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 옛날 산과 들로 약초를 찾아 헤맨 조상들을 찾아갑니다. 그들의 소망과 비원, 소박한 현실 인식, 이웃과 생명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들을 소환해 사라져 가는 약초들을 오늘날 실정에 맞게 되살리려고 합니다. 들판의 이름 모를 풀들이 우리의 건강한 삶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눈치챌 수 있다면 더욱 기쁜 일이 되겠지요.
제가 약초 이야기를 서사의학이라는 거대담론과 연결하려는 이유는 거기에 서사의학의 원초적 모습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세포의 화학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가진 소우주이기 때문이며, 미국 시인 미카엘 루카이저의 표현을 빌리면, 이 우주는 원자가 아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초와 그 이야기들을 우리 시대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잘 이용해야 하고 동시에 인류가 분투하며 쌓아 온 인문학적 소양과 의약학적 지식을 후대에 잘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맥문동은 특히 폐에 좋은 약재입니다. 폐는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기도 폐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코, 인후부, 기관지 윗부분, 즉 상기도에 급성염증이 생기는 것이지요. 폐에 좋은 약은 우리 몸을 지키는 성벽 역할을 합니다. 나라로 보면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일과 같습니다. 신라와 백제, 왜국 등 주변 강국의 틈바귀에서 분투하던 김수로왕, 자나 깨나 왜구의 침략을 막아 국토를 지키려 했던 문무왕의 설화가 얽혀 있는 범어사의 여기저기서 만개한 맥문동, ‘한국을 지키려는 것인가, 미국을 지키려는 것인가’ 하는 논란이 거센 사드 포대가 있는 경북 성주의 맥문동 공원은 시각의 차이를 떠나 맥문동의 지킴이 구실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깻잎은 식물학적으로는 ‘들깨’의 푸른 이파리로, 주로 식자재로 쓰입니다. 보랏빛 색조를 띤 자소엽은 주로 약재로 쓰인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역시 약으로 쓰이는 식물은 음식으로 쓰이는 식물에 비해 좀 튀는 느낌입니다. 이 튄다는 것이 편성(偏性), 바로 한쪽으로 치우친 성질을 의미하는데요. 약초가 약초인 이유는 바로 이 편성 때문입니다. 들깨에 비해 ‘자소’는 편성이 강합니다. 흔히 아이들에게 편식(偏食)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골고루 먹어야 충분한 양분을 섭취한다는 논리이지요.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먹는 아이들은 뭔가 영양 불균형이 초래되어 성장 지체나 잦은 병치레를 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 편성을 가진 약초들이 도움이 됩니다. 한쪽으로 휜 잣대를 바로 하려면, 반대쪽으로 크게 휘어야 하는 것처럼.
고대 경전인 『대학』에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여 완전한 지식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동양에서는 학문하는 자세를 말할 때 늘 등장하는 성어입니다. 여기서 화타는 수달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면서(格物) 차조기의 약성을 유추해 냅니다(致知).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질병의 치료라는 실천에 옮겨 그 지식의 진리성을 검증해 냅니다. 후세인들에게 학문을 하는 태도, 의업(醫業)을 하는 이가 지녀야 할 태도의 모범을 보였지요.
약리실험으로 밝혀진 당귀의 효능은 매우 다양합니다. 마땅히 되돌릴 곳으로 보낸다는 말 자체의 뜻에 걸맞게 병적 상태에 빠진 몸을 건강한 시절로 되돌리려고 하는, 말 그대로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비정상 상태에 빠진 몸은 여러 병리현상을 보여 주는데, 우리 몸의 보배라 할 수 있는 혈액(血)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각종 혈증이 그것이지요. 이때 당귀가 하는 역할은 현대 연구에서 상당 부분 입증되었습니다. 혈액 생성을 촉진하고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며 항혈전?혈중지질 강하작용 외에도, 진통?진정?혈압강하?억균작용 등이 있습니다. 당귀에 들어 있는 비타민B12와 엽산 등은 적혈구가 골수에서 만들어지고 성숙할 때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부터 시작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이름을 바로 하는 것(正名)”이라는 유명한 답변을 합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늘 등장하지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정치나 윤리의 영역을 떠나 학문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개념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약재도 마찬가지죠. 잔대와 더덕, 백복령과 적복령, 백하수오와 적하수오, 갈근과 야갈(野葛) 등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으면 때로는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육계나무의 껍질이나 가지를 약재로 만들 경우에도 이런 개념의 명확한 정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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