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극한의 두려움이나 공포보다 훨씬 더 묘사하기 어렵고 더 기괴한 경험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엄청나게 무섭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느껴본 적이 없다면 적어도 영화에서 보았거나 책에서 읽었거나 겁먹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있어서, 최소한 상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와해’라고 부르게 된 이 일은 그런 두려움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이고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의식이 서서히 응집력을 잃어간다. 한 사람의 중심이 붕괴한다. 중심이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희미한 안개가 되고, 현실을 경험할 때 토대가 되는 탄탄한 중심이 질 나쁜 전파신호처럼 흩어진다. 상황을 바라보고 파악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견고한 전망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고 위험을 파악할 렌즈를 제공해 만물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중심부가 없어진다. 시간에서 마구잡이로 잘려 나온 순간순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각, 소리, 생각, 느낌이 다 제각각이다. 연속되는 순간과 순간이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일관적으로 시간 속에 배치하고 연결해주는 조직 원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슬로 모션으로 진행된다.
--- pp.33~34
나는 거부했다. “사람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나아야지 무슨 약을 먹어서 나으려 해서는 안 돼요. 약을 먹는 건 편법이에요.” 오퍼레이션 리엔트리의 상담사들이 했던 말이 커다란 놋쇠 종소리처럼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너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라. 내 입에 알약을 집어넣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내가 회복하려면 약이 필요할 정도로 허약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생각 역시 그만큼 역겨웠다. 나는 단언했다. “나는 아픈 게 아니에요. 나쁜 거지.”
그러던 어느 날 내 사고방식을, 아니 모든 것을 바꿔놓은 일이 벌어졌다.
거울 속 나를 본 것이다.
내 모습을 본 건 몇 주 만에 처음이었다. 복부를 주먹으로 세게 강타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맙소사. 저게 누구야? 나는 몹시 야위었고, 실제보다 서너 배 나이 든 사람처럼 자세는 구부정했다. 수척해진 얼굴은 음산했고 퀭한 눈에는 공포가 짙게 서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더럽고 제멋대로 뻗쳐 있었으며 옷은 구깃구깃하고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정신병원 뒤쪽 병동에서 오래도록 잊힌 채 살아온 미친 사람의 외양이었다.
나는 죽을까 봐 겁이 났지만, 거울에서 본 모습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나를 마주 보던 그 여자는 뭔가 몹시 끔찍한 곤경에 빠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여기서 빼낼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했다.
--- pp.109~110
수업 중에 내 의견을 말하는 것도 곤혹스러울 만큼 불편해했고 그래서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기말시험이 끝난 후 담당 교수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내가 누구인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시험에서 내가 써낸 글이 가장 훌륭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좋은 점수를 많이 받았음에도 이런 식의 평가를 받을 때마다 나는 늘 놀라움을 느꼈다. 그런 평가의 말을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재생해보고 나서야 항상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던 테이프를 끌 수 있었다. 그건 요컨대 이런 말을 하는 테이프였다. 뭔가 딱한 실수가 있었던 거겠지. 나를 다른 학생과 혼동했을 거야. 사실 내 진짜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진실을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야.
--- p.302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말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거듭 이야기한다.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친구들에게는 지겨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건강하고 중요한 일이므로 좋은 친구라면 계속 이야기하도록 격려한다. 하지만 정신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말하고 싶은 충동과 말함으로써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 사이에서 신중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잘 알고 신뢰하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는 나름의 복잡한 사정이 따른다. 나처럼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도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본다. 우리는 매체에서 조현병을 어떻게 그리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친구가 진실을 듣게 된다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할지 알고 있다. 우리가 대단히 조심스럽게 구는 이유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심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는 것은?? 뭐랄까, 미친 짓이다.
--- p.410
이 책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신증을 앓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법이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침대에 묶이는 수모, 요청하지도 않았고 뭔지도 모르는 약을 강제로 삼켜야 하는 수모가 어떤 것인지를 대부분의 사람보다 내가 훨씬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일들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싶고, 그래서 이제 그 변화의 절실한 필요성에 관해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소리 높여 말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현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희망을 얻고, 다른 모든 이들은 이 병을 더 잘 이해하길 바란다.
--- p.467
만약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 사람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면 나는 끔찍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나는 조현병이나 다른 정신증적 장애가 있는 모든 사람이 성공적인 전문가나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사례가 다수의 일반적 경우에 비해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상당 부분은 내가 제비뽑기에서 좋은 패를 뽑은 결과 덕이다. 부유한 부모, 유능하고 재능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종종 꼴불견이었던 고집스러운 성향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만큼 유리하게 작용한 적도 많았던 것까지.
--- pp.470~471
당신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도전은 자기에게 딱 알맞은 인생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신질환이 있든 없든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이 아닐까? 나의 행운은 내가 정신질환에서 회복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회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인생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나의 행운이다.
--- p.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