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가를 수 없었던 지독한 사랑-경성 기녀 홍랑과 최경창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날인가 여기소서’라는 시로 유명한 경성 기생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이야기 후편이다. 경성으로 부임한 최경창과 관기 홍랑은 첫눈에 반해 깊은 사랑을 나누었고 헤어져서도 서로를 잊지 못했다. 최경창이 죽자 여인의 몸으로 3년 상을 치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랑은 최경창의 유품을 품고 10년 방랑생활을 한다. 홍랑이 고이 간직했던 최경창의 유작은 <고죽집>으로 묶여 전해진다. 해주 최씨 문중은 홍랑의 절개를 기려 최경창 부부 합장묘 아래 홍랑의 묘를 만들어 주었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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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삼각관계 속 플라토닉 러브-허균과 매창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너도 날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로 유명한 시의 작자는 부안 기생 이매창이다. 매창은 부안 출신의 시인 유희경을 정인으로 하여 주옥같은 사랑 시편들을 남겼다. 한편 조선 최고 호남아 허균과 남녀관계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눴다는 것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시대의 이단아 허균은 매창을 뛰어난 시인이자 예인으로 높이 평가했고 둘은 시서화를 논하면 죽을 때까지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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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의 딸과 사대부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장곤과 분이
반상이 유별하고 신분의 차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 높은 관직에 있던 한 사대부가 미천한 백성의 신분으로 살다가 다시 사대부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시대의 폭군 연산군조 때의 이야기다. 폭정을 피해 신분을 숨기고 고리를 만드는 백정의 마을에 숨어든 이장곤은 그 마을의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3년을 함께 동거동락한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새 왕조가 들어서자 이장곤은 다시 사대부 신분으로 복권되었다. 신분이 달라졌다하여 연인을 저버릴 수 없었던 이장곤은 백정의 딸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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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위대한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평등한 사랑-빙허각 이씨와 서유본
빙허각 이씨는 여성 최초로 총서를 저술한 조선의 실학자다. 그녀가 위대한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서유본의 그림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재능이 남자의 재능을 가리는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여필종부의 시대, 빙허각과 서유본이 부부의 연을 뛰어넘어 평생의 지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랑보다도 깊고 뜨거웠던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빙허각은 생활백과대사전인 규합총서에서 열녀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히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부종사하다 죽은 여자와 효부만이 열녀가 아니라 지식이나 충의, 예술적인 재능,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여성도 열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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