 관한 풍자화로 수배를 피해 도망친 시골에서 노파들을 그린 화가, 죽은 시인의 관을 만들기 위해 시신의 키를 재러 간 장례지도사, 부츠를 늘리려 금서를 찢어 넣은 소녀 등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섞은 인물과 사건들은 당시의 분위기를 몰입감 있게 재현한다. 거미줄처럼 비선형적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역사적 진실이 음악 연주처럼 다양한 각도에 따라 계속해서 창조되며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고 나면 여러 겹으로 덧칠한 그림이 한 점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묘하게 아름다웠다. 이제 그는 자기가 사라져가는 세계를 그리는 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파들은 자기들이 지어낸 이야기를 하며 웃었고 그럴 때면 주름살 가득한 얼굴 표정이 밝아졌는데 그럴 때 보리스 이바노비치는 식탁 앞에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_2권 58쪽 『커다란 초록 천막』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젊은 세대의 공통된 편린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거대 담론을 취하는 역사는 권력을 따랐던 자와 그를 거스르고 살아간 자를 분류해서 기억하지만, 소설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사람들의 삶에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과 작고 큰 결정들이 역사의 한순간을 이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복잡한 심리보다는 사랑, 고통, 죽음, 두려움과 같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는 감정들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때 작가는 심판자의 자리에 있기보다 그 시대를 몸소 살아간 증인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인물들은 시대의 무게에 억눌려 위축되기보다, 나약하지만 각자의 꿈과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커다란 초록 천막』은 한 시대에 대한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악보가 된다. 추천의 말 1950년대부터 소련 해체까지의 러시아를 아우르는 이 반목의 서사시는 고전 러시아 소설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대담하게 뒤집는다. _〈뉴요커〉 거대한 야망을 품은 걸작. 가장 사소한 것에도 매혹적인 생명력을 부여하여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한다. _〈NPR〉 “웅장하고 견고한 나무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설. 21세기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작가인 울리츠카야는 삶의 기쁨, 비애, 위험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 『닥터 지바고』와 함께 책장에 둘 만한 가치를 지닌 감동적인 작품. _〈뉴욕타임스〉 |
작가는 왜 쓰는가. 파스테르나크는 동시대인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쓴다고 말했다. 혁명의 격동기를 다룬 『닥터 지바고』가 바로 동시대인들에게 바친 헌사였다. 이 헌사의 대열에 『커다란 초록 천막』을 더하고 싶다. 파스테르나크의 바통을 이어받아 울리츠카야는 자기 세대의 삶과 고난의 역사에 대한 면밀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완성했다. 이로써 한 세대의 삶이 비로소 온전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울리츠카야는 문학이 여전히 한 시대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위대한 천막’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 이현우 (로쟈/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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