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놓친 지점이 있다. 우리가 원래부터 늙은 여성을 푸대접하고 무시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네 오랜 설화 전통에서 ‘할머니’ 혹은 ‘할미’는 본래 ‘여신’을 의미했다. 우주를 창조한 마고(麻姑)할미, 설문대할망, 바다를 지키고 풍랑을 관장하는 물의 여신, 그리고 아기를 낳게 도와주는 삼신할미나 바람과 액을 막아주는 영등할미 등 이런저런 할매신들이 있었다. 실제로 ‘할미’라는 말은 ‘신체적으로 늙은 여자’라는 뜻이 아니다. ‘할머니’의 진짜 의미는 ‘크다’란 뜻의 우리말 ‘한’과 ‘어머니’가 합쳐진, 말하자면 ‘대모(大母)’,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여신도 ‘할미’라 불렸던 것이 아닐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남은 모든 여성은 위대하다. 그 어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남성 중심이던 한국 사회에서 할머니, 어머니를 거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여신 신화들의 생명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한반도 곳곳에 전해지는 여신 신화를 찾아가는 일은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의 상처와 고통 속에서 달처럼, 구름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포용과 치유의 힘을 전해온 한국의 할머니 여신들. 어려움 속에서도 유 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우리 여신들의 이야기는 권력과 탐욕이 넘치는 물신숭배의 세상에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사는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깨우쳐줄 것이다. 자, 이제 원초적 생명력을 가진 한국의 여신, 할매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보자.
---「머리말」중에서
한국 여성 신화를 알아가면서 가장 흥미를 느낀 여신은 마고할미의 부류에 속하는 설문대할망이다. 옥황상제의 셋째 딸이자 막내라는 설문대할망, 그녀는 누구인가. 설문대할망은 하늘과 땅이 맞붙은 천상계 생활이 무료해진 어느 날, 하늘 바깥 세계에 호기심을 느껴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다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즉시 쫓겨난 설문대할망은 바깥 세계,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가르던 중 퍼 놓았던 흙을 치마폭에 담고 제주로 내려와서 그 흙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제주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제주 탄생의 대표 설화다.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찾아서 제주 사려니숲으로 향했다.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물찻오름과 사려니오름을 거쳐 가는 숲길로, 삼나무 숲이 우거진 지방도 제1112호선 초입에 위치한 사려니숲길. 이곳은 졸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는 고도 550m의 숲길이다. ‘제주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인 사려니 숲길은 특히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려니’라는 이름은 ‘살안이’ 또는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 이름으로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남성 중심 신화에서는 여성이 늘 젊고 아름답게 그려져 왔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차지하기 위해 신화 속 남성은 전쟁을 불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설문대 신화에서 여신은 할망으로 그려져 있다. 나이 든 여성, 젊음과 아름다움이 지나가버린 여성의 존재를 그렸다는 점이 나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설문대할망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여성의 좋은 상징이지만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어머니상에 기꺼이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왜 모든 어머니는 기꺼이 희생하고 실패하는 여신이어야 할까. 대자연이라는 어머니는 현실 속의 어머니가 그러하듯 늘 인자할 수만은 없다.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터전과 자양분을 제공하지만 때론 가차 없이 인간을 공격해서 위험에 빠지게도 한다. 하지만 재해라는 것도 인간 입장에서의 표현일 따름이다. 자연은 그저 묵묵히 제 나름의 체계 속에서 돌아갈 뿐이다. 그것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우리를 감싸 안지만 때로는 힘없는 인간을 꿀꺽 집어삼키기도 한다. 인정사정없다.
제주에선 매해 설문대할망제가 열린다. 일만 팔천 신들의 섬, 제주도. 척박한 삶을 의지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신이 필요했던 섬, 제주에서 그중 으뜸이 여신 설문대할망이다. 그래서인지 단편적인 전설이나 민담으로만 전해지던 할망의 이야기가 축제를 통해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설문대할망 축제는 제주 돌문화공원에서 개최된다. 제주의 정체성과 제주 문화의 원류를 설문대할망 신화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 한라산에 철쭉꽃이 피는 5월을 ‘설문대할망의 달’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 한 달 동안 돌문화공원은 그야말로 여신들의 놀이터가 된다. 어디선가 설문대할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거대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제주는 신화가 삶 속에 스며든 곳이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중에서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천체인 왜행성 세레스(Ceres)에 우리말 지명이 붙게 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국제천문연맹(IAU)에서 2017년 8월 말에 발견된 구덩이 13곳의 지명을 공식 승인했는데 그중 한 곳에 ‘자청비(Jacheongbi)’라는 한국의 신 이름이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자청비(自請妃)는 제주도의 전통신화인 세경신 이야기 〈세경본풀이〉의 주인공이자 농업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하는 강인한 여성인 자청비가 세레스의 크레이터 이름으로 정해진 이유는 로마의 농업신인 케레스에서 비롯된 세레스의 지명과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전 세계 농업의 신들 가운데서 제주도 여신 자청비가 선택된 것은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운명을 개척한 우리 여신 ‘자청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스로 여자 되기를 청하였다’라는 의미의 이름인 자청비는 가부장 사회의 규제를 벗어나 남장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용기 있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 자청비.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들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여성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의 뒷부분도 꽤 마음에 들었다. 사랑을 이룬 자청비의 인생은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싱겁게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청비 신화는 이야기 뒷부분에서 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자청비의 인생이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자가 바로 사랑하는 문 도령이다. 이런 것을 두고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하는 걸까. 한때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루만 못 봐도 죽을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이젠 그 남자가 꼴 보기 싫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주부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역시 사랑이란 이루어지고 나면 창밖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보다.
자청비의 선택은 끝까지 깔끔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문 도령이지만 크게 실망하고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씨앗을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선택을 했으니 말이다. 끝난 인연을 이어가는 데 연연하기보다 사랑은 그만 접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자청비의 선택이 나는 몹시 마음에 들었다. 자청비는 기존 여성성의 틀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과 목표에 충실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면서, 건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세계적으로도 좀처럼 보기 드문 캐릭터다. 어쩌면 조만간 넷플릭스나 디즈니에서 자청비라는 여신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성 역할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고, 사랑에 빠지면 노력하여 그것을 취하지만 사랑이 끝나게 되면 가차 없이 떠날 줄 아는 여신. 와! 정말 쿨하지 아니한가?
척박한 화산섬, 제주엔 유독 신화가 많다. 신화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힘든 삶을 위로받고 의탁할 길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1만 8,000여 신의 태반이 여신이다. 먼 바다로 나간 남자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 가난했던 제주엔 아무래도 돌·바람·여자들이 주로 남겨졌을 것이다. 거친 생존환경에 지친 여자들에겐 삶을 견디고 이어가게 할 이야기, 즉 신화가 필요했다. 그것도 생명과 풍요와 위로의 상상물인 강한 여신들이어야만 했다. 제주뿐 아니라 한반도 곳곳을 다녀보면 어디에서나 여신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여신들의 흔적이 우리 주위에 남아 있다. 거구의 몸집에 커다란 팔뚝을 하고 산처럼 솟은 베틀로 옷감을 짠 그녀들은 산과 강, 그리고 바다를 접시 물처럼 여기며 걸어 다녔다.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제주에서 만난 우리 여신들 :가믄장아기, 현씨애기, 자청비」중에서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인 한반도에서 산은 여신들의 대표적 거주처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모악산, 대모산, 노고산, 자모산, 모후산, 할미산 등의 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산은 남다르다. 성모천왕의 위력 때문인지 고대부터 여신 전통이 매우 뚜렷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는 여신 신앙과 관련된 장소나 유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산신(女山神)을 모시고 있는 절의 숫자도 다섯 손가락을 넘는데 대표적인 절이 쌍계사다. 삼성각 여산신은 위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리산 인근의 하동군에는 그녀가 법우 스님과 천왕할매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이라는 설화도 전해진다. 게다가 지리산의 여산신들은 모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다. 언제 봐도 위엄 있고 강인해 보이는 그녀들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여성의 원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오르자 산 어머니, 노고할미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많은 수난의 역사 속에서 숱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비탄의 어머니이자 그럼에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생명력을 전하는 여신의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시기에는 ‘빨치산’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되었다. 그저 ‘아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깊이가 와닿지 않는다. 그런 공간에는 그 시간만큼 쌓인 사람들의 염원과 기도가 있다. 거기서는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
노고단 정상에서 발아래 운해를 바라보고 하산하는 길에 마음이 아파왔다.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지 않았지만 현대사의 비극, 가려지고 잊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니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해방과 한국 전쟁을 전후해 이곳 지리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 아니었을까? 어떤 장소와 공간은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들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곳이 왜 지리산이었는지, 자꾸만 생각하고 또 되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곳을 찾고, 또 찾아가야 한다. 그런 장소와 공간에는 오랜 세월 그들의 절망과 눈물과 피를 위로해준 여신들이 있다. 지리산을 ‘민족의 영산’이라 부른다면, 지리산의 어머니 여신은 우리 민족의 어머니가 아닐까. 실제로 이 땅에서 살아온 숱한 민초들은 그녀의 거대한 품에 의지해 위로를 받았으니까. 좌우로 찢긴 조국 대신 지리산은 자연의 품으로 그들을 안아주었다. 그 자연의 품은 바로 여신 노고할미다. 강하고 신성한 어머니 산, 지리산에서.노고단을 내려와 산 아래에서 거대한 여신의 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부시게 환했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진한 슬픔과 약간의 고독감이었다.
---「노고할미를 찾아서」중에서