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30년, 투쟁과 연대의 노동조합을 위하여
이영섭 _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정식품지회 지회장
‘정식품노동조합 30년사’를 발간한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또 그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30년 안에는 저나 우리 조합원들의 청춘의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식품노동조합의 30년 역사 중에서 앞 10여 년은 제대로 된 기록이 없습니다. 사실상 활동과 성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94년 처음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자 초동 주체들이 모여 ‘깨기’ 모임을 만들고,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같은 노력에 호응해줬던 조합원들의 열렬한 지지, 그 결과로 마침내 1996년 만들어질 수 있었던 민주노조,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서툴렀던 민주노조의 초기 활동과 파업 투쟁, 그리고 그 파업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도 변해가고 단련되었던 조합원들, 그리고 노동조합. 이런 역사와 기억이 주마등처럼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 시간을 거쳐서 정식품노동조합은 지역 내에서도, 또 전국적으로도 나름 이름이 알려진 노동조합이 되었습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 투쟁하는 노동조합, 연대하는 노동조합으로 말입니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고 바로 그 조합원의 뜻과 의지가 반영되는 노동조합의 운영 원리는 민주주의입니다. 따라서 선거나 파업 투표,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노동조합 운영에 있어서도 민주성의 원리는 관철되어야 합니다. 사측과의 협상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토론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장으로부터 의견이 올라올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조합원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정식품노동조합은 그런 민주성이 바탕이 되었기에 노동조합의 결정,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책임 지고, 또 집행하고, 그 성과를 공유해 왔습니다. 비판도 책임도 함께 지는 노동조합이 바로 우리 정식품노동조합인 것입니다.
이런 민주성을 바탕으로 정식품노동조합은 늘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자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조직력, 선전 능력, 조합원들의 소통 능력, 파업과 쟁의에 대한 기본 지식, 협상의 절차와 연대할 수 있는 지역 내 자원을 동원할 능력 등 아주 총체적인 힘과 능력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투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단순히 파업에 들어가냐 마냐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정식품노동조합은 바로 그러한 자세와 능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투쟁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없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 등도 한순간에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한국 노동조합 역사에서 많이 보아 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정식품노동조합은 투쟁하는 노조, 조합원 전원이 일치단결해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노조의 상태와 힘을 유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정식품노조는 그런 투쟁력을 바탕으로 지역 내 연대에 앞장서 왔습니다. 충북지역 내에는 작은 사업장들도 많고 어렵게 노동조합을 꾸려가는 곳도 많습니다. 500명을 넘는 사업장도 많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사측과의 힘 대결에서 밀려 늘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또 하이닉스 투쟁 때처럼 지역 내 모든 역량이 함께 총결집했음에도 힘이 딸릴 정도로 총자본과 권력이 연합해 공격해 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정식품노동조합은 간부뿐만 아니라 조합원들까지 함께 달려갔습니다. 기금만 전달하는 연대가 아니라 실질적인 연대에 앞장섰습니다. 비가 내리면 함께 맞았고 폭력 경찰의 방패에 함께 어깨를 겯고 막아냈습니다. 우리의 연대는 ‘다른’ 사업장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노동자끼리 하는 연대였습니다.
어찌 보면 정식품노동조합은 참으로 작은 노동조합입니다. 정식품노조보다 조합원 숫자가 훨씬 많은 노동조합도 전국적으로 즐비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합원 숫자만 많다고 살아 있는 노동조합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임단협만 이루어지고 유명무실한 노조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파업 투쟁 한 번도 할 수 없는 형편인 곳도 많습니다. 다른 투쟁 현장에 대한 연대는 고사하고 자기 노조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워 하는 노동조합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식품노동조합은 참으로 큰 노동조합입니다. 아주 큰 노동조합입니다. 저는 그렇게 자부하고 그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30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정식품노조 앞에도 새로운 순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조합원들이 하나 되어 싸워 왔던 지난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동시에, 이 새로운 시간, 새로운 도전 앞에 한편으로는 적응하고 한편으로는 맞서며 헤쳐 나가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변화도 단결 투쟁하고 굳건하게 연대해 나가는 민주적 노동조합이라는 기본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식품노동조합 30년사 발간을 위해 노력해 주신 지역의 동지들, 그리고 노동자역사 한내 여러분, 고맙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구술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조합원 동지들도 고생하셨습니다. 기록과 자료가 부족했음에도 귀중한 원고를 집필해 주신 양돌규 동지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함께 웃고, 눈물 흘리고, 싸우고,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이 30년을 함께 해온 조합원 동지들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발간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